동화창작

소싸움

凡草 2005. 9. 8. 07:46

번개, 아자 아자!

                      우경신

 

“번개야, 마이 묵고, 올해는 우짜든가 우승해야 한대이. 알겠제?”

승완이는 여물통에 콩깻묵과 볏짚 끓인 것을 자르르 쏟아냅니다. 번개는 승완이의 말을 알아듣는 듯 콧방울을 벌렁거립니다. 내일은 한․일 소싸움 경기가 열리는 날입니다.

트럭 뒷 칸에 번개를 태우기 위해 삼촌은 번개의 엉덩짝을 찰싹 갈깁니다. 그러자 번개의 바위처럼 무거운 몸이 잽싸게 트럭 위로 올라갑니다. 그럴 땐 날렵한 표범 같기도 합니다.

“삼촌, 우리 번개가 꼭 우승해야 삼촌 장가도 보낼 긴데, 히히히”

“뭐라카노, 이 놈아가 쪼기만게 못하는 소리가 없대이, 내는 마 니랑 평생 같이 살   키라 안 했나? 번쩍거리는 자전거 타고 읍내 중핵교에 가는 걸 보는 것이 내 소원   인기라. 장가는 무슨 놈의 장가고. 내 같은 농사꾼한테 시집 올라카는 처자가 있을   라꼬.

“와 그러나노? 내사마 삼촌이 경기장에서 번개하고 떡하니 버티고 있으믄 멋지     기만하대.”

창문 틈새로 바람에 날아다니는 벚꽃 잎이 나풀나풀 들어옵니다. 벚꽃을 보니 엄마가 생각납니다. 복사꽃같이 양 볼이 불그스레한 엄마는 유난히 벚꽃을 좋아했습니다. 멍하니 벚꽃을 보고 있는 승완이를 삼촌은 힐긋 쳐다봅니다.

“승완아, 아빠랑 엄마랑 보고 싶제?”

승완이는 얼굴을 세차게 도리질합니다. 

“아이다. 내가 뭐 얼라가? 삼촌, 아빠 엄마도 우리 번개 싸우는 거 봤으면 을마나  좋겠노?.”

“하모, 형님과 형수님이 이 번개가 이렇게 늠름해 진 걸 보면 을마나 좋아하겠노?”   트럭은 신나게 고속도로를 달립니다. 아직 푸른 물이 들지 않은 황토빛 청도의 논밭은 황소 등을 닮았습니다. 갈 위에서 고니 한 쌍이 넘실넘실 날개를 쭉 펴고 춤을 춥니다.

고니 한 쌍의 날개 짓이 아름다워 창 밖으로 얼굴을 내밉니다. 고니가 승완이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합니다. 고니의 얼굴에서 엄마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입니다. ‘아, 엄마다. 엄마는 고니가 된 기라’ 봄바람이 승완이의 마음을 훔쳐보았습니다. 봄바람이 승완이에게 등에 타라는 시늉을 합니다. 승완이의 눈 밑으로 논밭이 보입니다. 푸른 강이 바람따라 흘러갑니다. 승완이는 고니가 된 엄마가 손짓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엄마, 나 승완이다! 승완이란 말이다! 삼촌캉 내만 남기고 하늘나라 가문 우야노    엄마보고 싶다. 다시 온나!’  

목청껏 소리를 질러 봅니다. 엄마는 승완이를 바라보며 너울짓만 할 뿐 대답이 없습니다. 힘껏 팔을 뻗습니다. 승완이의 손이 엄마에게 닿을 듯 말 듯 합니다. 그 때 심술쟁이 꽃샘바람이 물구나무를 선 채 거꾸로 불어옵니다. 승완이는 거친 바람에 밀려 자꾸만 엄마에게서 멀어집니다. 있는 힘을 다해 다가가려고 손을 뻗어 보지만,  흙먼지만 일으킬 뿐입니다.

어깨를 들썩거리며 라디오에 나오는 유행가를 읊조리던  삼촌이 콧노래를 멈춥니다. 

“니 뭐하노? 당장 창문 안 올리나? 퍼뜩! 야갸, 사고 날라고 환장을 했나?”

삼촌이 지르는 소리에 화들짝 놀란 승완이는 창문을 올립니다. 그리고 얼굴을 차창유리에 바짝 부치고 논두렁을 살펴봅니다. 논에서 날개 짓을 하던 고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삼촌, 있제 방금 엄마… 아무것도 아이다.”

