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

[스크랩] 올해 처음 캔 냉이 (428회)

凡草 2012. 2. 1. 16:21

<428회>

 

올해 처음 캔 냉이

 

< 2012년 2월 1일, 수요일, 맑음 >

 

다른 지방에는 눈이 온다는데 부산은 해만 쨍쨍 빛난다.

여긴 정말 눈 보기 어려운 곳이다.

부산에 눈이 오면 교통지옥이 되겠지만 그래도 가끔은 눈이 기다려진다.

지난 토요일에는 윈드 부부와 함께 장편 동화 <하늘 목장>을 쓴

모람 이하은씨 집에 놀러갔다.

 원동면 화제리에 있는 모람 집은 항상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고향집처럼 푸근하다.

 윈드와 릴리는 선물을 준비해 갔는데 난 공동 경비를 모으는 줄 알고

빈손으로 가서 미안했다.

 빈손으로 갔는데도 웃으며 환대해준 모람 부부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우리는 모람 신랑 차를 타고 복천암까지 갔다.

짐칸에 올라타 주위 경치를 즐기며 달렸다.

 

 

그동안 등산을 다니면서 복천암을 지나가기는 많이 했어도

안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는데 들어가 보니 바위틈에서

약수가 새어나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물맛이 참 좋았다.

절은 높은 산속에 있어서 고즈넉했다.

 

 

 

약수를 마시고 토곡산에 올랐다.

날이 아주 포근해서 봄날 같았다.

윈드가 사온 김밥을 맛있게 먹고 두 패로 나누어 하산했다.

모람 신랑과 우리 부부는 좀 어려운 코스를 골랐다.

그전에 한 번 지나가본 적이 있는 토곡산 공룡 능선이었다.

오르막 내리막이 제법 많았지만 즐겁게 걸었다.

도중에 낙엽 바다가 있었는데 무릎까지 낙엽에 잠겼다.

발로 낙엽을 차며 걸었다.

겨울에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었다.

 

 

 

정상에서 두 시간 정도 걸려 도로까지 내려갔다.

거기서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고 화제리로 돌아왔다.

그 다음에는 빈 밭에 가서 냉이 캐기. 올해 처음 캐보는 냉이였다.

밭에 냉이가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호미로 깊은 뿌리까지 캐내었다.

흙과 함께 풍기는 냉이 향이 그윽했다. 냉이 나물을 먹는 것도 좋지만

캐는 맛도 무시할 수 없다.

겨울 한복판에서 봄을 캐어내는 기분이 그저 그만이었다.

소쿠리 캔 다음에 모람 집으로 들어갔다.

 

난로 옆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저녁을 먹게 되었다.

오리고기에 갖가지 장아찌, 김치, 파김치, 쌈배추를 곁들여 먹으니

이름난 맛집 같았다.

마침 금잔이 있어서 명품 돌배 술을 받아 마시니

황제가 부럽지 않았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나서 모람 신랑이 바리스타를 배웠다며

커피를 직접 갈아서 타 주었다. 이또한 명품 커피였다.

아이스크림에 유리병으로 거른 커피를 타 먹으니 꿀맛이었다.

이렇게 맛있는 커피를 먹어본 것도 처음이었다.

 

 

 

 커피를 마시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주고 받았는데,

모람이 안동 도산서원에 가서 이황 선생님 후손한테 들었다는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내가 처음 듣는 에피소드였다.

모람이 해준 이야기에다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몇 가지 예화를 더 보태어

글나라 동화교재 184호 동화창작교실 강의에 집어 넣었다.

 그 중 일부를 소개한다.

 

<퇴계 이황이 27살 때 첫 번째 부인과 사별하게 되어

아이들과 힘든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때 당파 싸움에 밀려 귀양 가 있던 스승 권질이 불렀다.

권질에게는 당파 싸움의 여파로 집안이 기울자

정신에 이상이 생긴 딸이 있었다.

권질은 이황에게 자네가 아니면 내 딸을 맡아줄 사람이 없다면서

간곡하게 장래를 부탁하였다.

 

결국 퇴계는 권질의 정신 나간 딸을 아내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정신병이 있다 보니 종종 난처한 일이 생겼다.

