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

[스크랩] 힘든 손자 보기 (529회)

凡草 2013. 8. 31. 22:15

 

<529회>

 

 힘든 손자 보기

 

< 2013년 8월 31일, 토요일, 비 온 뒤에 개임 >

 

아들 부부가 음악 공연을 구경하러 간다고 오늘 오후부터 은우를 맡겨서

산장에 못 갔다.

범초산장에는 내일 가기로 하고 오후 2시부터 8시반까지 손자를 돌봤다.

나는 그 동안 손자가 집에 올 때도 내 할 일을 하느라 놀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낯설어 한다. 아내는 제 엄마 못지 않게 좋아한다. 그래서 손자를 봐주는 것도

아내가 있어서 가능하다. 나는 아내 보조 역할을 했다. 걸음마할 때 손을 잡아

주거나 잠시 업어주는 정도.

 

 

 

은우는 자동차를 갖고 놀다가 시들해지면 공을 갖고 놀았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하늬와 고양이 달리를 만지기도 하고 여기저기

기어다녔다.

젊을 때는 세 아이를 키웠는데 새삼스럽게 아기를 돌보자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크게 힘이 드는 건 아닌데 한시도 한 눈을 팔 겨를이 없었다. 잠깐 눈에서 벗어나면

어떤 사고를 칠지 모른다.

 

 

 

은우는 자동차를 갖고 놀다가 다리 살이 바퀴에 끼어 아픈지 큰 소리로 울었다.

아이코, 드디어 사고가 났구나!

아무리 달래도 소용이 없었다. 아내는 달래다가 안 되자 그냥 내버려 두었다.

은우는 고함을 지르며 악을 쓰더니 제 풀에 지쳐서 스르르 잠이 들었다.

휴우, 이제 한숨 돌리겠구나!

1시간 반 동안 평화가 찾아왔다. 아내는 은우 옆에서 낮잠이 들고 나는

컴을 켜서 인터넷으로 동화 지도를 하였다.

 

 

은우가 잠에서 깨어나자 다시 전쟁이 시작되었다.

한 순간도 가만히 앉아 있지 않고 여기 기웃 저기 기웃, 꼬무락 꼬무락,

이거 만지작 저거 만지작~  그야말로 호기심 덩어리다.

그래도 자고 일어나니 기분이 한결 좋은 듯 방긋 방긋 웃는다.

아내가 조금만 웃겨도 까르르 넘어간다.

꽃중에서도 사람꽃이 제일 예쁘다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은우는 내 다리 사이를 빠져 나가며 놀기도 하고 플라스틱 반찬 통을

내게 들이대며 마이크 놀이를 한다.

 

 

 

“어바바, 어어, 아아, 우우우, 으악으악!”

내가 반찬 통에 대고 이상한 소리를 내었더니 은우가 깔깔 웃으며 좋아한다.

냉장고 뒤에 숨어서 술래잡기도 하고... 오랜만에 별 놀이 다 해보네.

은우 때문에 나도 모처럼 동심으로 돌아가서 즐겁게 놀았다.

 

 

 

이제 놀이감이 떨어져서 은우가 시들해하자 아내와 마트에 가기로 했다.

마트에 가면 카트에 은우를 태워서 돌아다닐 수 있기 때문에 시간 보내기에

좋다.

우리는 양파 효소를 담기 위해 양파도 한 자루 살 겸 마트로 갔다.

마트에 도착하여 카트에 태웠더니 은우가 좋아한다. 양파와 설탕, 비누,

된장, 식초, 생선, 땅콩 등을 샀다. 물건을 다 샀어도 조금이라도 시간을 더

끌기 위해 몇 바퀴 더 돌았다.

 

 

 

 

 

은우가 싫증이 났는지 카트에서 내리려고 했다. 그만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차를 몰고 집에 와서 저녁을 먹었다.

밥에 참기름과 간장을 쳐서 비벼주었더니 잘 먹었다. 아내와 나는 밥이

모자라 라면을 끓였는데 은우는 제 밥을 다 먹고 라면까지 달라고 덤벼든다.

그릇에 조금 나누어 주었더니 손으로 막 집어 먹었다. 겁이 날 정도로

빠르게 집어넣는다. 제 아빠가 돈을 어지간히 벌어서는 은우를 못 먹여

살리겠다.

“이 녀석아, 천천히 좀 먹어라. 성질 참 급하네.”

 

 

 

 

저 녀석이 잘 걸어 다닐 때쯤부터는 산으로 데리고 가야겠다. 어릴 때부터

높은 산을 올라가야 참을성과 지구력이 길러질 것이다.

마냥 응석받이로 키워서는 안 된다. 아들이든 딸이든 강하게 키워야 한다.

 김은우, 조금만 더 커 봐라. 넌 죽었다!

 

 

 

 

 밥을 먹고 나서 은우와 그림책을 보았다.

 내가 읽어주니 무슨 말인지 우웅 하며 따라 한다.

 밤 하늘에 별이 아주 많은 그림이 나온다.

 그래, 너도 작은 별이지. 앞으로 얼마나 큰 별이 될지는 모르지만.

 아기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별이다. 가정과 나라를 이끌어 나갈

귀한 인재가 될 것이다.  젊은 부부들이 아기를 많이 낳아야 할 텐데...

 

 

 

한참 놀고 있으니 드디어 아들과 며느리가 왔다.

지옥에서 천당으로 올라가는 순간이다.

으휴, 이제야 해방이구나!

마치 광복절을 맞은 느낌이다. 대한 독립 만세!

 

은우는 잘 놀고 있다가 제 엄마를 보자 단번에 달려가서 착 안긴다.

역시 아이에겐 엄마가 최고구나. 할머니도 좋지만 엄마가 제일이지.

암 그렇고 말고.

 

 

 

 은우가 제 집으로 돌아가고 나서 아내는 느긋하게 텔레비전을 보았다.

손자를 돌보는 동안에 많이 웃기도 했지만 새삼스럽게 아이를 보자니

꽤 힘들었다.

아이를 키우는 것도 다 때가 있구나. 이제는 더 키우라고 해도 못 키우겠다.

아들 부부가 손자를 자주 봐달라고 할까 봐 더럭 겁이 난다.

몇 달에 한 번은 몰라도 자주는 안 되겠다. 오늘 손자 때문에 산장에 못 가서

영 아쉽다. 내일은 새벽부터 달려가야지. (*)

출처 : 글나라
글쓴이 : 凡 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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