“뭐라꼬, 엄마가 우쨌다고? 야가 무슨 흰소리고? 안전벨트나 단디 맸는가 확인해   라.”

승완이는 엄마가 미치도록 보고싶습니다.

‘번개야, 니는 울엄마 봤제?’

번개도 고니가 머물렀던 곳을 슬픈 눈빛으로 보고 있습니다.

청도가 가까워졌나 봅니다. 싸움소를 태운 트럭이 종종 눈에 뜁니다. 소들이 임시로 만들어 놓은 외양간에 줄을 지어 들어갑니다. 누런 한우 사이에 검은색 일본소도 보입니다. 검은 소는 시커먼 털을 곤두세우며, 허연 콧김을 연신 내뿜습니다. 승완이가 보기에도 검은 소는 어찌나 몸집이 큰지 작년 산불로 새까맣게 재가 된 마을 뒷산을 보는 듯합니다.

“삼촌, 저쪽에 있는 검은 소 아인나. 설마 우리 번개하고 붙는 일은 없겠제?”

“럭키말하나? 아마 우리 번개랑 같은 ‘갑종’이라서 붙을 수도 안 있겠나? 하지만    번개도 주무기인 뿔걸기가 안 있나? 뚝심은 또 어떻노? 두고봐라 우리 번개가 꼭   우승할끼다.”

번개는 승완이네 식구입니다. 아빠. 엄마가 돌아가시고 승완이는 번개를 동생처럼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번개가 피를 흘리며 싸울땐 승완이의 가슴에도 피멍이 듭니다.

"번개는 힘이 철철 넘치는 청년이고, 럭키는 지 아무리 잘 싸운다해도 할밴기라.    우리 번개도 전국민속소싸움대회에 나가서 8강 안에 들었다 아이가. 잘 싸워 줄기   다."

승완이는 럭키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삼촌은 번개가 이긴다고 하지만 어린 승완이가 보기에도 럭키가 우승할거라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럭키는 거친 숨소리를 뿜으며 모래 바닥을 박박 긁습니다. 부리부리한 눈매와  굵은 목. 거기다가 위로 곧게 뻗어있는 옥뿔은 하늘을 뚫을 듯 합니다. 끌칼과 줄등으로 어찌나 날카롭게 갈았던지 소머리 위에 쇠창을 꽂은 것처럼 보입니다. 럭키가 '움~머'하고 우렁차게 울어댑니다.

“울움소리 한번 우렁차네. 역시 작년 챔피언답구만.”

“하모, 3연패한 소인기라. 럭키를 이기는 소가 있으믄 내 손에 장을 지진다.”

검은 소를 구경하러 온 소 주인들이 럭키를 보고 한마디씩 거듭니다. 말뚝에 묶여있던 소들도 럭키에게 겁을 잔뜩 먹었는지 왕방울만한 눈을 움찔거립니다.

본부석에 간 삼촌이 번개를 끌고 오는 것이 보입니다.

“삼촌, 누구랑 붙게 되노? 럭키는 아이제?”

승완이는 럭키와 붙을까봐 조바심이 납니다.

“너무 걱정말거래이. 우승은 따놓은 당상인기라. 누가 훈련시켰는데…. ”

삼촌은 번개의 고삐를 오른 손으로 타닥 당기며 목덜미를 살살 쓸어줍니다. 번개도 자신있다는 듯 ‘움~머~머’ 하고 우렁찬 소리를 냅니다.

승완이도 기분이 한결 나아졌습니다. 번개를 끌고 서원지천으로 걸어갑니다. 먼저 온 소들이 적응 훈련을 한다고 강변이 소와 소주인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더 빨리 달리지 못하나. 그 비싼 십전대보탕까지 묵은 놈이 와 이리 비실거리노?’ 

메주만한 모래주머니를 다리에 달고 뛰는 소, 주인의 구령에 맞추어 무거운 타이어를 짊어지고 모래판을 뛰는 소, 강변은 소의 울음소리와 소주인들의 구령소리로 가득차 있습니다.

드디어 다음날이 되었습니다. 징소리에 맞추어 소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번개가 싸울 차례입니다. 번개는 삼촌의 예상대로 8강까지는 쉽게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4강에서 삿또라는 일본소와 붙어 한바탕 고비를 겪었습니다. 힘겨루기로 긴 시간을 끌었지만 번개의 뚝심으로 일본소 삿또는 줄행랑을 쳤습니다. 번개가 신이 나서 뒤쫒아갑니다. 흥분한 구경꾼들의 응원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당’ 결승전을 알리는 징소리가 경기장에 울려 퍼집니다. 번개도 힘이 드는 지 헉헉거립니다. 그러나 번개도 이번 싸움이 중요한 것을 알고 있는지 젖먹는 힘까지 다해서 싸우고 있습니다. 다른 날보다 더 늠름해 보입니다.

