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똥구리 까만 운동화
유효진
저 애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너럭바위에 누워 하늘만 보고 있습니다. 이모가 주고 간 빨간 손목시계가 두 시를 가리키고 있는데요. 나는 지금 늙은 참나무 높은 곳 가지 위에 앉아 있습니다.
여기서 저 아래 너럭바위 위에 누워 있는 저 애, 저 남자애를 쳐다보고 있은 지도 한 시간 반이나 지났습니다. 그런데도 저 애는 꼼짝도 않고 하늘만 보고 있습니다. 초가을 하늘엔 구름 한 점 없는 빈 하늘인데요.
올해 초여름. 처음 저 남자 애를 이 고래산 들판에서 만났을 때, 저 애는 소똥 앞에 쭈그리고 앉아있었어요. 그리고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말입니다. 소똥만 쳐다보고 앉아 있었지요. 저 애를 네 번째 보고 고래산에서 내려온 날 할머니가 물었습니다.
“또 산에 갔다 오냐?”
“예.”
“누가 지 애비 딸 아니랄까봐 그것도 닮았구나. 혼자서 산에 싸돌아다니고, 나무 기어올라 다니는 게.”
“꼭 네 애비 어릴 적이다.”
나는 할머니 말을 뚝 자르고는 할머니 입에서 흘러나올 다음 말을 먼저 읊었습니다. 그동안 같은 말을 백 번 정도는 들었는걸요. 할머니는 나를 흘겨보더니 생각이 난 듯 물었습니다.
“참! 산에서 누구 못 봤냐?”
“봤어요. 모르는 남자 애가 있던데.”
“그래? 몇 살이나 돼 보이냐?”
“나랑 비슷해 보였어요. 키는 나보다 크지만 걔도 4학년 쯤 된 것 같아.”
“장씨가 데려왔다는구나. 길에서 구걸 하는 걸 불쌍해서 데려온 모양이야. 오지랖도 넓 지. 자기 몸 하나 의지 갈 데 없어서 쭈그렁바가지 같은 데서 그리 살면서, 쯔쯔.”
장씨 아저씨는 지난해 여름 우리 마을로 흘러 들어온 사람입니다.
아무도 살지 않는 고래산 중턱 낡은 오두막에요. 오래 전에 버려진 오두막에 말입니다. 아저씨가 온 날 밤이었습니다. “아니, 저곳에 웬 불빛이여?” “귀신도 안 살 너덜거리는 오두막에 불빛이라니 별일이구먼.” 어른들은 늦은 밤 놀라운 표정으로 산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엄마, 도깨비불인가 봐.” 내 동생 영도는 엄마 손에 매달려 겁먹은 눈빛으로 말했었어요. 사람들은 다음날에야 갈 곳 없는 사람이 우리 마을로 왔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장씨 아저씨였습니다.
그 날 이후 장씨 아저씨는 빈 오두막에 살게 되었습니다. 고래산 중턱에 달랑 하나 있는 낡은 오두막에요. 낡아서 쓰러져가긴 해도 빈털터리 아저씨에겐 그나마 행운이었을 겁니다. 사방을 두꺼운 천으로 막아 놓으니 제법 집 같아 보였거든요. 아저씨는 이 집 저 집 허드렛일을 도와주고는 품삯으로 살아갑니다. 틈나는 대로 마을 소들을 데려다 고래산 중턱에서 풀을 뜯게도 합니다. 그래서 고래산 중턱 들판에는 소똥이 유난히 많습니다. 할머니 말로는 장씨 아저씨가 겨우 입에 풀칠만 하고 산대요. 가난하다는 뜻이겠지요.
그런데 혼자 먹고 살기도 힘든 처지에 쇠똥구리를 데리고 오다니요. 쇠똥구리요? 바로 저 남자애를 말하는 겁니다. 이름을 몰라서 나 혼자 그렇게 정해버렸어요. 이름을 물어보고 싶었지만요, 이상하게 마주치면 입이 떨어지질 않았습니다. 저 애도 나만 나타나면 얼른 들어가 버리기도 했고요. 그래서 내 맘대로 쇠똥구리라고 정해버린 겁니다. 소똥을 좋아하는 이상한 애 같아서요. 쇠똥구리나 소똥을 좋아하지, 이상하고 별나지 않고서야 어떻게 소똥을…….
