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138편 +++ 어머니 같은 노루실

凡草 2006. 11. 3. 12:19

가을엔 여러가지 문학 행사가 많아서
여기 저기 참석하다 보니
부산에 나와 있을 일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노루실을 오래 비워두었다.
요즘엔 여름만큼 풀이 많이 자라지 않으니 
밭은 별로 걱정이 안 되는데
제일 큰 문제는 진이였다.
개밥 통을 비에 젖지 않도록 
개집 안에 넣고
사료를 두 통이나 수북히 담아 주고 왔지만
굶지 않고 있는지 염려가 되었다.
혹시 비에 개밥이 다 젖어 버렸으면 어떡하지?
아니면 도둑이 와서 개를 훔쳐 가지나 않았는지?
이런 저런 일 때문에
노루실에 못 가고 있다가
마침내 어제 수업을 마치자마자 노루실로 달려갔다.
캄캄한 시골길.
자동차 불빛만이 앞을 비출 뿐
주위는 고즈넉하다.
달빛이 비치는 저수지를 바라보며
음악을 틀어 놓고 올라가니
신선이 따로 없다.
이런 길이라면 아무리 오래 달려도 지루하지 않겠다.
하지만 얼마 안 가서 집이 보였다.
<노루실의 가을 풍경>






대문 열쇠를 여니 진이가 벌써 알아보았는지 반갑다고 야단이다. 마당 안으로 들어가서 목줄 고리를 풀어주니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어찌나 반갑다고 날뛰는지 부담스러울 지경이다. 녀석, 그래도 안 죽고 잘 살아 있었구나! 11일 동안 혼자 있어도 무사했구나! 진이가 없다면 집을 비워도 걱정이 안 되지만 살아있는 생물은 목숨이 있는 거라서 소홀히 할 수가 없다.



족발집에서 얻어간 뼈다귀를 주었더니 다른 때 같으면 뼈다귀에 달라붙어서 먹느라 정신이 없을 텐데 오늘은 나만 따라다녔다. 마치 나를 보고 "어디 갔다가 이제야 왔어요? 나 안 보고 싶었어요?" 하는 듯 했다. 나는 진이를 쓰다듬어 주면서 혼자 잘 지낸 것을 칭찬해주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에도 아무 일이 없었다. 노루실은 외딴 산골이니까 일부러 찾아오지 않는 한 도둑이 오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까지 들어오려면 기름값도 안 나오니까. 저녁은 가는 길에 한 그릇 사먹었겠다 밥할 걱정을 안 해도 되어서 저녁 뉴스를 보다가 책을 읽었다. 책을 읽고 있으니 잠이 스르르 몰려왔다. 노루실의 가을은 흡사 초겨울처럼 춥다. 전기 장판에 불을 켜 놓고 이불도 두툼한 것을 꺼내어 덮고 자리에 누웠다. 아침에 일어나니 집앞에 안개가 자욱하다. 마당에 나가 대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맑은 공기를 마시고 한 바퀴 둘러본 다음에 호스로 밭에 물을 주었다. 날이 가물어서 밭흙이 돌처럼 단단하다. 골고루 물을 준 다음에 아침을 먹었다. 아침을 먹고 나서 도꼬마리 열매를 따기 시작했다. 시골에 오면 할 일이 참 많다. 아파트에서는 텔레비전을 보거나 책을 읽고 기껏해야 산책을 하는 정도지만 여기서는 할 일들이 인기 있는 영화관의 관객들처럼 내 앞에 긴 줄을 이루고 있다. <도꼬마리 열매>

도꼬마리를 딴 다음에는 방울 토마토와 빨간 고추를 땄고 밭 가장자리에서 까마중도 땄다. 마당 안의 밭에 무씨를 뿌려 놓았더니 어느새 커서 솎아 먹어도 될만큼 자랐다. 그것도 제법 솎아내고.

<방울 토마토와 고추>



<까마중>

집에 가져가서 마실 생수를 담은 뒤에 다시 차에 올랐다. 진이야, 또 보자. 이제부턴 우리집 사정 때문에 노루실에는 가끔 올 수밖에 없구나. 나는 진이에게 외출 허락을 받고 집을 나왔다. 그래도 진이 목줄이 꽉 조여져 있었는데 목줄을 느슨하게 풀어주고 가서 덜 미안하다. 차를 타고 돌아오면서 생각하니 진이가 걱정되어서 노루실로 달려갔지만 시골은 나에게 참 많은 것을 주었다. 맑은 물과 여러 가지 열매들, 푸근해지는 마음 신선한 공기, 일하는 즐거움, 풋풋한 식물을 통해 느끼는 강한 생명력 등.... 나는 어머니 같은 노루실에서 내가 준 것보다 몇배나 더 많은 것을 선물로 듬뿍 받아서 돌아온다. <노루실을 지키는 진이>



<곰보배추= 배암차즈기>

凡 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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