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창작

두더지의 기도 ( 김재원 )

凡草 2005. 11. 16. 07:55

  ==  창작 동화 ==
    두더지의 기도 
                                    김재원
 “똑똑똑!”
 흙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까만 두더지는 잡아온 지렁이를 먹고 있었습니다. 
고개를 내밀어 보니 갈색 두더지가 굴 앞에 서 있었습니다.
 “어, 웬일이야? 어서 들어와.”
 “잘 있어! 난 오늘 밤에 시골로 이사 간다. 너와 친하게 지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까만 두더지는 가슴 한 구석이 
‘쿵’하고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억? 끝내 너마저 가는구나!”
 “응. 마음이 불안해서 안 되겠어. 어지간하면 참고 살려고 했는데 언제 죽을지 
모르잖아. 그러지    말고 너도 나랑 같이 시골로 가는 게 어때?”
 “아냐. 난 그냥 여기 있을 거야. 미안해.”
 “알겠어. 그럼, 잘 지내!” 
 갈색 두더지는 아쉬운 표정을 짓더니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까만 두더지는 친구의 발자국 소리가 안 들릴 때까지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제 다 떠나버렸구나! 나도 시골로 이사가 버릴까?’
 까만 두더지는 잠을 설쳐 가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까만 두더지가 살고 있는 곳은 도시에 있는 어느 공원이었습니다. 
 까만 두더지가 어렸을 때는 주위가 시골처럼 넓은 들판이었습니다. 
그때는 땅 속에 벌레도 많고 아무 데나 쭉쭉 파고 다녀도 누구 하나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떤 날은 친구들과 누가 더 멀리 갈 수 있는지 하루 종일 쉬지 않고 
굴을 판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도 안 되는 동안에 주변 풍경이 확 달라졌습니다. 
지금은 공원 안에만 포슬포슬한 흙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공원 주위에는 높은 빌딩들이 하늘을 찌를 듯 우뚝우뚝 서 있습니다. 
두더지는 공원에서 한 발자국만 밖으로 나가도 쩔쩔매면서 다시 돌아옵니다. 
길들이 모두 단단한 아스팔트로 덮여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굴을 잘 파는 두더지라도 아스팔트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공원을 관리하는 아저씨는 두더지가 지나간 흔적만 보면 
인상을 찌푸리며 화를 버럭 내었습니다.
 “요놈의 두더지들이 공원을 망치네! 무슨 수를 써야지 안 되겠어!”
 아저씨는 두더지를 잡기 위해 굴속에 휘발유를 뿌리기도 하고 불을 피워서 
연기를 집어넣기도 하였습니다. 두더지는 휘발유 냄새가 어찌나 지독했던지 
코를 킁킁거리며 관리 사무소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달아났습니다. 
 그 뒤부터는 굴도 마음대로 못 파고 아저씨  눈치를 살피며 조심조심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공원에 놀러온 사람들도 두더지를 보면 
돌멩이를 마구 집어 던졌습니다. 까만 두더지의 동생도 굴 밖으로 잘못 
나갔다가 사람들이 던진 돌에 맞아죽었습니다. 까만 두더지는 동생 생각만 
하면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습니다.
 옛날에는 공원 안에 꽤 많은 두더지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두더지 수는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사람들한테 잡혀 죽기도 하고, 사람들의 해코지를 견디다 못해 
시골로 이사 가기도 하였습니다.
 까만 두더지도 공원을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곳에는 아빠와 엄마의 무덤이 있고 동생의 무덤까지 있어서 떠나기가 
싫었지만 사람들의 등쌀에 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까만 두더지가 드디어 떠나기로 마음 먹은 날 아침이었습니다. 
굴을 파면서 공원 울타리 쪽으로 가고 있는데 굴 속으로 무엇이 
톡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두더지가 등을 돌려보니 뜻밖에도 
사과 한 조각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가까운 곳에서 어린 아이 냄새가 
났습니다. 까만 두더지는 잠시 망설이다가 입에 넣고 조근조근 
씹어보았습니다. 새콤달콤하고 참 맛이 좋았습니다. 
  두더지가 사과를 받아 먹자 아이는 또 한 조각을 던져주었습니다. 
두더지는 이번에도 맛있게 받아 먹었습니다.
 ‘사람들이 다 나쁜 것은 아니구나!’
 두더지는 마음을 바꾸어 공원에 그냥 남기로 했습니다. 
 그 아이는 그 뒤에도 종종 공원에 찾아와서 먹을 것을 던져 주었습니다.
 그랬는데 막상 친하게 지내던 갈색 두더지까지 떠나고 나니 
온 세상이 텅 빈 것만 같았습니다. 
