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향긋한 노루실 냉이 >
2008년 2월 24일 일요일 맑음
어제는 아내 친구 부부와 노루실에 갔다. 집앞에 심은 로즈마리가 제법 많이 컸다. 요즘 가뭄이라 물뿌리개로 물을 주었다. 이제 봄이 다가왔으니 식물들도 물을 뿌려주어야 할 것이다. 작약도 살그머니 새순을 내밀고 있다. 죽은 듯 숨어 있던 새순들이 왁자하니 나올 날이 멀지 않았다.
점심을 먹고 손님과 바둑을 한 수 하는 사이에 아내와 친구는 냉이를 캐러 갔다. 손님은 나보다 바둑을 잘 두었다. 나도 바둑을 더 연구했더라면 실력이 늘었을 텐데 요즘엔 글 쓰는 시간을 잡아 먹어서 바둑을 전혀 두지 않는다. 오늘은 손님 대접을 해주려고 바둑을 두었다.
아내가 냉이를 얼만큼 캐었나 보려고 갔다. 저수지 옆에 있는 밭에서 캐고 있었다. 아직 많이 자라지는 않았지만 밭에는 수두룩하였다. 다음주에 글나라 회원들과 냉이 캐러 오기 때문에 냉이가 많은 자리를 미리 봐두었다. 집에 와서 냉이를 데쳐서 맛 보았더니 시장에서 파는 냉이하고는 질이 달랐다. 아주 향긋하였다. 노루실은 청정 지역이라 무엇이든 안심하고 먹을 수 있어서 좋다. 오늘은 아내가 그리 많이 캐지는 못했다. 냉이는 비타민도 많고 눈에 좋다니 다음주에 나도 많이 캐어야겠다.


그전에 정자를 지어주기로 한 이경수씨가 정자 기둥으로 쓸 나무를 미리 갖다 놓았다. 이경수씨가 닭을 풀어 놓고 키워서 유기농 달걀을 생산하고 있는데 오늘 처음으로 두 판을 사주었다. 집에 와서 삶아 먹어 보니 다른 달걀보다 더 고소 하였다. 정자를 언제 지어줄지 물어보았더니 이경수씨는 시멘트로 바위위에 기초 공사를 해야 하는데 요즘 날씨가 추워서 잘못하면 터진다고 하였다. 그래서 날씨가 풀리면 일을 시작하겠다고 하였다. 나는 바쁘지 않으니 천천히 해달라고 말했다. 마당에 갖다 놓은 나무 기둥 8개만 보아도 벌써 정자가 만들어진 것처럼 기뻤다. 나는 시크릿에서 읽은 것처럼 정자를 다 지어서 제자들과 고기를 구워서 비수리술을 한 잔 하는 장면을 그려보았다.