나무 위에 올라 온지가 너무 오래 돼서 소변이 마려워 죽겠습니다. 그런데 저 애가 가질 않으니 내려가질 못하겠어요. 내가 일부러 숨어서 자기를 훔쳐보고 있던 걸로 오해할지도 모르잖아요. 내가 먼저 올라왔는데 말입니다. 게다가 오늘따라 치마를 입고 올라왔으니 참 난처합니다. 내가 아무리 사내 같은 여자애라도 체면이 있지.
“으으, 오줌마려 죽겠다.”
하필이면 나무 위에 올라와 있을 때, 여기까지 와서 너럭바위에 누울 건 뭔지요. 오늘도 소똥이나 들여다 보고 있든가 할 것이지. 얼굴이 점점 찌푸려집니다. 참기 힘들어 배를 쓸며 중얼거려봅니다.
“쇠똥구리, 좀 가 줄래?”
그러나 남자 애는 돌아눕지도 않습니다.
“아이고, 배야. 못 참겠다, 씨이.”
난 허리를 구부리고 일어나 조심조심 발을 딛었습니다. 더 이상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저 애가 가길 기다리다간 난 오줌을 싸고 말 겁니다. 저 애한테 들킬까봐 도둑고양이처럼 살금거리며 내려가자니 다리가 후들거립니다. 나무 둥치 뒤를 붙들고 내려오다 고개를 삐죽 내밀고 보니 그 애는 여전히 하늘만 보고 있습니다.
“휴우, 됐다.”
난 나무에서 내려오자마자 풀숲에 몸을 숨기고 앉았어요. 그리곤 앉은 채로 오리새끼처럼 뒤뚱거리며 계곡으로 내려왔습니다. 오자마자 바위틈에 앉아 속옷을 내리고 앉았습니다. 소변을 보는 것이 이렇게 행복해 보기는 처음입니다. 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고 가까운 곳에 있다더니 정말인 것 같았습니다.
“이제 살겠다.”
그런데 그때였습니다.
“딱!”
돌멩이 한 개가 느닷없이 날아와 저만치 앞에 떨어졌습니다. 놀라서 벌떡 일어서는데 또 한 개가 날아와 바로 앞에 떨어집니다. 뒤를 돌아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어요. 잽싸게 계곡 위로 올라왔는데 풀숲에서 까만 머리 하나가 보였습니다. 우거진 수풀 속에 꼭 까만 동그라미 하나가 가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 애였습니다. 순간 얼굴이 후끈 달아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숯불처럼요. “쇠똥구리, 너 죽었어, 씨이.” 난 내 소매 끝에 붙어있던 풍뎅이도 듣지 못할 만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기분이 개운치 않았습니다. 그 애한테 들킨 것도 그렇지만 속옷이 젖어있었기 때문입니다. 놀라서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적시고 말았거든요. 이 꼴이 될 줄 알았으면 차라리 나무 위에서 싸버릴 걸 그랬습니다.
며칠 째 고래산에 가지 않았습니다. 할머니가 웬일이냐고 네 번 정도 물었습니다. 처음엔 ‘그냥’ 이라고 대답했는데 자꾸만 물어보니까 성질이 났습니다.
“가든지 말든지 할머니는 그게 뭐가 그렇게 궁금해! 짜증나.”
“아고, 깜짝이야. 배라먹을 년.”
“할머니!”
할머니는 가끔씩 나한테 ‘배라먹을 년’ 이라고 욕을 하는데 참 듣기 싫습니다. 내가 언젠가 담임선생님께 그게 무슨 말이냐고 했더니,
“그건 빌어먹으라는 욕이니까 아주 나쁜 말이지. 누가 그런 소리 하니?”
하고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난 차마 우리 할머니라고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 동네 박씨 할머니가요.”
“박씨 할머니?”
“예……. 오리집 박씨 할머니요.”