 다음날 밤에 까만 두더지는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고 아무 데나 마구 
굴을 팠습니다. 이쪽으로도 파보고 저쪽으로도 파보았습니다.
 쓱쓱 쏙쏙!
 공원을 지키는 아저씨는 이런 줄도 모르고 방 안에서 쿨쿨 자고 있었습니다.
 궁-궁-궁!
 까만 두더지가 한참 굴을 파고 있는데 무슨 소리가 들려서 가만히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 소리는 땅 속 깊은 곳에서 은은하게 들려왔습니다.
 구르르 궁- 궁- 궁!
 까만 두더지는 가슴이 벌렁벌렁 뛰었습니다.  
 ‘이건 분명히 큰일이 일어날 조짐이야!’
 돌아가신 아빠와 엄마가 가르쳐준 적이 있었습니다. 땅 속에서 무슨 소리가 
들릴 때는 조심해야 한다고.
 ‘어떡하지? 여길 당분간 떠났다가 저 소리가 그치고 나면 다시 돌아와야겠어.’
 두더지는 부리나케 어디론가 허둥지둥 달아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도 도시는 여전히 시끌시끌하였습니다. 음악이 크게 울려 퍼지고 요란한 
색깔의 간판이 휘황찬란하게 반짝거렸습니다. 차들도 뿡뿡거리며 반딧불처럼 
꽁무니에 불을 달고 바쁘게 오고 갔습니다.
 ‘빨리 피해야 하는데 왜들 저러고 있지?’
 까만 두더지는 정신없이 달려가면서도 도시에 닥쳐올 일을 생각하며 
몇 번이나 뒤돌아보았습니다.
 까만 두더지가 꼬빡 하루를 달아났을 때 도시의 땅 속에서는 슬슬 이상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지지지직-. 뿌지지직-.
 땅에 조금씩 금이 가고 갈라지더니 나중에는 땅 전체가 쿵쿵 흔들리고 푹푹 
꺼졌습니다.
 쿠르르쿵! 쿠웅 쿵!
 멀쩡하게 서 있던 빌딩들이 힘없이 스르르 쓰러졌습니다.
 “으아악! 큰일났다! 지진이다!”
 그제야 놀란 사람들이 아우성을 치며 날뛰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길이 끊어지고 집이 부서지고 곳곳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았습니다.
 도시는 폭격을 맞은 듯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었습니다.
 까만 두더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땅 속으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휴, 다행이야!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네!’
  그 순간 두더지 머리 속엔 먹이를 던져 주던 아이가 떠올랐습니다.
  ‘아 참! 내게 사과를 준 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두더지는 그 아이가 궁금해서 다시 도시로 되돌아갔습니다. 
 도시는 엉망진창이 되어서 어디가 어디인지 알아보기가 힘들었습니다. 
두더지는 사람들의 눈치를 힐끔힐끔 살피며 부지런히 돌아다녔지만 
그 아이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안 되겠어. 다른 사람들이라도 구해주어야지.’
 두더지는 흙 속에 묻혀 있는 사람들을 보면 휴대폰이나 지갑 등을 물어다가
 땅 위에서 보일만한 곳에 놓아두었습니다.
 그러면 구조대원들이 그걸 보고 땅에 묻힌 사람들을 구해주었습니다.
 까만 두더지는 땅 속을 누비고 다니다가 문득 자기가 살던 공원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였습니다. 
 그래서 이곳 저곳을 헤맨 끝에 마침내 공원을 찾아내었습니다.
 까만 두더지가 공원 안으로 들어가 보니 공원 입구에 있던 관리 사무소도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있었습니다. 가스통이 터졌는지 부서진 건물에서는 
불까지 치솟고 있었습니다. 까만 두더지는 혹시나 싶어서 건물 틈바구니를 
헤집고 다니며 킁킁 냄새를 맡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자기를 그렇게도 괴롭히던 아저씨가 책상 밑에 깔려 있었습니다. 
 두더지는 피범벅이 된 아저씨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삽처럼 생긴 앞발로 
책상 주위를 열심히 팠습니다. 두더지가 비지땀을 흘리며 흙을 파낸 덕분에 
아저씨 몸은 책상 밑에서 조금 빠져나왔습니다.
 “푸우-. 푸-.”
 아저씨는 숨도 못 쉬고 있다가 간신히 숨을 토해내었습니다. 
아저씨는 숨결이 가뿐지 몹시 헐떡거리다가 자기를 구해주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는 두더지를 보았습니다.
 “아니 네가 나를......”
  아저씨는 움직이지는 못하고 입술만 달싹거리다가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아저씨, 천국에 가서 편안하게 지내세요!”
  까만 두더지는 앞발을 모으고 중얼중얼 기도를 하였습니다. 
언제 달려왔는지 소방차에서 불을 끄려고 치익치익 물을 뿌렸습니다. 
아저씨 얼굴에서 눈물 같은 물이 뚝뚝 흘러내렸습니다.    (*)
* 김재원 약력
경향신문 동화 당선, 계몽사 아동문학상 당선, 이주홍 아동문학상 수상,
다음 카페 <글나라> 운영 ( cafe.daum.net/qwer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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