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밥집의 추억! < 2010년 1월 28일 목요일 맑음 > 내가 해운대에서 글나라를 하다가 연고도 없는 부산시 북구 화명동으로 학원을 옮긴 것은 밀양 시골집에서 화명동까지 기차로 출퇴근을 하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밀양 시골집을 팔고 두구동에 작은 밭을 마련했지만 글나라는 그대로 화명동에서 하고 있다. 내가 이 화명동에서 글나라의 문을 처음 연 것은 2006년 2월이었다. 글나라 개원을 하기에 앞서 사무실 인테리어 공사를 1월부터 시작했는데, 점심을 먹을 만한 식당이 주변에 잘 보이지 않았다. 싸고 맛있으며 가까운 곳을 찾다 보니 ‘보리밥 집’이 눈에 들어왔다. 그 때부터 틈만 나면 보리밥 집을 찾아갔다.
보리밥 집 아저씨는 기독교인답게 무척 친절했다. 그 집 주 메뉴인 보리밥은 값도 저렴한데다 맛이 좋았다. 된장국에 보리밥이 나오는데, 나물, 미역, 무채 등을 한데 비벼 먹으면 어느 웰빙 식단 못지 않았다. 보리밥이 물리면 뼈다귀 해장국이나 들깨수제비를 먹기도 했다. 나만 그 집을 자주 찾아간 게 아니라 글나라를 개원한 뒤부터는 회원들도 함께 데리고 가서 먹었다. 간혹 어떤 회원이 다른 식당을 알아보자고 하기도 했지만, 나는 보리밥 집을 한결 같이 이용했다. 다른 식당은 손님이 많거나 복잡해서 밥을 먹자마자 나와야 했지만, 이 식당은 느긋하게 차를 마시거나 이야기를 하다 나올 수가 있어서 글나라 회원들이 아지트처럼 드나들었다.
가끔 좋은 동화를 써서 상을 타는 회원들이 이 집에서 한 턱 내기도 했고, 개강식을 하고 나면 이 집으로 몰려가서 함께 밥을 먹었다. 우리나라 사람은 함께 식사를 하면 정이 든다. 그래서 한솥밥을 먹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거의 화요일마다 점심은 보리밥 집에서 먹었다. 글나라에 다닌 회원치고 보리밥 집을 모른다면 간첩이라는 우스갯 소리도 있다. 아마 그런 사람은 집안 사정으로 점심을 안 먹고 일찍 집으로 가 버렸기 때문에 모를 것이다.
회원들과 함께 늘 보리밥 집으로 가다 보면 나도 한 두 번은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혹시 회원들이 지겹다고 하지 않을까? 어쩌다 한 번은 다른 식당을 이용해볼까?’ 그렇지만 막상 식당을 바꾸어 보려고 하니 마땅한 식당이 없었다. 회원이 15명이 넘는데 한꺼번에 우루루 몰려가서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겨우 그럴만한 식당을 몇 개 찾아놓고서도 결국 다른 곳으로 가지는 못했다. 보리밥 집 아저씨가 화요일마다 우리를 기다릴 텐데 못 간다고 전화를 하기도 미안해서 늘 하던 대로 보리밥 집으로 갔다.
그런 여러 가지 추억이 깃든 보리밥 집인데, 올해 들어 1월부터 이상하게 문을 열지 않았다. 옆 가게에 물어보니 여행을 갔다고 했다. 그래서 문을 여는 날만 기다렸는데 어제 가보니 난데없이 이삿짐을 싸고 있었다. 아저씨한테 물어보니 주인이 가게를 팔 거라며 비우라고 해서 고향인 대전으로 간다는 것이었다. 나는 잘 가시라고 인사를 한 뒤에 어린 초피나무가 몇 그루 심어져 있는 화분을 하나 얻었다. 수내 밭에 갖다 심으려고. 비록 보리밥 집은 없어져도 그 추억은 초피나무로 이어져 갈 테니까.
사람은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지고, 우리가 늘 가던 식당도 천 년 만 년 하는 것이 아니라 도중에 이렇게 없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보리밥 집이 이사 가는 것을 보니 나도 언젠가는 글나라 문을 닫을 날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3년 뒤가 될 지 5년 뒤가 될 지 나 자신도 알 수 없지만 하여간 언젠가는 문을 닫는 날이 올 것이다. 내가 문을 열고 있는 동안에는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잘 대해 주어야 하겠다. 보리밥 집 아저씨가 대전에 가서도 몸 건강하고 하시는 일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 올 3월에 '글나라 동화창작 교실'을 개강할 때는 점심을 먹으러 어디로 가지? 지금부터 다른 식당을 알아봐야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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