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스크랩] 불타는 댑싸리 (411회)

凡草 2011. 10. 2. 14:47

<411회>

 

불타는 댑싸리

 

언젠가 월악산에 있는 박윤규 별장에 갔을 때 부러운 게 몇 가지 있었다.

집 옆에 엄청 큰 두충나무가 있어서 언제든지 잎을 훑어서 차로 끓여

마실 수 있었다. 또 하나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어서 은행 열매가

주저리 주저리 열려서 부러웠고, 마당에 금불초가 귀찮을 정도로

번식해서 발에 밟힐 정도였다.

금불초는 꽃도 보기 좋지만 차로도 마실 수 있다.

나도 수내 범초산장에 금불초를 키워보려고 씨를 구해서 심어 보았는데

싹이 트지 않았다.

씨는 뿌리기만 해서는 싹이 잘 트지 않는다. 포트에다 상토를 넣고

매일 물을 뿌려주며 잘 돌보아야만 싹을 틔울 수 있다. 씨앗을 심어

싹을 틔우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씨앗보다는 모종이나 뿌리를 구해서 심는 것이 훨씬 간편하다.

잔대도 씨앗을 뿌려서는 발아가 제대로 되지 않았는데 뿌리를 구해서

심었더니 틀림없었다.

 

 

씨앗편지 카페에서 금불초와 몇 가지 야생초 모종을 분양한다는 글을 보고

신청했다. 모종을 받아서 심으면 살아날 가능성이 높다.

금불초 5포트, 선비꽃 3포트, 자주초롱 2포트. 이렇게 10포기를 주문했다.

모종 값 만원에 택배비 4천 원을 합쳐서 14000원을 보냈다.

며칠 뒤에 택배가 왔다. 충청북도 진천에서 뽕나무님이 보낸 택배였다.

나는 상자를 열어본 순간 정성스럽게 포장한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모종을 일일이 플라스틱 화분에 담고 종이컵을 받쳐서 수분이 마르지

않게 했고, 화분에는 물을 적신 신문지를 채워 놓았다.

종이컵과 화분이 떨어질까 봐 테이프로 일일이 붙여두었고 화분이

쓰러지지 않도록 골판지까지 집어넣었다.

얼마 안 되는 돈을 받고 이렇게 정성들여 보내다니…….

 

 

여태까지 많은 택배를 받아보았지만 이처럼 정성스럽게 포장한 택배는

처음 보았다.

 게다가 주문한 모종 말고 덤으로 금전초와 동이꽃까지 보내주었다.

내가 보낸 돈이 겨우 14000원 밖에 안 되는데 택배를 보내느라 수고한

노력 값은 10 만원도 넘을 것 같았다.

상업적으로 파는 사람들은 이렇게 포장하지 않는다. 꼼꼼이 포장할 시간도 없고

그럴 마음의 여유도 없다. 분명히 꽃을 좋아하는 사람이 딸 시집 보내듯

자신이 키우던 식물이 어디를 가든 잘 살으라고 정성스럽게 포장했으리라.

 

 

무슨 일을 하든 이렇게 정성들여 하면 누구에게나 칭찬을 들을 것이다.

저번에 위성 안테나를 달러 왔던 사람은 올 때부터 투덜거리더니

우리가 자세히 안 보는 사이에 어른 키보다도 낮은 곳에 달아놓고

가버려서 다시 불러서 높은 곳에 달도록 부탁했다.

한 번 정성들여 하면 될 일을 두 번이나 번거롭게 왔다 갔다 했고

소비자 모니터링에도 좋은 반응을 못 듣게 되고 말았다.

나는 정성들여 포장한 상자를 산장에 들고 가서 나도 정성껏 화단에 심고

물을 주었다.

앞으로 잘 살아난다면 오늘 받은 택배를 두고 두고 생각할 것이다.

 

 

배추는 벌써 많이 컸다. 이대로 잘만 키우면 우리 집 김장용 배추는

충분히 될 것 같다.

지난번에 심은 파도 어느새 싹을 내밀었다. 잘 심기만 하면 반드시

싹이 나와서 잘 자란다.

 

 

 

산장에 계곡이 있으니 물은 마를 날이 없다. 긴 호스를 이용하여

배추에 물을 듬뿍 주었다.

 

에키네시아는 열 송이도 넘게 피었다. 처음에는 몇 송이가 피었는지

일일이 세어보았는데 이젠 많이 피니까 세어볼 필요가 없었다.

에키네시아 군락지를 만드려고 씨를 사서 포트에서 발아시킨 다음

꽃밭에 옮겨 심었다. 내년에는 더 볼만 할 것이다.

에키네시아는 월동을 하니까 다시 심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니

편해서 좋다.

 

 

여름내 파랗던 댑싸리가 가을이 되니 빨갛게 변했다.

마치 불타는 듯하다. 참 보기 좋다.

 한 그루가 살아 남아서 저렇게 많이 번진 것도 기적이다.

 댑싸리는 씨앗을 방광, 신장에 좋은 약으로

쓸 수 있고 마른 줄기는 빗자루로 사용할 수 있지만 조경용으로도

최적이다. 댑싸리 씨로 술도 담을 수 있다고 하는데 술담을 정도의

씨가 나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시험적으로 조금 담아봐야겠다.

올해는 댑싸리를 많이 번식시켜 놓았기 때문에 내년에도 모종을

여기 저기 심어서 볼거리로 만들어야겠다.

 

 

일을 하고 나서 점심 식사로는 간편하게 새우를 쪄서 고추냉이 장에

찍어 상추 쌈을 싸 먹었다.

생선이나 조개, 새우 등을 쪄서 이렇게 쌈을 싸 먹으면 요리를 복잡하게

안 해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쌈은 상추와 함께 천궁, 삼백초를 곁들였다.

어린 잔대 잎도 쌈에 넣어 먹었다.

공기 좋은 숲속에서 1박2일이 지나가고 있다.

                         (*)

출처 : 글나라
글쓴이 : 凡 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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