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

겨울산에 숨어 있는 것들... ^^^^^ 286회

凡草 2009. 12. 27. 10:37

 

 

  겨울산에 숨어 있는 것들...


<2009년 12월 26일 토요일 맑음>


겨울에 가지산을 찾아가면 대개 눈이 쌓여 있었다.

혹시나 눈을 볼 수 있을까 하여 가지산을 찾아갔다.

양산에서는 언양이 가까워서 금방 도착했다.

 양산에 이사 온 뒤로 주택이라 아파트보다는 여러 가지로

불편한 점이 있지만 몇 가지 좋은 점도 있다.

 

 첫 번째는 교통이 편리하다. 경부, 남해, 신대구 고속도로가 가까워서

어디로든 가기가 좋다.

 두 번째는 산을 찾아가기가 수월하다. 가지산, 신불산, 영축산, 대운산,

토곡산, 천태산, 재약산 등... 여러 높은 산이 주위에 많아서 등산하기에

참 좋다.

 세 번째는 집 옆에 손바닥 밭이 있다는 점이다. 그 전에 한문서당

앞에 있는 손바닥 밭을 보고 멀리 떨어진 내 밀양 터밭보다 더 부러웠는데

이제 나에게도 손바닥 밭이 생겼다. 줄자로 재어보니 10.5 제곱미터니까

약 세 평이었다.

 그리고 옥상에도 작은 정원이 있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에 다시 하겠다.

 얼마 전에 산을 오르다가 어느 터밭에서 아주까리 씨를 몇 개 땄는데

오늘 밭에 심었다.

 

 

 

 


 운문령에 차를 대어 두고 산으로 올라갔다.

 가시 바람이 방해를 하듯 세차게 불어왔다. 그럴 줄 알고 얼굴 보호대와

귀마개 모자를 갖고 갔다.

 들머리는 몹시 추웠지만 올라갈수록 양지 바른 곳이 많아서 그리 춥지

않았다. 무엇을 시작하든 처음은 결코 쉽지 않다. 우리도 낯선 상가주택에

와서 잠시 시련을 겪고 있는데 세찬 바람을 잘 이겨내어야겠다.

 하늘은 어찌나 새파란지 가을 하늘 같았다.

 산에 빼꼭히 들어찬 나무들이 잎을 다 떨어뜨리고 있어서 온산이

투명하게 보였다. 산의 실핏줄 하나하나까지 다 보였다.

 아, 산은 자신의 속살을 다 보여주고 있구나. 하나도 남기지 않고

속속들이 다 보여주는 산. 감출 것도 없고 부끄러울 것도 없이.

 산은 모질고 추운 겨울을 가리고 막고 감추면서 이겨내지 않는다.

자신을 송두리째 드러내고 다 비워서 견뎌내는 것이다.

 

 

 

 

 

 

 산을 올라가는데 길가에 마른 풀이 허수아비처럼 서 있다.

 만지면 한 줌의 재처럼 바스락거리며 사라져 버릴 것 같다.

 지금은 주검처럼 저리 허망하게 서 있지만 봄이 되면

저 시든 줄기 사이에서 다시 새잎이 돋아날 것이다.

 잎과 줄기는 죽었어도 뿌리가 살아있기에 겨울을 참아낸다.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실패와 시련을 겪더라도 마음만 꿋꿋하다면 다시 살아날 수 있다.

몸은 온갖 시련에 부대끼고 시달리더라도 마음의 뿌리만 살아있다면

결코 죽지는 않는다.

 

 

 쌀바위 앞에 있는 대피소에 도착했다.

 대피소 안에는 난로가 있어서 따뜻했다. 라면을 한 그릇 사 먹으며

추위를 녹였다. 평소에 잘 먹지 않는 라면이 오늘 따라 진수성찬으로

느껴진다. 높은 산에서 먹는 귀한 라면이라 한 가닥 한 가닥이 소중하다.

후루룩-. 금싸라기 라면이 목으로 넘어간다. 후루루룩--.

 대피소 안에 초가 얼음 폭포 같은 모습으로 서 있다. 겨울에 어울리는

모습이다. 초도 눈물과 땀과 피를 흘리고 힘겹게 서 있는 모습이다.

 산다는 것은 고통이다.

 그러나 한 줄기 봄볕 같은 희망이 있기에 긴 터널을 묵묵히 걸어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