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5월 7일 일요일 개임
<< 뽕나무와 감태나무 >>
겨울잠을 자던 나무들이 모두 눈을 뜨고 싹을 내밀기 시작했다.
나무들 중에서 싹이 제일 늦게 트는 것은 대추나무와 배롱나무다.
다른 나무들은 꽃을 일찍 피우고 잎도 빨리 뻗는데 배롱나무는 아주
늦게 싹을 내민다. 그런데도 배롱나무는 여름에 백 일 이상 꽃을 피워서
백일홍이라고 불리운다.
대추나무도 열매를 맺는 나무 중에서는 가장 늦잠을 자는 편이지만
한 번 싹을 내밀고 나면 꽃을 세 번이나 피울만큼 부지런히 큰다.
그래서 가을에는 나무 가득 대추를 매달아 나무 전체가 붉게 보일
정도다.
그러고 보면 남보다 조금 더 빨리 무엇을 이룬다고 해서 잘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길고 짧은 것은 끝까지 가봐야 아는 것이고
긴 세월을 지나봐야 올바른 평가를 할 수 있겠다.
처음에는 반짝하다가 뒤에 가서 슬슬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도 있고
시작은 좀 늦고 결실이 없어 보이더라도 나중에는 좋은 결실을 거두는
경우도 많지 않은가!
< 늦잠 자고 이제 깨어난 대추나무 >

환삼덩굴만 해도 그렇다.
환삼덩굴은 한여름에 성가실 정도로 번식력이 왕성한 식물이다.
만약에 베어 내지 않고 며칠만 그대로 두었다간 온 밭을 다 망쳐버린다.
그런데 이번 봄에 보니 환삼덩굴도 대추만큼이나 늦잠꾸러기였다.
개망초, 민들레, 냉이, 뽀리뱅이 등이 서로 앞을 다투어 이른 봄부터
마구 피어나는데도 아무런 기척조차 없더니 이제서야 슬슬 잎을 내밀고
있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고 늦게 나온 이 환삼덩굴의
생명력은 그 어떤 풀도 당할 수가 없다. 작년 여름에 토시도 끼지 않고
환삼덩굴을 걷어내다가 피부병에 걸려 고생한 적이 있다.
그래서 환삼덩굴만 보면 슬며시 겁이 난다.
올해는 처음부터 싹이 보이는 대로 뿌리까지 부지런히 뽑을 생각이다.
그래야만 마당과 밭이 온전할 수 있으니까.
<어린 환삼 덩굴 싹 >

< 무섭게 자라다가 겨울에 시든 환삼 덩굴의 줄기 >

< 올봄에 심은 어린 은행나무 >

오늘은 등산을 가는 대신에 뽕나무 잎을 따기로 했다.
마을 입구에 큰 뽕나무가 여러 그루 서 있는데 요즘엔 누에를 키우지
않으니까 그 뽕나무들이 방치되어 버렸다.
초봄에 보니 산딸기와 찔레 덩굴이 뽕나무를 마구 뒤덮고 있길래
내가 낫을 들고 가서 덩굴을 걷어내었다. 다음에 뽕잎과 오디를 따려면
미리 관리를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에 마을을 돌아보니 우리 집 부근 길가에도 있고 저수지 옆에도
뽕나무가 있었다.
그 뿐 아니라 우리 집 안에도 그리 크진 않지만 너댓 그루나 있었다.
나는 마을 안에 있는 뽕나무는 내가 다 관리해주기로 했다.
노루실 마을에는 모두 11가구인데 대체로 노인들이라 뽕잎이나 오디엔
아무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 집안에 있는 뽕나무 >

