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익모초 밥과 머위쌈 ( 190회 )

凡草 2008. 3. 16. 07:37

 익모초밥과 머위쌈
 2008년 3월 15일, 토요일, 맑음
 지난 주에는 내 개인산행 300회 기념 등산을 가느라고 노루실에 못 가고
오늘 가게 되었다.
 아들이 스노보드를 타다 다쳤는데 2주 가량 입원을 했다가 무사히 퇴원을 
하였다. 다친 것은 액운이지만 긴 인생살이로 보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노루실로 가기 전에 반송 석대 꽃시장에 들러 무궁화 2그루, 능소화 한 그루,
꽃수국 2그루, 백목단 한 그루를 샀다.
 노루실에 더 이상 심을 것이 없을 상태로 꽉 차 있지만 봄에는 무엇이든 
한 가지 이상 심지 않으면 서운하다. 
 무궁화는 우리 나라 꽃이라서 심는 것이 아니라 5가지 배합즙을 만들기
위한 재료로 쓰기 위해서다.
 보리밥집 최사장의 말에 따르면 5가지 배합즙을 꾸준히 마시면 건강에 아주
좋다고 한다. 최사장 선친이 그 배합즙을 마시고 건강하게 오래 사셨다는
것이다.
 5가지 배합즙은 구기자, 무궁화, 박주가리, 쑥, 뽕나무의 5가지 잎을 따서
소주 한 잔 되도록 즙을 내어 매일 한 두 잔씩 마시는 것이다.
 별로 어려울 것도 없고 구하기 어려운 재료도 아니어서 올해부터 한 번
시음해볼 생각이다.
 무궁화는 주위에 흔하지만 기왕이면 약을 치지 않은 우리집 나무로 쓰려고
오늘 2그루를 집 앞에 심었다.
 나는 처음에 꽃수국과 나무 수국을 혼동하였다. 재작년에 수국을 사러 
갔더니 농원에서 나무 수국을 권하길래 그게 꽃수국인줄 알았다. 그걸
5그루나 심었는데 알고 보니 꽃수국이 아니었다.
 그래서 올해는 2그루를 파내고 그 자리에 꽃수국을 심었다. 나무 수국을
파내려고 곡갱이로 땅을 파보니 아이고 어느새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었다.
도로 파내는 것이 장난이 아니었다. 
 내가 지금 동화를 300장 정도 썼다가 고치고 있는데 다시 쓰는 것 못지
않게 고생을 하고 있다. 처음부터 제대로 썼으면 아무 문제가 없을 텐데
써 놓고 고치자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나무도 처음부터 잘 심어야지 
한 번 심었다가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파내자면 아주 힘들다.
 큰 뿌리를 다 파내지는 못하고 끊어서 겨우 파냈다. 이게 제대로 뿌리를
잘 내릴지 모르겠다. 
 백목단은 홍목단에 비해 귀하다고 해서 샀다. 백목단을 부엌 창문 앞 
화단에 심었다.