우리 할머니가 박씨이긴 하지만 동네 할머니라니요. 더군다나 오리집 박씨 할머니라니 동네엔 오리집이라곤 없습니다. 난 불쑥 튀어나온 내 거짓말이 참으로 기가 막혔습니다. 선생님은 감쪽같이 속아 넘어 가는 것 같았지만 기분은 굉장히 나빴습니다. “할머니 때문이야.” 난 그 날 이후 결심했었습니다. ‘다시는 그 욕을 듣지 말아야지. 그리고 못하게 할 거야.’ 그런데 드디어 오늘 할머니가 또 그 욕을 하신 겁니다.
“할머닌 내가 빌어먹고 살았으면 좋겠어? 저 쇠똥구리처럼 됐으면 좋겠느냐고?”
소리를 빽 지르고 밖으로 나왔는데, 걷다보니 나도 모르게 고래산을 향하고 있었어요. 발걸음을 멈추고 되돌아갈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그냥 걸었습니다. 아까보다 씩씩하게요. ‘고래산 들판이 자기 건가 뭐. 나무들도 들판도 너보다는 나하고 친해. 넌 굴러들어온 돌이야.’ 난 주먹을 불끈 쥐고 들판으로 올라갔습니다. 싸움터에 가는 사람처럼요. 주변을 돌아보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치. 난 너한테 지은 죄 없어, 뭐. 몰래 본 건 너야. 그러니까 죄인은 너지.” 나는 진짜 그 애에게 말하듯 중얼거리며 참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내려다보니 너럭바위 위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난 작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어요.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세 번 쯤 불렀을 때였습니다.
“시끄러워. 그만 불러! 노래도 못하면서.”
얼마나 놀랐는지 나는 하마터면 나무에서 떨어질 뻔 하였습니다. 나보다 더 꼭대기에 그 애가 앉아 나를 보고 있을 줄이야……
쇠똥구리가요. 난 아무 말도 못하고 그 애만 쳐다보았습니다.
그 애는 잠시 나를 노려보더니 다른 나무 가지를 밟고 내려갔습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뭔가를 들켜버린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갑자기 화가 치밀었어요. 그래서 목소리를 몇 단계는 높여 또 불렀습니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돌멩이 하나가 참나무 잎 사이로 날아왔습니다. 연거푸 세 번 날아왔습니다.
“야! 쇠똥구리!”
난 노래를 하다말고 소리를 빽 질렀습니다. 소리를 지르고 보니 그 아이는 벌써 저만치 가고 있었어요. 난 다시 한 번 더 크게 외쳤습니다.
“쇠똥구리! 배라먹을 놈!”
못 들었을까요. 그 애는 뒤도 보지 않고 가고 있었습니다.
내가 그렇게 심한 욕을 했는데 말입니다. 어떤 뜻인지 모르는 것일까요?
난 더 이상 나무 위에 있기가 싫어졌습니다. 갑자기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늘 혼자 와서 놀고 가던 곳이었는데 말입니다. 나무를 내려오다 보니 어느 틈에 손등 위에 쇄기 한 마리가 들러붙어 있었어요.
“요게.”
쇄기를 떼어내려고 손을 움직이는 순간이었습니다.
발이 미끄러짐과 동시에 난 뚝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아! 아야야! 엄마아!”
다리를 붙잡고 앉아 한참동안 울다보니 까만 운동화가 내 발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테두리에 흙이 덕지덕지 묻은 뜯어지고 낡은 운동화가요. 올려다보니 그 애였습니다. 그 애는 내 다리를 말없이 쳐다보더니 등을 돌리고 앉았습니다.
“업혀. 다쳤을 때 맘대로 움직이면 큰일 난대.”
그 애는 두 번을 쉬어가며 나를 오두막에 업어다 놓았습니다.
“마을까지는 못 업고 가. 이따 아저씨가 오면 업어다 주시겠지.”
그 애는 퉁명스럽게 말한 후, 나와 뚝 떨어져 앉았습니다.
그리곤 말없이 바닥에다 손가락 글씨를 썼습니다. 오두막 가장자리엔 온갖 잡동사니 물건들로 널려 있었습니다. 낡고 지저분한 옷가지 옆에 냄비며 도마까지도 말입니다. 반찬 그릇도 여기저기 놓여 있었어요. 그걸 보니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내가 훌쩍거리자 그 애가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어요.
“아프겠지만 조금만 참아. 아저씨 오실 때 됐어.”
