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8회>
< 2011년, 9월 11일, 일요일, 흐리고 비 >
세 번째 심은 배추 모종
여태까지 내가 농사를 지으면서 제일 힘들었던 점이 척박한 땅이었다. 노루실은 좀 나았지만 생림에서도 그랬고 두구동에서도 새로 개간한 땅이라 돌투성이 땅에 무엇을 심으니 제대로 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수내에서는 틈나는 대로 밭에 거름을 듬뿍 넣어 주었다. 메추라기 똥을 몇 년 쓸 것을 사 놓았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넣을 수 있었다. 이번에 배추 모종을 심기 전에도 일주일 전에 거름을 듬뿍 넣어주고 흙을 섞어 놓았는데 그게 문제였다. 농작물이 크고 난 다음에는 괜찮아도 어린 모종일 때는 거름을 주면 안 된단다. 그래서 두 번이나 모종을 사다 심었는데 어제 와보니 삼분의 일이 죽었다. 세 번째로 모종 20포기를 사다 보충해 놓았다. 다행히 비가 내려서 모종이 뿌리를 내리는데 도움이 될 것 같고 거름 성분이 비에 씻겨져 나가길 바랐다. 이번에도 안 된다면 될 때까지 심을 것이다. 안 되면 될 때까지 하자는 것이 내 생각이다.
지난 주 배추밭 모습
이번 주 배추밭
채소든 나무든 뿌리를 깊이 뻗기 전에는 거름을 많이 주면 안 된다. 씨앗이 싹을 틔울 때는 영양분이 거의 없어도 된다. 마사토에 씨를 뿌려 발아를 시키면 발아 성공률이 높다. 그대신 물은 자주 주어야 한다. 씨앗은 물만 잘 주면 발아가 잘 된다. 거름은 어느 정도 자란 다음에 주어도 늦지 않다. 씨앗을 발아시키는 거나 사람을 가르치는 것이나 원리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사람도 어릴 때 너무 풍족하면 공부를 열심히 안 한다. 뭔가 부족해야 공부할 필요성을 느낄 것이다.
도꼬마리 씨앗이 익어가고 있다
미국의 일러스트인 바버라 쿠니는 어머니가 화가였는데도 별다른 가르침을 받지 않았단다. 어머니는 바버라가 혼자서 마음 내키는 대로 미술 도구를 갖고 놀도록 내버려두었다. 바버라는 혼자 그림을 그리며 놀다가 차츰 미술에 빠져 들었다. 만약에 어머니가 혹독한 교육을 시켰더라면 바버라가 83세로 죽을 때까지 그림을 열심히 그릴 수 있었을까? 아마 억지로 시켰다면 염증을 빨리 느끼고 그림과는 멀어졌을 것이다. 처음에는 욕심부리지 말고 조금씩 배워야 한다. 배우는 듯 마는 듯 배우다가 점점 강도를 높여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나는 남을 가르치는 일을 오래 해왔는데 처음부터 굉장히 열성을 갖고 하는 사람을 보면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한다. ‘저렇게 열심히 하는 것은 좋은데 과연 얼마나 오래 갈까?’ 처음부터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인내심을 갖고 오래 공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점점 꽃이 늘어가는 에키네시아
사람이 살다보면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부부가 다툴 때도 있고, 자녀 때문에 속을 썩이는 경우도 있다. 아니면 돈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일도 적지 않다. 사람이 돈이 없어서 병에 걸리는 일은 흔하지 않다. 오히려 돈이 많으면 걱정할 게 더 많다. 사람이 암에 걸리는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스트레스를 제때 제때 풀지 못하는 것도 한 가지 원인이 된다. 스트레스가 생겼을 때 제일 쉽게 풀 수 있는 방법은 운동을 하는 것이다. 등산을 하든 체조를 하든 에어로빅을 하든 땀흘리며 운동을 하면 스트레스가 풀린다. 술이나 담배, 음식으로 푸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나는 등산을 매주 한 번은 하고 산장에 와서 꽃과 나무를 가꾸며 스트레스를 푼다. 집에서 힘든 일이 있어도 산장에 와서 일하고 야생초 차를 마시면 다 잊어 버린다.