 (꽃수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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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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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심고 점심을 안쳤다. 아내가 쑥을 캐러 가서 안 오길래 그 틈을 타서 얼른 익모초밥을 했다. 밥에 넣을 재료로는 뽕나무가 제일 좋은데 아직 잎이 나오지 않아 대잎을 넣을까 하다가 바쁜 참이라 말려놓은 익모초 줄기를 한 웅큼 집어 넣고 밥을 했다. 나중에 먹어보니 별로 쓰지 않고 먹을 만 했다. 만약에 맛이 썼더라면 잔소리를 좀 들었을 텐데 잘 넘어갔다. 지금쯤 머위가 나왔을까 반신반의하며 밭으로 내려가 보니 솔찬히 올라오고 있었다. 머위꽃은 관동화라고 부르는데 요즘 텔레비전을 보니 머위꽃을 말려 차로 끓여 마시면 알레르기 비염에 좋다고 한다. 머위 잎을 따고 광대나물도 조금 뜯고 냉이를 캐서 데친 다음에 점심 반찬 으로 먹었다. 쌉쏘롬한 맛이 아주 좋았다. 곰보배추도 맛이 어떨지 두 뿌리를 캐서 데쳐 먹었는데 맛이 좋지는 않았지만 참고 먹을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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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위 새순)
점심을 먹고 마당에 나가보니 봄이 그득하다. 원추리도 여기 저기서 막 밀고 올라오고, 상사화도 올라오고, 매화꽃도 꽃등처럼 환하게 피었다. (상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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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자나무는 아직 꽃이 피지 않고 몽오리만 맺혀 있다. 목련은 이제 꽃봉오리를 살며시 벌리려고 하는 중이다. 화단에는 수선화가 피었고 모란도 싹이 나오고 있다. (수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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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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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많은 생명들이 합창하듯 움터 나오는 것을 보니 정말 시골집을 사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도시의 아파트에서 어떻게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겠는가? 내 마음에도 봄이 가득하고 큰 부자가 된 느낌이다. 엊그제 제자 두 명이 어려운 전국 대회에서 동화가 뽑혔다는 전화를 받은 참이라 가르친 글밭도 풍성하다. 꽁꽁 얼었던 땅 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나오는 새싹들처럼 내 제자들도 여러 번의 낙방을 이겨낸 끝에 드디어 살아난 것이다. 그들을 생각하니 노루실의 새콤한 매화 향기가 한층 더 그윽하게 느껴진다. 이제 또 씨를 뿌릴 시간이다. 올망졸망 모아둔 씨앗 봉지를 들고 밭으로 나갔다. 올해는 글나라 동화창작 교실에도 어느 때보다 많은 신인들이 들어왔고, 노루실 밭과 마당에도 그 어느 해보다 많은 씨를 뿌렸다. 방풍, 해방풍, 잔대, 백화사설초, 지치, 청차조기, 뚱딴지, 슈퍼 여주 등... 여기 저기서 얻은 씨를 아무 많이 심었는데 그 많은 씨 중에서 도대체 몇 개나 살아날지 모르겠다. 하도 많이 뿌려서 뭐가 뭔지 구별이나 할지 걱정이 되기도 하고. 씨앗들이 뒤섞여서 한꺼번에 올라오면 새학년을 맡은 담임 선생님처럼 처음에는 이름도 모르고 그저 눈으로만 아는 체를 해야 할까보다. 마당 안에는 상추씨를 뿌리고 아직 일교차가 심해서 엉성하지만 미니 비닐 하우스를 만들어 놓았다. 대나무를 쪼갠 다음 휘어서 묻어 놓고 그 위에 비닐을 씌워 놓았다. 어설픈 내 솜씨를 보고 상추씨들이 우습다고 안 나오면 어떡하지? ( 어설픈 초미니 비닐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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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서 일하다가 반장집 아줌마를 만났다. 동네 소식을 들으니 우리에게 파를 나누어 주었던 아랫집 할머니가 설 뒤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참 좋은 분이었는데 돌아가셨다니 안타까웠다. 아들 딸을 낳은 지 몇 년만에 남편과 사별하고 여태까지 혼자 살다가 75세로 돌아가셨다니 참 기구한 운명이다. 그 할머니 집이 비게 될 텐데 누가 사서 들어올지 궁금하다. (반장집에서 키우는 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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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실에 오면 시간을 도둑 맞은 것 같다. 시간이 금세 지나가 버린다. 아내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보러 가려고 5시에 노루실을 나왔다. 그 영화는 부산에서 딱 한 군데에서만 했다. 서면 CGV에 가서 보았는데 코엔 형제 작품이라 그런지 스릴러물이었다. 살인범이 많은 사람을 파리 죽이듯 해서 섬뜩했는데 돈을 최고로 따지는 요즘 세태를 반영한 영화였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돈만 추구하지 말아라는 메시지를 역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사이코같은 냉혹한 살인자의 캐릭터가 강한 인상을 주었다. 2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잘 보고 돌아왔다. 하루가 꽉찬 날이었다. (*)
  (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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