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

[스크랩] 마지막 날에도 무엇을 심고... (424회)

凡草 2011. 12. 31. 20:28

 

<424회>

 

마지막 날에도 무엇을 심고...

 

< 2011년 12월 31일, 토요일, 맑음 >

 

 며칠 전에 <씨앗 편지> 카페에서 노루오줌 뿌리를 분양한다고

해서 돈을 보냈더니 어제 택배가 도착했다.

노루오줌 뿌리가 4개 만원, 붉은 상추 씨앗 3봉지 3천원,

술패랭이 씨앗 2봉지 2천원, 달래 씨앗 2봉지 2천원, 모두 17000원에다

택배비 3천원을 합치면 2만원이다.

 카페 주인 정미옥님은 늘 그렇듯이 주문한 씨앗만 보내지 않고

몇 가지 씨앗을 덤으로 더 보내주었다. 참 고마운 분이다.

노루오줌은 노지에서 월동을 하니까 오늘 심었고, 나머지 씨앗은 내년

봄에 심으려고 서랍에 넣어두었다.

  

 

 

 오늘은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 날이다. 나는 오늘도 산장에 와서

한 가지를 심었다. 마지막 날이라고 특별한 행사를 하지는 않아서

평소처럼 산장에 와서 시간을 보냈다.

노루오줌을 심고 나서 내년 봄에 잘 살아나길 빌며 흙을 잘 덮어주었다.

 무엇을 심는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희망을 심는 것과 같다. 심은 것이 언젠가는 보답으로 돌아온다.

간혹 죽는 것도 있지만 답이 없는 경우에는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살아나는 것만 반갑게 대하면 된다.

 열을 심어서 하나가 살아난다고 해도 만족한다. 하나는 분명히 성공했으니까.

죽어 버린 아홉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말고 살아난 하나를 기뻐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씨앗을 많이 심고 사람 농사도 많이 지었는데

내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수확을 거두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나도 사람이기 때문에 때로는 욕심을 부리기도 했고, 내가 한 노력보다

더 많은 수확을 바라기도 했지만, 이제부터는 정말 마음을 비우고 살아가야

하겠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마음을 비우라는 하늘의 계시라고 생각한다.

나이를 한 살 먹을수록 내가 살아가고 있는 땅에서 한 살씩 더 멀어져 가고

있지 않는가! 하늘이 더 가까워지고 있다.

 살아 있는 동안 적은 결과에도 만족하고 심는 그 자체를 즐겨야겠다.

 

 

지난 번 일기에 쓴 냉장고와 등나무 소파 사진을 오늘 올린다.

냉장고는 남이 몇 년 쓴 것이지만 여태 산장에 있던 것보다 더 크고 성능이

좋아서 마음에 든다. 힘들여 가져온 동주에게 감사한다.

 

 

 

 산장을 돌아보니 이 추운 겨울에 민들레꽃이 피어있다. 한 송이만 핀 줄

알았는데 잘 살펴보니 여기 저기 몇 송이가 피었다. 겨울 추위에도 씨앗을

퍼뜨리려는 민들레가 정말 대견스럽다.

 저런 강인한 정신이면 무엇을 못하겠는가?

 

 

 산장 앞 저수지에도 얼음이 얼었고, 계곡에도 얼음이 얼었다.

다음에는 썰매를 구해서 썰매를 타봐야겠다.

 

 

 영하의 추위가 계속 되고 있지만 배추가 아직도 살아 있다. 쌈 배추로 쓰려고

몇 포기 남겨 두었는데 언제까지 갈지 모르겠다. 시험삼아 그냥 놓아둘 참이다.

 

 

 아들 결혼식은 25일에 잘 마쳤다. 아들 문현이와 정미가 필리핀 보라카이 4박5일

신혼여행도 잘 다녀왔다. 신혼살림을 우리 집 2층에 차렸기 때문에 날마다

볼 수 있어서 좋다. 몇 년 있다가 아파트를 구해서 내보낼 참인데 그때까지는

같이 살 예정이다. 아내가 조금 힘은 들겠지만 밥도 같이 먹고 자주 만나다

보니 허물이 없어서 좋다.

 

 

 

 

 나에겐 며느리라기보다 동화 쓰는 제자라서 더 가깝게 느껴진다.

 윤정미는 동화 교실 저녁반(달님반)에 공부하러 오던 수강생이었다.

 어느 날 아들이 제 엄마한테,

"결혼하고 싶은데 엄마는 나한테 신경도 안 써주고..."

뭐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아들은 회사에 가서 기계 전산 설계를 맡고 있는데 중소 기업이라

주말까지 바쁘게 일하기 때문에 누구 만날 시간이 없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책임이 느껴져서 해님반과 달님반에 아가씨가

몇 명이나 있는지 조사해 보았다. 모두 기혼자들이고 미스는 3명 정도였다.

 그 중에서 누가 아들과 맞을 만한지 살펴보았지만 아들을 소개해주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혹시 시간 있으면 산장에 놀러 오라고 했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러고 있는데 한 번은 달님반 번개가 범초산장에서 열렸다.

 마침 그때 정미가 범초 산장에 왔기에 아들에게 살며시 전화를 걸었다.

 "야, 아가씨가 한 명 왔는데 얼굴 한 번 보려면 와라."

 아들은 평소에 산장에는 거의 오지 않는데 내 전화를 받고 1시간 뒤에 왔다.

 거기서 서로 얼굴만 보고 난 뒤에 다음날 내가 정미한테 메일을 보냈다.

"우리 아들 얼굴 봤지? 혹시 남자 친구 있니? 없으면 아들 소개해주고 싶은데

 한 번 만나 볼래?"

 정미에게서 답장이 왔다.

 "선생님이 소개해주신다면 한 번 만나볼 게요."

 그렇게 해서 두 사람에게 각각 전화 번호를 알려주고 만나도록 주선했다.

 그 뒤, 일 년 동안 사귄 끝에 마침내 결혼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동화 교실을 열었기 때문에 아들 배필도 찾을 수 있었다.

  좋은 인연에 감사하며 신혼 부부가 잘 살도록 도와주려고 한다.

 

 결혼식 날 부산아동문학인 협회의 많은 문우들과 대학 친구에다

약초모임 회원들까지 찾아와 주어서 참 고마웠다.

 귀한 시간을 쪼개어 식장에 참석해준 여러 제자들에게도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린다. 이번에 진 빚은 살아가면서 차차 갚아나갈 생각이다.

 

 

 

 사회자의 지시로 장인을 업고 식장을 한 바퀴 돌고 있다.

 

 

                                  (*)

출처 : 글나라
글쓴이 : 凡 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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