빌려온 사진
요즘에는 스포츠댄스도 기분 전환에 도움이 된다. 룸바와 차차차는 순서를 거의 다 외웠고, 자이브는 ‘스톱앤 고우’가 약간 어려웠지만 연습을 반복해서 겨우 익혔고, 이번 주에는 스패니쉬 동작을 배웠다. 이제 순서는 거의 아는데 동작을 더 부드럽게 하는 것이 관건이다. 처음에는 빠른 음악을 못 따라가고 중간에 틀려서 멍하니 서 있거나 아무렇게나 했는데 이젠 어떻게든 흉내는 낸다. 내가 글을 쓰거나 책을 읽기 때문에 아내와 대화할 일이 적은데 스포츠댄스를 배운 뒤로는 연습하기 위해서라도 가끔 손을 잡고 스텝을 밟아본다.
작년 가을에 등산을 갔다 올 때마다 질경이가 씨를 맺고 있으면 보이는 대로 받아와서 산장에 뿌렸다. 그런 노력 덕분에 산장에 질경이가 많이 보였다. 처음에는 포크레인으로 민 땅이라 전혀 보이지 않았는데 짝퉁 잔디밭이 질경이 밭으로 변해가고 있다. 질경이가 어디든지 흔하긴 하지만 막상 구해서 먹으려면 많은 양을 구하기가 어렵다. 도시 근교에서는 오염된 땅이나 밭 주위에서 볼 수 있는데 밭 주위에는 농약을 치기 때문에 안심하고 캘 수가 없다. 질경이가 많아지면 차도 끓여 마시고 약초로도 활용해야겠다. 내 생각으로는, 뽕나무, 질경이, 쑥, 잔대, 구기자, 어성초, 삼백초, 모시풀 - 이 8가지만 있어도 어지간한 병은 다 나을 수 있다고 본다.
천궁 꽃
꽈리가 맺혔다
오후에는 한련초와 개똥쑥, 초석잠을 베어 효소를 담았다. 계곡이 있어서 효소 재료를 씻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소쿠리채로 들고 가서 흐르는 물에 씻은 다음, 가위로 썰어서 큰 함지박에 설탕을 풀어서 버무렸다. 다 버무려지면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으면 끝이다. 효소 재료를 씻고 자르고 설탕에 버무리고 제법 일이 많았지만 생산적인 일을 해서 기분이 좋았다. 앉아서 인터넷을 검색하거나 음악을 듣고 놀면 편하지만 그걸로 끝이다. 노는 것은 아무리 해봐야 기분이 좋다는 것뿐이지 결과가 없다.
효소 담는 순서; 1. 재료를 물에 씻는다.
2. 물에 씻은 다음에 물기를 빼지 않아도 된다.
3. 재료를 가위로 자른다. 그래야 설탕에 버무리기 좋다.
4. 재료를 설탕에 1;1로 버무린다. 설탕이 모자라는 것보다는 조금 넉넉한 편이 좋다.
5. 항아리나 유리병에 담으면 끝. 반드시 밀봉해야 초파리가 들어가지 않는다. 담은 다음에 며칠 지나서 추가로 더 넣어도 된다. 나처럼 야생초를 구하기 어려운 사람은, 감이나 사과, 배, 자두, 포도 같은 과일을 똑같은 요령으로 담아도 훌륭한 효소를 만들 수 있다. 담아놓은 효소는 대략 3개월 뒤에 알맹이를 채로 걸러낸 다음에 원액은 6개월 이상 숙성시켰다가 물에 1;9나 2;8로 희석해서 마시는 것이 좋다.
하지만 생산적인 일은 과정은 힘들어도 하고 나면 반드시 결과물이 있다. 힘들더라도 생산적인 일을 많이 하면 덩달아 결과물도 많아질 것이다. 산장에서 1박2일을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갈 때는 언제나 그렇듯이 친정집에 왔다 가는 딸처럼 짐이 가득하다. 흙엄마가 나에게 베풀어주는 여러 가지 선물 덕분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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