“이봐라. 니 들었나? 소주인이 럭키에게 소주를 사다가 한말이나 먹였다카데. 그라믄 소가 엄청 사나워안지나.”

“뭐라고? 소주를? 그라믄 반칙 아이가? 누가 이길 것 같노? 몸집으로 보나 기술로 보나 럭키가 이기겠제?”

“아이다. 어제 니 안봤나? 번개랑 삿또 붙는 거 번개도 만만치 않을 긴데.”

구경꾼들은 저마다 누가 이길 것인가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승완이는 기도합니다.

‘엄마, 번개가 이기게 해도. 내 소원이다.’

구경꾼들은 어느 소가 이길 것인지 모든 눈들이 럭키와 번개에게 쏠려있습니다. 삼촌이 번개의 고삐를 잡고 경기장 안으로 들어갑니다.

“번개야. 뿔로 세게 박아뿌라!”

“더 세게 밀어붙이라. 번개 니는 힘 조~ 타 아이가”

“아자 아자 번개 화이팅!”

흥분한 구경꾼들이 목이 터져라 응원을 합니다.

럭키가 주인의 손에 이끌려 거드럼을 피우며 싸움장 안으로 들어옵니다. 럭키는  화가 났는지 말뚝같은 앞발로 모래바닥을 퍽퍽 긁어댑니다. 힘이 얼마나 좋은 지 관중석까지 모래가 튀어 오릅니다. 심판이 나와서 대결할 소들 사이에 쳐져 있는 붉은 포장을 치웁니다.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숨을 죽입니다. 번개와 럭키는 서로의 기술을 알아내려는 듯 잘 단련된 뿔들을 맞대고 있습니다.

물러설 줄 모르는 힘겨루기가 30분 이상이나 이어졌습니다.

“번개야, 힘내라”

“번개야. 멋지게 뿔 한 번 걸어봐라!”

흥분한 구경꾼들이 응원을 합니다.

“번개야, 럭키의 목을 노려! 그러다가 니 힘 다 빠지겠다.!”

싸움장 안에는 삼촌과 럭키주인 심판 두 명이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승완이는 관중석에 앉아 있지 못하고 말뚝에 기대어 번개를 응원합니다.  ‘번개, 아자 아자’ 라고 붉은 글씨로 서있는 깃발이 바람에 펄럭입니다. 무척이나 힘이 드는지 번개의 혀가 한자나 빠져나와 있습니다. 번개의 늘어진 혓바닥이 모래바닥에 닿을 것 같습니다. 숨소리가 거칠어집니다. 입가에는 허연 거품이 흘러내립니다.

“심판 뭐하노? 너무 시간 끈다. 싸움 좀 부치라.”

누군가가 소리칩니다. 심판이 머리를 맞대고 있는 둘 사이를 떼어냅니다. 천하무적 럭키도 지치나 봅니다. 허연 콧김을 연신 내뿜습니다. 날카롭고 부리부리한 눈에 벌겋게 핏발이 비칩니다. 드디어 럭키가 번개의 목 밑을 연달아 공격합니다. 럭키의 날카로운 뿔이 번개의 목을 박습니다. 번개의 몸이 비틀거립니다. 번개의 얼굴에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승완이는 보았습니다. 마치 ‘승완아, 나 좀 살려줘.’ 하는 것 같습니다.

‘저러다가 번개가 럭키의 뿔에 찔려 죽는 것은 아닐까? 삼촌한테 그만 항복하라고   할까.’

승완이의 입안이 바짝바짝 타들어 갑니다. 지난번 소싸움에서 황소 한 마리가 죽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번개가 자꾸 밀리는 것 같습니다. 번개가 물똥을 줄줄 쌉니다. 럭키는 역시 번개에겐 버거운 상대인 모양입니다.

번개와 럭키의 위치가 바뀌었습니다.  잠시 뜸을 들이더니 번개가 잽싸게 갈고리 뿔로 럭키의 뿔을 걸려고 합니다. 럭키가 움찔 겁을 먹는 것 같더니 다시 번개를 공격합니다. 벌써 싸움이 시작된 지 1시간이 지나갑니다. 이번 경기에서 제일 긴 시간을 싸우고 있습니다.