시골에는 집 말고 정자나 원두막이 꼭 필요하다. 밭에서 상추나 고구마를 캐면 집으로 갖고 가는데 그러면 흙이 떨어지고 집안이 지저분해진다. 원두막이 있으면 밖에서 어지간한 일을 다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집이 깨끗하고 신발을 일일이 벗고 들락날락할 필요가 없다. 노루실에 정자를 짓는 것은 경치나 감상하고 놀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보다 실용적인 목적 때문이다. 나같으면 금은화차, 감태나무차, 뽕나무차, 꿀풀차, 댓잎차, 칡꽃차, 느릅나무차 등을 만들어 두어야 하는데 집안에서 말리자니 곰팡이가 피기 쉽고 잘 말려둔다 해도 부스러기나 가루가 떨어져서 아내가 질색하였다. 정자가 있으면 지붕밑에 대롱대롱 달아둘 수도 있고 부스러기가 떨어지는 작업은 정자에서 한 다음에 집안에 둘 때는 병에 넣어두면 보기에도 좋고 깨끗할 것이다. 특히 고기를 구워 먹을 경우에는 집안에서 구우면 연기가 나고 여름에는 덥다. 하지만 정자가 있으면 밖에서 시원한 바람을 쐬며 먹을 수 있다. 나는 틈을 내어 호박 구덩이를 팠다. 거름을 미리 넣어서 썩혀 두어야 호박을 잘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작년에는 거름을 많이 넣었더니 재작년보다는 많이 열렸다. 내가 좋아하는 호박잎 쌈도 많이 먹으려면 호박을 잘 키워야 한다. 우선 구덩이 두 개를 파고 나서 거름을 부었다. "흙아, 잘 부탁한다. 올해도 호박 잘 키워다오!" 호박을 4월에 심겠지만 구덩이를 미리 파두니 벌써 농사가 시작된 듯하다.
마당 구석에 돌나물이 돋아나오고 있나 마른 풀을 슬며시 들춰보니 제법 자랐다. 다음 주쯤에는 돌나물도 뜯어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덕유산에 갔을 때 따온 수리취와 처녀치마 씨앗은 오늘 마당가에 뿌렸다. 약초모임 카페에서 독활(땅두릅) 씨앗을 준다고 하길래 신청하였다. 다음에 받으면 그것도 심을 것이다.
어제 노루실 가는 길에 반송 석대 나무 시장에 들러 산초나무가 나왔나 물어보았더니 아직 땅이 얼어서 못 파오기 때문에 3월 중순에 전화를 해보란다. 올해는 산초나무와 무궁화 나무를 심을 예정이다. 보리밥집 아저씨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무궁화, 뽕나무, 구기자, 쑥, 박주가리 이 다섯가지 잎을 따서 생즙을 짜 먹으면 건강에 아주 좋다고 한다. 아무리 몸에 좋다고 해도 비싸거나 구하기 힘든 것은 그림의 떡이지만, 노루실에서는 모두 구할 수 있는 것들이다. 다만, 무궁화가 없어서 나라꽃 이기도 하니 한 그루 심으려는 것이다.

오늘은 장안사 삼각산으로 등산을 갔다. 오늘 코스는 지난주와 산은 다르지만 오르내림이 많은 점에서는 비슷했다. 장안사 화장실 뒤로 오르는 삼각산 길은 처음부터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바위 틈을 타고 다람쥐처럼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한참 오르고 나면 평평한 길이 나온다. 저 멀리 삼각산이 보인다. 봉우리가 셋이다.

삼각산을 지나고 나니 이번에는 급경사 내리막길 이다. 작은 산을 올랐다가 내려갔다가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었다. 신원섭의 '치유의 숲'을 보면, 내리막길을 걷는 경우 혈당이 없어지고 포도당에 대한 내성이 증가되었다고 한다. 오르막길을 걸으면 트리 글리세리드라는 혈중 지방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리막길과 오르막길 모두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데 효과적이라고 했다. 힘든 오르막길이든 쉬운 내리막길이든 둘다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산행이 끝날 때까지 체력을 시험하는 듯 끝없이 이어지는 오르막과 내리막길. 동화를 쓰다가 뜻대로 잘 안 되는 사람들에게 이 길을 한 번 걸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아무리 멀고 힘들어도 반드시 끝은 있는 법이니까. 중간에 편한 길로 내려가 버릴 수는 있지만 그러면 강한 체력을 기를 수는 없고, 의지도 다질 기회를 잃어버린다. 말하자면 몸이 편하고자 하는 그 순간에 마음도 풀어져 버린다.


저 멀리 바라보이는 바다. 바다를 보려고 온 것은 아닌데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고갯길과 비탈길을 지루하도록 걸은 끝에 이윽고 보이는 장안사.


다 내려와서 칡차 한 잔을 사 마셨더니 피로가 한 순간에 다 날아가 버렸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차에 올라 음악을 들으며 해운대로 달려갔다. 봄맞이를 하러 나왔는지 다른 때보다 자동차가 많고 길이 더 막힌다.


오늘도 별로 추운줄 모르고 산을 누볐다. 등산을 하면 감기에 잘 안 걸린다는 말이 있다. 산에 가서 나무들이 주는 감기 예방 백신 주사를 맞고 돌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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