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년 9월 10일 토요일 구름 >
내일은 오전부터 해운대 벡스코에서 열리는 한글 백일장 심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오늘 일찍 밀양에 가기로 했다.
가끔 한 번씩 밀양 시골집에 가더라도 밥을 해먹거나 자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필요한
짐을 대충 갖다 놓긴 했지만 그래도 가보면 빠진 것이 많았다.
그래서 아내는 빠뜨린 것이 없도록 메모지에 꼼꼼하게 적어서 하나 하나 챙겨서
차에 실었다. 아내 덕분에 이제 시골집에 가도 별로 불편한 것이 없고 정리가 거의 다
되었다.
얼마 전에는 우리가 새로 집을 사서 이웃이 되었다는 인사를 하기 위해 이웃들에게
떡과 음료수를 돌렸다. 이웃집은 10집 정도밖에 안 되니까 조그만 마을인 셈이다.
게다가 우리 집은 마을 끝부분에 자리 잡고 있어서 일부러 찾아오지 않으면 집안이
보이지 않고 어쩌다 우리가 가도 아무도 간섭하는 사람이 없었다. 마을은 항상 조용한
편이었고 사람들은 모두 순박해보였다.
지난 번에는 냉장고를 새로 사서 넣었고, 오늘은 신발장도 샀다.
아내는 가자 마자 실과 바늘로 구멍이 난 방충망을 손보았다. 약간 벌어진 틈으로
파리와 모기가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방충망을 손보았더니 파리와 모기들이 얼씬거리지 않아서 좋았다. 시골이라도 문만
잘 단속하면 도시 못지 않게 깨끗하였다.
나는 아내를 도와준 뒤에 밭으로 나갔다.
( 벌레 때문에 다 망쳐 버린 고추밭 )

밭에는 그전에 살던 사람이 고추를 많이 심어 놓았는데 거의 벌레가 먹어서 보기에
흉할 정도였다. 고추를 따려고 보니 70-80% 정도는 벌레가 먹어서 딸 수가 없었다.
성한 것만 가려서 약 2근 정도를 딸 수 있었다.
나는 그 매운 고추에 벌레가 득실거리는 것을 보고 시장에서 파는 고추들이 얼마나
많은 농약 세례를 받고 살아남았는지를 알았다. 나는 시골에 사는 동안에 자연 효소를
만들어서 벌레를 막을 생각이다. 내가 심은 채소를 벌레에게 다 먹히는 일이 있더라도
농약만은 치고 싶지 않다.
그런데 가지에는 벌레가 별로 달라들지 않았다. 가지는 야들야들한데도 벌레가 없는
것을 보면 보기에는 약해보여도 강한 성분을 지니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깻잎도 벌레가 거의 없었다. 이제부터 가지와 깻잎을 더 많이 먹어야겠다.
그 전에 산마루에서 가을 배추를 처서 전후에 심은 일이 생각났다. 그래서 병든
고추를 다 뽑아 버리고 그 자리에 배추를 심기로 했다.
나는 몇 고랑이나 되는 고추를 일일이 뽑아내고 수산 장에서 사온 배추 모종을
심었다. 밭이 그리 넓지 않은데도 요령이 없어서 그런지 꽤 시간이 많이 걸렸다.
배추를 다 심고 나니 허리가 아프고 다리도 쑤셨다.
어휴, 난 시골일을 해서 먹고 살긴 어렵겠구나. 그저 취미 정도는 모르겠지만.
겨우 이 정도를 하고 나서 피곤하다니....
( 내가 심은 배추 모종 )

밭일을 다 하고 저녁을 먹으니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아내는 나보고 개미라고 놀리지만 도시의 아파트에 갇혀 컴퓨터를 하거나 교실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일만 하다가 시골에 오면 일하는 것이 즐겁다. 농부들처럼 생업을
위해 죽자 사자 일하는 것이 아니고 심심풀이로 하는 일이니 조금 피곤하면
어떻겠는가! 내겐 시골일이 헬스요 운동이나 다름없다. 오늘 고추를 정리하고 배추를
심은 일은 팔운동과 다리 굽히기 운동이었다.
땀흘리며 일한 탓인지 저녁을 먹자마자 골아 떨어졌다.
한숨 푹 자고 나서 한밤중에 소나기 오는 소리를 듣고 잠이 깨었다.
후두둑-. 후두두둑-. 쏴아- 쏴아아-.
감나무 잎과 지붕, 대숲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엄청나게 크게 들렸다.
빗줄기는 지붕을 때리고 대숲을 울렸다. 온 사방이 비에 포위된 느낌이었다.
마치 백만 대군이 몰려 오는 것처럼 시끄러웠다. 비가 오는데 이렇게 소란스러운 적은
처음이다.
나는 그 소란스런 소리를 기분좋게 감상하였다.
한참 퍼붓던 비는 이윽고 조용해졌다.
또독- 똑- 또옥-.
나는 다시 눈을 붙이고 잠을 청했다.
( 산마루에서 옮겨 심은 사랑초 )

다음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마당에 있는 잔디를 낫으로 베었다.
잔디를 정리한 뒤에 마당 여기 저기에 난 잡초를 뽑고 나무들을 둘러보았다.
대문 옆에 심어 놓은 살구나무는 파란 잎을 달고 있는 걸 보니 완전히 살았고,
집 앞 화단에 심은 사랑초도 살아나서 하얀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리고 부산으로 가기까지 남은 시간에는 장대로 감을 땄다. 익은 홍시가 참 달았다.
나무가 높아서 많이 따지는 못했지만 몇 개 따 먹은 것으로도 흡족했다.
다음에 오면 감을 실컷 따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마을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이 계시니 나 아니면 감 따먹을 사람도 없을 것 같다.
( 집 뒤에 있는 감나무 )

이웃에 있는 어느 할머니 말을 들으니 이 마을 여기 저기에는 뽕나무 열매인 오디도
많이 열린다고 한다. 내년 5월에는 오디도 많이 따서 오디술을 담아야지.
집 안팎을 정리 하느라 아직 산도 둘러보지 못했는데 다음에 오면 산에도 올라가보고
집 앞에 있는 저수지 주변도 자세히 살펴보고 싶다. (*)
( 고추를 파 먹은 노린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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