첫날밤에는 부인이 옷고름을 어찌나 단단히 얽어맸던지

퇴계가 푸느라고 무진 애를 먹었다. 부인은 이렇게 말했다.

“어렵게 얻으면 더 가치가 있지 않겠습니까?”

하루는 제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제사상에 있는 배를 집어다가

몰래 치마 속에 숨겼다. 퇴계 형수가 이걸 보고 야단치자

퇴계가 나서서 아내를 감싸주었다.

"제사를 지내기 전에 음식을 먹는 건 예법에 어긋난 일입니다.

하지만 조상님께서도 후손을 귀엽게 여기실 터이니

손자며느리의 행동을 노엽게 보시지 않을 겁니다."

나중에 제사를 마친 뒤 퇴계는 아내에게 왜 그랬냐고 물어보자

권씨 부인은 배가 몹시 먹고 싶어서 그랬다고 말했다.

퇴계는 손수 배를 깎아서 아내에게 주었다.

 

어느 날, 상가집에 가기위해 흰색도포를 입으려다가 해진 것을 보고

아내에게 기워달라고 했더니 권씨 부인은 빨간 천을 덧대어서 가져왔다.

퇴계 이황은 아무 말 없이 입고 상가집에 갔다.

예법에 정통한 퇴계가 상가집에 빨간색 천을 덧댄 흰 도포를 입고

온 것을 보고 사람들이 놀라서 물었다.

“아니 퇴계 어른, 흰옷에 빨간 천을 덧대어 입는 게 예법에 맞습니까?”

퇴계는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했다.

“모르는 소리들 말게. 붉은 색은 잡귀를 쫓고 복을 부르는 것이니,

앞으로 이 집에 좋은 일이 많이 생기라고 아내가 이렇게 해준 것인데,

어찌 이상하다고 생각하는가?”

어느 아낙네가 퇴계의 아내에게 물었다.

“형님, 남편은 엄한 원리로 살아가는 사람이니 참 재미없겠어요.”

그랬더니 퇴계의 아내는 당당하게 말했다.

“여보게, 밤에도 점잖은 학자인줄 아는가?”

 

아내를 소중히 대한 퇴계는 제자들의 부부관계에도 많은 조언을 했다.

한 번은 부인과 자주 싸우던 제자가 이혼을 해야겠다고 말했다.

퇴계는 말로 타이르지 않고 편지를 써서 건네주었다고 한다.

퇴계는 남을 충고하거나 타이를 때는 말로 하면 감정이 앞서서

더 꼬이게 만든다고 했다. 그래서 꼭 글로 충고하였다.

“여보게, 이 편지를 집에 가서 읽어보게.”

제자가 집에 가서 편지를 열어보자, 스승이 제자인 자신에게

존댓말로 충고를 써 놓아서 깜짝 놀랐다.

“집밖에서 있었던 온갖 울분과 괴로움을 집안으로 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사립문 앞에서 마음을 정화한 뒤에 집안으로 들어서기 바랍니다.

부인의 잘못을 탓하기 전에 내 잘못이 없나 돌아봐야 합니다.

세상 모든 일은 내가 하기 나름입니다.

부인이 잘못하더라도 성심 성의껏 잘해주면 다툼이 있을 수 없습니다.

부부는 남녀가 처음 만나 세상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가장 친밀한 관계를 이루는 사이여야 합니다.

부부는 서로 바르게 대해야 하고 가장 조심해야 하는 관계입니다.

그래서 군자의 도는 부부에게서 시작됩니다.

부인을 잘못 대하면서 올바른 선비가 될 수 있을까요?

지금 부인과 이혼하고 다른 여인을 만나더라도

내 마음 가짐이 바르지 않으면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부디 부인에게 더 잘해주세요.”

제자는 이 편지를 읽고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이혼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인터넷으로 배우는 제자들에게 반말을 하는데

이 이야기를 듣고 몹시 부끄러웠다.

아내한테도 더 잘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퇴계 이황 선생님이 그 정도로 훌륭한 분인 줄 몰랐는데 그 분의

인품을 알고 나니 조선을 대표하는 학자로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캔 냉이에는 퇴계 선생님의 예화까지 깃들어서 더욱 향기로운

반찬이 될 것 같다. (*)

출처 : 글나라
글쓴이 : 凡 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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