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년 10월 23일 월요일 맑음 >
그동안 몹시 가물었는데 어제는 모처럼 단비가 내려서 반가웠다.
가을비는 흔히 스산하게 느껴지는데 어제 내린 비는 구세주 같은
비였다.
비가 하도 안 와서 밭에 있는 배추와 고추, 고구마에 물주기가
바빴는데 어제는 하늘이 나 대신 물을 듬뿍 주어서 참 고마웠다.
내가 호스로 주는 물보다 몇 배나 충분한 양이었다.
당분간은 물을 주지 않아도 되겠다. 역시 사람이 억지로 하는 것보다
자연적인 것이 훨씬 더 낫다는 것을 알았다.
오늘은 하늘이 알아서 밭에 물을 주니까 나는 느긋하게
‘십초차’를 끓이기로 했다.
‘십초차’는 내가 만들어 마시는 차인데 집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쓴다.
대략 10가지 정도의 재료를 넣어서 끓이기 때문에
‘십초차’라는 이름을 붙였다.
차라고 하면 덖거나 쪄서 만드는 게 원칙인데 나는 쉽고 간편하게
마시기 위해서 주전자에 물을 붓고 끓여서 만든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절차가 복잡하면 한 두 번은 하겠지만
오래 지속할 수가 없다. 간편하고 손쉬워야 늘 할 수 있는 법이다.
우리 집에서 밥을 할 때도 아이들은 쌀밥을 좋아하지만 나는
잡곡밥을 즐긴다. 밥에 잣, 대추, 땅콩, 해바라기씨, 검은 깨
등을 넣어서 먹으려고 하니 가짓수가 많아서 일일이 꺼내기가
귀찮았다. 그러다 보니 매일 골고루 넣어서 해먹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한 방법이 플라스틱 통에다 모두 넣고 뒤섞어서
한 번만 꺼내서 넣도록 했다.
그랬더니 밥할 때마다 여러 가지를 넣기가 손쉬웠다.
여기에다 암을 예방할 수 있는 율무를 끼우면 아주 훌륭한
영양밥이 될 것이다.
< 감태나무 잎>

<찔레꽃 열매>

요즘 내가 만드는 차에는 감초, 뽕나무 잎과 가지,
감태나무 잎, 노박덩굴, 가막사리, 환삼덩굴, 느릅나무 가지,
금은화 덩굴, 청미래 덩굴 열매, 모시풀, 탱자 열매 등이
들어간다. 여기다 때로는 쥐꼬리망초, 쑥부쟁이, 구절초가 더
들어가기도 한다.
이 재료 중에는 노박덩굴 같이 약간 독이 있는 것도 있지만
그런 것은 아주 적게 쓰면 된다. 또 설령 독이 있더라도
여러 가지를 같이 쓰면 큰 해가 없다. 다른 것들과 성분이
골고루 섞이면 중화가 되어서 독이 엷어지니까.
<노박덩굴 열매>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느 누구든 한 가지 결점은 다 갖고 있다.
내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라도 배척하지 말고 잘 대해주면
언젠가는 작은 도움이라도 받을 수 있게 된다.
그게 사람을 넓게 포용하는 자세다.
나는 십초차를 마시면서 건강을 지키고 있다.
십초차를 수시로 마시니 목도 아프지 않고 감기에도
잘 걸리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나보고 그렇게 좋은 차를
마시면 백 살 이상 살겠다고 농담을 하지만
나는 오래 살기 위해서 이런 걸 일부러 마시는 게 아니다.
평소에 건강한 몸을 유지해야 부지런히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나이가 들더라도 치매나 몹쓸 병에 걸려서
자식들에게 짐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 불행을 겪지 않으려면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는 것이 내 철학이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아무 잎이라도 딸 수 있지만
겨울철에는 잎이 시들어 버리기 때문에 겨울에는
열매를 주로 쓴다.
그래서 지난 토요일에는 저수지 부근에 가서 찔레꽃
열매를 땄다.
저수지 옆에는 산국도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길 옆과 풀숲에 산국이 많아서 산국차를 만들려고 따왔다.
작년에는 산국을 찜통에 넣고 쪘는데 올해는 산국을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말리기로 했다.
그러면 꽃봉오리가 더 고운 모양을 유지한다는 말을 들었다.
<쑥부쟁이 군락>

<산국>
 반장집과 다른 집들은 지금 가을 걷이를 하느라고 무척 바빴다.
들판에서는 추수와 탈곡이 한창이었다.
나는 아내와 산국과 찔레를 따느라 바빴다.
10월 하순부터는 부산에서 출퇴근하고 주말에만 노루실에 올 것이다. 아쉽지만 가족들과 정을 더 나누기 위해 그렇게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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