“와 이래 결판이 안 나노. 이러다가 밤새도록 하는 거 아이가?”

구경꾼들은 저마다 한 소리씩 합니다. 웅성거리는 구경꾼들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번개는 럭키의 뿔에 세게 박혔는지 머리에서 붉은 피가 흐릅니다. 아무래도 번개가 죽을 것만 같습니다.

‘엄마, 보고 있나? 번개 좀 도와 주라. 저러다가 죽겠다.’    

번개가 럭키의 뿔에 박혔습니다. 번개의 눈에서도 피가 흐릅니다. 그 모습을 본 승완이가 말뚝을 훌쩍 뛰어넘어 번개에게로 갑니다. 삼촌이 승완이를 보고 놀라서 소리칩니다.

“퍼뜩 밖으로 안 나가나? 소뿔에 받쳐 뒤지고 싶나? 얼른 나가라!”

그 때 옆에 있던 심판관이 승완이를 질질 끌고 나갑니다. 승완이는 나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삼촌, 그만 싸우게 해라. 번개 죽으믄 우짜노? 내 중핵교 안 다녀도 된다. 새 자전거 사달라 안 할게. 그만 해라. 저러다가 번개 죽겠다. 엉~엉~엉~”

그 때였습니다. 번개는 갑자기 몸을 획 돌더니 무섭게 럭키에게 돌진합니다. 그리고는 단단한 갈고리뿔로 럭키의 뿔을 꼼짝 못하게 꽉 걸었습니다. 번개의 남은 힘이 머리에 다 쏠려있습니다. 번개의 두 눈에서 피가 흐릅니다. 눈이 따가운지 두 눈을 꿈벅거리며 ‘워~ 워~ 워’ 소리를 뱉어냅니다. 번개가 울부짖는 소리가   경기장에 울려 퍼집니다.

눈깜짝할 사이 럭키의 뿔이 꺾여 하늘 위로 치솟습니다. 사람들은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뿔을 넋을 잃고 보고 있습니다. 기침소리하나 들리지 않습니다. 구경꾼들은 처음 보는 광경에 넋을 잃었습니다. 럭키의 뿔이 부러져 모래판에 나뒹굽니다. 럭키의 머리에 피가 흥건히 고입니다. 럭키는 번개에게 진 것이 화가 나는 모양입니다. 모래판에서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합니다. 간신히 소주인이 럭키를 달래어 고삐를 쥐고 싸움장을 벗어납니다.

관중석에 앉아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구경꾼들이 우르르 번개에게로 몰려듭니다. 번개의 뿔에는 어느새 오색띠가 칭칭 감겼습니다. 번개도 자신이 이번 경기의 승자라는 것을 아는지 고개를 쳐들고 ~머’ 하고 우렁찬 소리를 냅니다.

승완이는 번개에게로 달려가 목을 바짝 끌어안습니다. 번개는 머리를 흔들며 승완이의 얼굴에 비벼됩니다. 삼촌도 곁에 서서 번개의 목덜미를 쓰다듬어 줍니다.

“잘 싸웠다. 니는 마 세계에서 제일가는 명소인기라. 니 덕분에 승완이도 중핵교 가고 내는 장가가고. 허허. 운이 튼 기라. 번개야 니는 우리 식군기라.”   

언제 왔는지 풍물패들의 한마당 소리가 들려옵니다.

‘깨깽~갱~

꽹과리 장단에 맞추어 구경꾼들이 들썩들썩 어깨춤을 춥니다. 소싸움 대회의 축제가 벌어집니다. 어둠이 몰려옵니다. 모래판에 오색찬란한 폭죽이 터지고 하늘 끝까지 모닥불이 타오릅니다. 서원지천 강변이 들썩거립니다.

승완이는 눈물이 그치질 않습니다. 경기장을 빠져나온 승완이는 강변에 걸터앉았습니다.

‘엄마, 아빠가 교통사고로 죽지않고 살아있었다면 을마나 기뻐했겠노.’

강 건너 고니 한 쌍이 춤을 춥니다. 번개가 우승한 것을 아는 모양입니다. 쌉쌀한 봄바람이 승완이의 뺨을 훅 스치고 갑니다. 엄마가 좋아했던 벚꽃 잎 한 장이 눈물로 뒤범벅된 승완이의 얼굴을 닦아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