봉지를 들고 뽕잎을 따러 갔더니 뽕나무도 2가지 종류가 있었다.
잎이 손가락처럼 갈라져 있는 것이 있고 그냥 둥그스름한 것이 있었다.
나는 반장 아저씨한테 물어보고 그 두 가지가 모두 뽕나무라는 것을
알았다. 어릴 때 누에가 뽕잎을 먹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내가 이렇게
어른이 되어서 뽕잎을 딴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깊었다.
나는 뽕잎을 마구 따기가 미안해서 뽕잎이 촘촘하게 돋아난 곳을
가려가며 땄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뽕나무야, 너의 잎을 따서 미안하다. 내가 찔레덩굴을 걷어주었으니
조금만 따 가게 해주렴.'
한참 뽕잎을 따다 보니 뽕잎이 돋아난지 보름도 안 되는 것 같은데
벌써 오디 모양이 생겨 있었다. 흡사 조그만 포도송이처럼 생긴 것들이
빽빽하게 매달려 있었다. 저게 더 크면 오디가 되는 가 보다.
나는 오디 모양이 생긴 곳은 차마 딸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런 곳은
피해 가며 따다 보니 많이 딸 수가 없었다. 봉지에 반쯤 따고 나서
그만 집으로 갔다.
집에 와서 시험 삼아 뽕잎을 주전자에 넣고 끓여서 마셔보니 그런
대로 마실만 했다. 뽕잎 특유의 맛을 감상하며 나머지는 말려서
차를 만들기로 했다.
점심을 먹고 쉬다가 이번에는 감태나무 잎을 따러 가기로 했다.
감태나무 잎으로도 뽕잎차 못지 않게 건강에 좋은 차를 만들 수 있다.
뽕잎차가 고혈압, 신경통, 중풍에 좋다면, 감태나무차는 혈액순환,
관절통, 마비에 효험이 있고, 뼈를 튼튼히 하며, 배가 차고 아픈 것도
낫게 한다. 한 마디로 만병통치약과 같은 게 감태나무차다.
감태나무엔 아무 열매도 맺혀 있지 않아 마음 놓고 땄다.
내가 잎을 따는 동안에 진이는 주위를 맴돌며 나를 지켰다.
아까 뽕잎을 따러 갈 때는 마을 입구라 차가 오가기 때문에 진이가
다칠까 봐 못 따라오게 하려고 돌을 몇 십 번이나 던졌는데도
맞아가며 계속 따라왔다.
"이 녀석이 정말 애를 먹이네. 어서 저리 안 가!"
나는 악착같이 쫓아냈지만 진이는 더 끈질기게 빙빙 둘러서 따라왔다.
"허어, 참 나원! 졌다 졌어! 아이구 너한테 못 당하겠다."
진도개가 충성심이 강하다더니 진이는 충성심은 정말 못 말린다.
내가 가는 곳이 어디든 한사코 따라가려 한다. 밤에도 풀어 놓으면
자기 집에서 안 자고 꼭 내가 자는 방문 근처에서 배를 깔고 타일
바닥에 엎드리고 잔다.
내가 저녁에 수업을 마치고 늦게 들어오면 그렇게 반가워할 수가 없다.
어찌나 길길이 뛰어 오르는지 부담스러울 정도다. 물론 하루 종일
저 혼자 있어서 심심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주인을 진심으로 반기는
것이다. 나는 그런 진이가 부담스러워서 옷에 흙이 묻을까 봐 사정없이
떨쳐내곤 했는데, 뽕잎을 따러갈 때 죽자고 따라오는 것을 본 뒤로는
안쓰러워서 집에 돌아올 때마다 다정하게 안아주며 속삭인다.
"진아, 하루 종일 집 잘 지켰니? 고맙다! 수고 했으니 이제 좀
자유롭게 돌아 다녀라."
진이는 풀어주어도 내 주위만 빙빙 돌다가 내가 집안으로 들어와
버리면 문 앞에서 나올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린다.
나는 그런 녀석이 가엾어서 밥을 할 때도 좀 넉넉하게 해서 나누어
준다. 진이는 사료보다도 내가 주는 밥을 더 좋아하고 잘 먹는다.
다음에는 등산갈 때도 한 두 번은 차에 태워서 데리고 가고 싶다.
< 5월의 범초산장 >

< 비오는 날의 범초 산장..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참 좋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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