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스크랩] 공짜로 만든 집 (419회)

凡草 2011. 11. 28. 09:27

<419회>

 

공짜로 만든 집

 

< 2011년 11월 27일, 일요일, 맑음 >

 

어제 아내와 수내에 다녀왔다.

이제 산장에 가도 크게 할 일은 없어서 고구마를 구워 먹고

쉬다가 저녁에 돌아왔다.

 

 

요즘 산장에서 할 일이라면 씨앗을 받는 일이다.

메리골드가 씨앗을 매달고 있어서 하나 하나 따서 비닐봉지에

담았다. 정작 씨앗이 없을 때는 씨앗 구하기가 쉽지 않은데 엄청

많이 달려 있는데도 따기가 귀찮아서 한 봉지만 땄다.

씨앗을 처음 구할 때는 누가 준다고 하면 반송봉투까지 보내서

받는 열정을 지녔는데, 이젠 씨가 넘쳐나니 일일이 받는 것을 귀찮아

한다. 사람은 어떤 일에서든 초심을 잃지 않아야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메리골드 씨앗을 한창 받고 있는데 줄기 속에 무슨 풀뭉치가 있는 게

보였다.

“저게 뭐지?”

나는 그게 뭔가 싶어서 꺼내보았다. 그랬더니 세상에나 새둥지였다.

 

 

어떤 새가 요렇게 작은 집을 만들어 놓았을까? 얼른 보면 잘 보이지

않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들어가는 구멍이 있고 안에는 작지만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새둥지 크기로 보아 작은 새가 만든 것 같았다.

작은 둥지지만 참 솜씨있게 만들었다. 풀줄기를 물어다가 이리 저리

엮어서 둥그스름하게 만들었는데 작은 새는 돈 한 푼 안 들이고 집을

지었다. 한 마디로 공짜로 만든 집이다.

내 손바닥에 들어갈 만큼 작은 둥지를 들여다보며 새의 지혜로움에

감탄하였다. 작은 새에 비하면 나는 참 많은 것을 갖고 있다.

차도 있고 집도 있고 사무실도 있고 산장도 있으니 얼마나 부자인가!

그런데도 때로는 앞날을 불안해하기도 하고 연금이 없는데 어떻게

살아갈까 걱정을 한다.

새는 집도 공짜로 짓고 먹이도 자연에서 공짜로 얻는다. 비가 오면

바위 아래서 비를 피하면 될 것이고, 추운 겨울에는 마른 풀씨라도 주워

먹으면 굶어죽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사는 집이 마음에 안 들면 또 새로 만들면 그만이고.

무소유처럼 살아가는 새를 보며 나를 잠시 돌아보았다.

새처럼 살아간다면 아무 것도 걱정할 게 없을 것이다.

새는 자기가 애써 만든 둥지를 내게 선물로 남겨 놓고 떠났다.

자신처럼 청빈하게 살면 아무 것도 걱정할 게 없다는 메시지를

남겨 놓고.

나는 그 새가 언젠가 다시 찾아오기를 바라며 원래 있던 그 자리에

살그머니 넣어두었다.

 

 

초겨울이 가까워지자 화려하게 피어있던 에키네시아가 시들어버렸다.

아침에 오니 응달에는 서리가 내려 있었다. 그 서리를 맞은 탓인지

꽃이나 식물들이 힘없이 녹아내렸다.

그런데 아직도 싱싱하게 살아있는 잎들이 있으니 초롱꽃과 사상자다.

늦가을까지 버틸 수 있다는 것은 이른 봄에 제일 먼저 돋아날 수 있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내년 봄에 초롱꽃과 사상자 잎을 나물로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벌써 풋풋한 향이 입안에 맴돈다.

 

 

배추는 이제 다 자란 것 같다. 이번 주에 영하 추위가 오지 않아

다행이다. 다음 주에는 김장을 해야겠다.

 

 

쑥부쟁이도 씨를 맺어서 훈장처럼 달고 있다. 씨를 보면 참쑥부쟁이와

개쑥부쟁이를 구별할 수 있다. 개쑥부쟁이는 씨가 노란 솜털처럼

생겼는데 참쑥부쟁이는 딱딱하게 생긴 열매가 달려있다.

 

 

황금달맞이꽃이 겨울 날 준비를 다 하고 땅에 납작하게 엎드려 있다.

어떤 강추위가 오더라도 저 자세로 겨울을 잘 날 것이다. 두터워보이지도

않는 외투가 성능이 좋은 모양이다.

 

 

늘 물이 차 있던 마당 앞 저수지가 오랜만에 속살을 다 드러내었다.

물고기를 잡으려고 물을 다 뺀 모양이다. 바닥까지 다 드러난 저수지를

보니 황량하다. 저수지는 물이 있을 때가 보기 좋지 물을 다 빼고 나니

화장을 지운 여자 같다. 사람도 진실과 겸손과 사랑을 다 빼고 나면

저렇게 추해지지 않을까?

 

 

자하 부부가 심어준 오죽이 완전히 자리를 잡았는지

겨울에도 파란 잎을 달고 있다. 다른 나무들이 다 잎을 떨어뜨린 뒤에도

파란 잎을 달고 있는 것을 보니 참 보기 좋다.

 

  사철나무가 빨간 열매를 매달고 있다.

 

   상추는 이제 끝물이다...

                                                 (*)

출처 : 글나라
글쓴이 : 凡 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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