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

진천 농다리

凡草 2005. 9. 13. 08:51

[들녘을 내려다보며 익어가는 수수]


천년의 전설... 진천 "농다리"


추석을 일주일 앞둔 들녘에는.....
가을이 질퍽하게 밀려와 있었다.

넓은 벌 들녘마다...
누렇게 익어가는 벼이삭들이...

토실토실 여물어가는 ...
알곡의 속살만큼이나 겸손해하며...
다소곳이 고개숙여가고 있었고...

싱글벙글 ...
괜시리 기분좋아하는 가을하늘에는...


[뭉게구름]


목화송이 같은 뭉게구름이 ...
산마루 위에 걸터 앉아...
포근하게 가을을 감싸고 있었다.

중부고속도로를 한시간 정도 달려 ...
진천I/C를 벗어나 좌회전해 들어가니 ....

"
생거진천(生居鎭川), 사거용인(死居龍仁)" 
살아서는 진천에서 살고,
죽어서는 용인으로 가라~!는...


[가을을 마중나온 잠자리]


유명한 옛말의 진원지인 진천시내가 ...
가을에 흠뻑 젖은 모습으로 눈 앞에 달려왔다.

옛날부터 진천은 ...
평야가 넓고 토지가 비옥하여 산물이 풍성할뿐 아니라...

가뭄과 홍수가 별로 없어 농사가 잘되니...
인심이 좋고 살만한 곳이라 하여...
생거진천(生居鎭川)이라 하였고...


[들녘의 풍요로움을 꿈꾸는 거미]


용인은 산세가 순후(順厚)하여 ...
사대부(士大夫) 집안의 묘소가 많아...

사거용인(死去龍仁)이라 하였다던가?

김유신장군이 태어난 곳이고....
쌀의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다는 진천시내는...

그러나..
"생거진천"이라는 옛말과는 달리...
아직은 많이 낙후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마을어귀에 서 있는 송덕비, 사적비, 치적비들]


진천시내의 성석사거리에서 좌회전...
지석마을을 지나치니.....

곳곳에 ,,,
효자문, 충신문, 열녀문 등이 서있었고...

무슨무슨 치적비, 사적비, 숭덕비 등이 ...
떼거리로 모여있었다.

역시 살기 좋은 "생거진천"이라...
훌륭한 사람들도 많이 태어났던 모양이다.


[강낭콩과 고추]


늘어진 붉은 강낭콩꽃 아래.....

강낭콩 꽃만큼이나 붉은 햇고추가
아스팔트위에서 정신없이 졸고 있는 도로에는...

"
생거진천(生居鎭川) 화랑축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있었고


[농다리 입구 이정표]


바로 그 앞에서 만난 "진천농교" 이정표를 따라
좌회전해 들어가니....

소금을 뿌려 놓은 듯...
하얗게 피어오른 메밀꽃이 눈처럼 피어 있었다.

우거진 칡넝쿨을 따라 ...
고속도로 굴다리를 휘적휘적 통과해 나가니...


[농다리 1]


아~! 말로만 듣던 돌다리 하나가 ..
아름다운 모습으로 눈앞에 나타났다.

세금천(洗錦川)이라는 시냇물 위에 놓인....
이 "농(籠)다리"는
고려시대에 쌓은 것이라는데...

1,000년의 풍상에도 이지러지지 않고 남아 있어...
더 유명해진 다리가 되었다고 한다.


[농다리 2]


농다리는 ....
붉은색 자연석을 물고기 비늘처럼 쌓은 징검다리로서...

교각을 먼저 돌로 쌓은 후....
암돌과 숫돌을 엇갈리게 끼워 맞춘 후...
상판석을 1개 혹은 2개씩 얹어서 쌓은 ..

길이가 약 93m에 교각이 24칸인 ....
거대한 지네형상을 하고 있었다.


[농다리 3]


농다리의 돌 교각 사이로는...
황톳빛 탁류가 거세게 흐르고 있었고.

거세게 흐르는 탁류를 따라 세월도 흐르고 있었다.

여울을 따라 흐르는 세월을 역류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다리를 건너보았다.


[농다리 4]


경쾌한 물소리를 따라 .....
졸졸졸졸 가을도 함께 흐르고 있었다.

다리는 ....
마을과 마을, 마을과 세상을 잇는 통로라는데...

농다리는 돌 징검다리를 통해....
여름과 가을, 계절을 이어주고 있었고...
그 끝에 팔각정을 매달고 있었다.


[농다리 5]


밟으면 움직이며 잡아 당기는 돌이 있어
"농다리"라고 불렀고...

"지네"처럼 생겼다고 해서
한문으로 농교(籠橋)라고 부른다는 이 다리가...

어떻게 해서 천년 동안 무너지지 않고...
"천년의 전설"을 간직할 수 있었을까?



[농다리 6]


징검다리 밑을 흐르는 물을 보니.....

징검다리를 배경으로 한....
어느 소년 소녀의 풋풋한 사랑이야기인....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가 떠올랐고..

신발을 벗어 피라미를 잡던...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들도
아이들의 재잘거림처럼 밀려왔다.


[아람이 벌어지기 시작한 밤]


하늘엔 산들바람이 흘렀고....
농다리엔 졸졸졸졸 시냇물이 흘렀다.

그리고 또...
농다리 위를 성큼성큼 가을이 다가오고 있었고...

그 가을을 영접이라도 하려는 듯한
밤송이들이 ..

따사로운 가을햇살아래 토실토실 ...
농다리처럼 여물어가고 있었다.


<끝>
[농다리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