그 애의 목소리가 아까보다는 부드럽게 느껴졌습니다. 난 대답도 안 하고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습니다. 한참동안 앉아있던 그 애가 여전히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습니다.
“난 어렸을 적에 바닷가에 살았었어. 엄마랑……아까 그 노랜 우리 엄마 노래야. 내가 일학년 때까지 들었던 노래.”
그 애는 그러더니 말을 끊었습니다. 한동안 가만히 있던 그 애가 작은 소리로 물었습니다.
“내가 왜 쇠똥구리니?”
“미안해.”
“아냐. 싫어서 물어보는 거 아냐.”
난 그 애가 당연히 기분 나빠서 묻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애는 엉뚱한 말을 했습니다.
“난 쇠똥구리도 못 돼. 쇠똥구리였으면 좋겠다.” “…….”
“소똥 알 속에서 나오는 새끼 쇠똥구리를 본 적 있니? 쇠똥구리들은 자기 새끼를 지키려고소똥을 동그랗게 뭉쳐서 그 속에다 자기 새끼를 낳는대. 위험할까봐 그러는 거래.”
“…….”
“쇠똥구리는 나보다 나아. 집도 있고 지켜주는 엄마도 있고.”
나는 이제야 그 애가 소똥 앞에 앉아 무엇을 보았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도요.
“아까 엄마 생각이 났어. 너 노래 들으면서……미안하다. 화내서.”
“괜찮아. 근데 넌 이름이 뭐야?”
“이름은 뭘. 계속 쇠똥구리라고 불러. 나도 너 참나무라고 할 테니까.”
그 애는 그러더니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눈가가 젖어 있었어요. 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요. 뺨 위로 눈물이 흐른 것도 같습니다. 어두워졌는데도 장씨 아저씨가 돌아오질 않습니다.
투둑투둑
천정에서 소리가 들려옵니다. 비가 오기 시작한 모양입니다.
저녁부터 비가 내린다하더니. 오두막 지붕 위에 비닐이 덥혀 있어서 그런지 빗방울 소리가 크게 들려왔습니다. 말없이 앉아 있는 내 머리 위로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쇠똥구리 머리 위로도 떨어집니다. 천정을 올려다보니 여기 저기 구멍이 나 있습니다. 또 눈물이 주르륵 나옵니다.
“너 많이 아프구나. 기다려. 내가 너희 집 가서 어른 불러 올게.”
그 애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우리 집 모르잖아.”
그 애는 이마를 긁적이더니 수줍은 듯,
“아냐. 알아.”
하고는 도망치듯 오두막 밖으로 나갔습니다. 우산도 없이요. 오두막 안을 휘 둘러 보았으나 우산이라곤 보이지 않습니다. 그 애의 발자국 소리가 크게 들려오더니 금세 작아졌습니다. 내달리는지 발자국 소리가 촘촘히 들려오더니 말입니다.
옆을 보니 찢어진 신문지가 놓여 있었어요. 아까 얼핏 볼 땐 몰랐는데 다시 보니 신문지 글씨 위에 낙서가 되어 있습니다.
‘참나무 참나무 참나무……내 친구 참나무.’
쇠똥구리가 썼을까요?
“계속 쇠똥구리라고 불러. 나도 참나무라고 부를 테니까.”
참나무가 마음에 듭니다. 빗소리를 들으며 앉아있자니 머리 속에 까만 운동화가 그려집니다.
덕지덕지 흙이 묻은 낡은 운동화가요.
비에 흠뻑 젖은 까만 운동화가 뽕나무 오솔길을 뛰어가고 있습니다. 철벅철벅 흙탕물 튀기는 소리도 들립니다. 비에 젖은 낡은 운동화가 마을을 향해 달리며 자꾸만 말을 합니다.
“쇠똥구리였으면 좋겠다. 쇠똥구리였으면 좋겠다…….”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
눈물이 자꾸 나올 만큼 발목이 아프지도 않은데요.
배라먹을 놈이라는 내 말이 쇠똥구리 가슴에 박혔을까요?
아니 못 들었을까요?
들었으면 그 뜻을 쇠똥구리가 몰랐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들어서 가슴에 박혔으면, 그렇다면 저 빗물에 다 씻겨져 내려갔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좋겠습니다.
‘들었으면 쇠똥구리야, 그 말 다시는 기억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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