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1월 7일 일요일 맑음 >

아들이 모처럼 시골에 따라갔다.
늘 철부지 같던 아들이 미국에 갔다온 뒤부터 많이 어른스러워졌다.
요즘에는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고, 내가 혹시 늦게 올 일이 생기면
꼭 차를 몰고 데리러 온다.
아들은 시골에 가서 바베큐 해먹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돼지고기와
새우를 사갔다.

아들이 바베큐를 준비하는 동안에 나는 집 뒤에 가서 우거진 대나무를
베었다. 대나무는 어찌나 울창하게 자라는지 그대로 놓아두면 집을 다
덮어버릴 것만 같다.
대나무는 자라는 속도가 빨라서 아무리 베어내도 금방 자란다.
집 뒤의 대밭이 하도 무성해서 톱으로 많이 베어내었다.
베어낸 대나무는 불을 지펴서 다 태웠다.

나는 불을 피워 태우는 것을 좋아한다. 불은 지저분한 것을 싹 없애
주면서 내 마음 속에 든 잡념까지 태워버린다.
활활 타오르는 불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 시골에 오기만 하면 못 쓰는 휴지도 태우고 대나무를 태우기도
한다.
불은 뜨겁기 때문에 열정을 지니고 있다.
불의 저 뜨거운 열정을 배우고 싶다.
다 타고 나면 재가 되어 버리지만 타고 있는 순간에는 힘이 세다.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죽고나면 재로 변하지만 살아 있는 순간에는
정력이 있고 힘이 넘친다.
불은 사람의 인생과 같다. 다 타버리고 나면 허무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힘없이 사그러진다. 사람도 시간이 지날수록 늙어가고
힘이 빠진다. 시간은 불처럼 사람의 몸과 마음을 사그러뜨린다.
비록 뜨겁게 타는 순간이 짧을지라도 타는 순간은 아름답다.
재가 되는 것을 아쉽게 생각하지 말고 타는 동안의 열정을 오래 기억해야 하리라.
불이 뻗어 가려면 탈 것이 많아야 한다. 사람도 본 게 많아야 하고
생각이 깊어야 쓸게 많다.
겨울에는 불을 피우면 춥지 않아서 더 좋다.
오늘은 불을 피우기 전에 재를 다 긁어내었다. 긁어낸 재는 부추밭에
거름으로 뿌렸다.

뒷뜰에 항아리를 두 개 놓아 두었는데 하나는 동김치를 넣어둔 항아리
이고 또 하나는 김치를 담아두었다. 항아리 두 개가 형제처럼 나란히
있어서 정답게 보인다.
오늘 동김치를 꺼내어 먹어 보니 맛이 그럴듯하게 들었다.
아들이 고기를 다 구워서 세 사람이 맥주로 건배를 하고 먹었다.
고기가 담백해서 맛이 있다.
"문현아, 너도 다음에 시골에 와서 살아라. 공기도 좋고 환경이 좋잖아."
내 말에 아들도 돈을 잘 벌게 되면 노루실에서 출퇴근하고 싶단다.
봉현이는 오늘 오지 않았지만 나는 막내딸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다음에 아빠가 시골에서 살게 되면 돈을 못 버니까 네가 노래를 불러
100만 원이라도 벌면 반은 아버지 생활비로 줘야 한다."
막내딸은 내 노후보험이 되겠다고 약속하였다.
나는 자식들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지만 일부러 책임감을 느끼게
하려고 그런 말을 해준다.


나는 채식을 좋아하기 때문에 고기를 먹는 양이 적다.
고기를 적당히 먹고 나서 다시 밖으로 나왔다.
베어낸 대나무 잎을 진이 집안에 깔아주었다. 진이는 이 추운 겨울에 춥지
않은지 털옷을 깔아주어도 자꾸만 끄집어 내어서 물어 뜯었다. 진이 몸을
보니 겨울이 된 뒤에 털이 수북하게 더 났다. 진이는 최고급의 모피 코트를
입고 있는 셈인가 보다. 밀양 추위가 상당할 텐데 잘 견뎌내는 진이가 퍽
대견스럽다.
그래도 추울지 몰라서 댓잎을 수북히 깔아주었다.
다음 주에는 내가 한국아동문학인 협회 정기 총회에 올라가느라 노루실에
못올 지도 모르기 때문에 밥을 두 통이나 넉넉하게 담아주었다.
내가 없어도 혼자 잘 사는 진이가 고맙고, 올 때마다 그 강한 생명력을 보고
놀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