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136편 === 방울 토마토 한 그루

凡草 2006. 10. 4. 18:27

    방울 토마토 한 그루
  2006년 10월 4일 수요일 맑음
 시골의 가을은 참으로 풍성하다.
 내가 심고 거두는 곡식이 아니지만 황금빛 들판을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넉넉해진다.
 마당에는 감이 익어가고 밭에는 배추가 하루가 다르게 커간다.
 8월 23일에 심은 배추가 이제 겨우 한 달이 지났을 뿐인데 아주 
커져서 수박덩이만 하다. 내가 물만 주는데도 쑥쑥 잘 자라서 참
기특하기까지 하다.
 집에 마침 배가 들어왔길래 반장집과 건너편 할머니 집에 나누어
드렸더니, 반장집에서는 배추 솎은 것과 달걀 유정란을 갖다주고 
건너편 할머니는 산에서 밤 주운 것을 주셨다. 
 할머니는 나한테 밤을 주고는 싶은데 알이 너무 잘아서 주기가 
쑥쓰럽다고 하셨다. 나는 그 마음이 고마워서 선뜻 받았다. 
밤은 토종밤이라 알은 작지만 맛이 있을 것 같았다.
할머니는 산에 가서 애써 주운 한 되 남짓한 밤을 다 주는 것이었다.
 "할머니, 드실 것을 좀 남겨놓고 주세요. 맛만 보면 됩니다."
 내 말에 할머니는 힘없이 대답하셨다.
 "요즘 내가 속이 안 좋아요. 병원에 가니 될 수 있으면 뭘 먹지 말라고
 하네요."
 그 말을 들으니 속이 짠해졌다.
 아, 이 마을의 노인들이 점점 쇠락해지시는구나! 우리 아래집 할머니도
요즘 아파서 병원에 계신다던데 자꾸 아프시면 어떡하나 염려가 되었다.
 감은 잘 익은 것을 스무 개 정도 땄다. 대나무 가지 끝에 주머니를
달아서 땄는데 보기보다 따기가 쉽지 않았다. 집 뒤에 있는 감나무는
제법 열리기는 했는데 워낙 높아서 따기가 어려웠다.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도 손이 아예 닿지 않는 가지가 많았다. 내가 친구인 백원장한테
그런 감은 어떻게 따냐고 물었더니 친구가 이렇게 일러주었다.
 "높은데 있는 것을 무리해서 따다가 큰일나니 그런 것은 따려 하지 
 말고 새들이 먹도록 놓아두는 게 좋아요."
 그렇구나! 새들도 먹어야지. 그까짓 감 몇 개 더 따려고 애쓰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지. 소탐대실이라고나 할까!
 하여간 딴 것은 먹어보니 아주 달았다. 감이 많지 않아서 부산까지 
갖고 갈 것은 없었지만 몇 개라도 따 먹어보니 시골집에 사는 보람이 
있었다. 
 감을 딴 다음에 밭으로 갔다.
 부추를 지난 주에 베었는데 거짓말처럼 또 수북하게 자라 있었다. 
땅은 정말 거인처럼 굉장한 힘을 지녔다. 아무리 마구 베어내고 따도
지치지 않고 새로운 싹과 열매를 끈기있게 내민다. 마치 누가 이기나 
보자는 듯이. 나는 이런 땅의 강한 생명력을 볼 때마다 늘 놀라고,
마법사 같은 그 신기한 재주에 감탄한다.
 파란 고추가 빨갛게 색깔이 변한 게 많아서 소쿠리에 따서 담았다.
 내가 오늘 밭에서 가장 놀란 것은 방울 토마토였다. 
 이 방울 토마토는 동그마미 계원인 희승이 아버지가 포도 나무 
한 그루를 사 주면서 같이 준 것인데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1회용 작은 비닐 화분에 담긴 모습이 어설펐을 뿐 아니라 이걸 밭에
심으면 열매가 도대체 몇개나 열릴까 하는 생각에서 였다.
 언젠가 청도에 과수원을 갖고 있는 선배 선생님을 찾아간 적이 있는데
그 선생님이 나에게 물었다.
 "김선생, 큰 감나무 한 그루에 감이 몇 개나 열리는 줄 아나?"
 "글쎄요, 대략 천 개쯤 열리면 많이 열리지 않을까요?"
 그러자 선배 선생님이 피식 웃었다.
 "역시 김선생은 글밖에 쓸 줄 모르는군. 이봐, 어떤 감나무는 
 한 그루에 200접이나 열리기도 한다구."
 나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나무 한 그루에 200접이면 
2만 개나 열린다는 말인데, 그렇게 많이 달고도 나무가 무사할까?
 야, 참 대단한 나무구나!
 감나무는 일단 덩치가 크니까 그렇다 치고 조그만 토마토는 과연
몇개나 달까 궁금했는데, 실제로 밭에 심어보니 시간이 의문을 해결해
주었다.
 내가 정확히 몇 개나 열렸는지 다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열린 걸 생각해보니 수 백개는 열린 것 같다. 물론 지금도 열리고 있고
앞으로도 더 열릴 것이다.
 내가 밭에 갈 때마다 방울 토마토는 제 열매를 자랑이라도 하듯이
빨간 훈장을 조롱조롱 매달고 있다.
 야, 또 열었구나! 냠냠 쩝쩝.
 매일 몇 개씩 따 먹는데도 방울 토마토는 정말 줄기차게 열매를 매단다.
그 약하디 약하던 한 그루가 어느새 내 허리만큼이나 커서 줄기를 
요리 조리 뻗어가며 메추리 알 같은 열매를 매단다.
 그러고 보면 방울 토마토는 그 작은 씨앗 한 개가 자라서 몇 백배나
몇 천배의 수확을 거두는 셈이다.
 작은 한 개가 적게 잡아도 몇 백배로 불어나는 것이니 우리 생활에서
그런 계산이 과연 존재할 것인가?
 돈 만원 빌려주고 나서 몇 백만원을 이자로 갚으라면 도둑놈 소리를 
들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하는 계산법보다 수천 배 수만 
배로 더 많이 되갚는다.
 사람은 태어나서 먹고 마시고 입고 자고 한만큼 과연 충분한 수확을
남길 수 있을까?
 에디슨 같은 과학자는 충분한 결실을 남겼지만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은
밥만 축내다 세상을 떠날는지 모른다.
 나는 고 작은 방울 토마토 열매를 먹으면서 생각에 잠긴다.
 나는 과연 방울 토마토보다 얼마나 가치있는 사람인가?
 내가 세상에 살면서 뿌린 씨앗이 얼마나 싹이 텄는가?
 내가 한 말, 내가 한 행동이 과연 남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가?
 내가 방울 토마토보다도 가치 없는 사람이라면 이제부터라도 분발하여
더 좋은 일을 많이 해야 할 것이다.
 내가 요즘 내 동화를 못 쓰더라도 동화 가르치는 일과 제자 양성에 더 
힘쓰는 이유는 내가 그런 일만이라도 남보다 더 열심히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기왕에 시작한 거 조금이라도 남에게 도움이 된다면 열심히 해서 방울
토마토보다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한 번 뿐인 인생인데 절대로 밥만 축내다 가는 사람이 되지는 않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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