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6회>
나홀로 산행
< 2013년 12월 7일, 토요일, 맑음 >
오늘 산장에 가서 난로에 넣을 땔감을 장만했다. 동그라미 계원인 이홍식씨가 난로를 만들어줘서 연통만 설치하면 되기 때문에 땔감을 많이 모아두어야 한다. 요즘에는 숲가꾸기 작업을 통해 간벌을 많이 하기 때문에 산에 가면 땔감할 나무는 얼마든지 주워올 수 있다.
긴 나무를 톱으로 자그만하게 잘랐다. 헬스장에서 운동하듯이 톱질을 했다. 산장은 내 놀이터가 맞다. 톱질을 하고 도끼질도 하면서 논다. 이걸 일이라고 생각하면 힘들지만 놀이라고 생각하면 즐겁다. 오늘 얼마만큼 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하고 싶은 만큼 하다가 쉬면 그만이다. 연통은 탁영갑씨한테 설치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연통이 만들어지면 시험 삼아 한겨울에도 산장에서 자봐야겠다.
황칠나무 세 그루를 봄에 사서 심었는데 두 그루는 어디로 갔는지 자취가 없고 한 그루만 살아 남았다. 황칠나무는 추위에 약하기 때문에 비닐로 싸주었다.
무화과와 석류나무도 추위에 약한데 석류는 다음 주에 손보기로 하고 무화과를 잘 싸주었다.
늦가을에 심은 마늘이 잘 크고 있다.
겨울이라도 요즘 포근해서 그런지 민들레가 꽃을 피웠다. 씨를 받아 여기 저기 골고루 뿌려주었다. 내년 봄에 민들레꽃이 피면 민들레 꽃차를 만들 생각이다.
지난 월요일에는 공덕산에서 기장 거문산을 거쳐 웅천리까지 걸어갔다. 매주 월요일마다 한 번씩 하는 등산은 아는 산을 갈 때도 기쁘지만 전혀 모르는 곳을 찾아갈 때 더 기쁘다.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듯이 호기심을 갖고 낯선 길을 하나씩 찾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나이가 들면 모든 것에 익숙해져서 살아가는 재미가 떨어지지만, 등산은 항상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고 배움의 기회를 주어서 좋다.
산 앞에 서면 언제나 겸허해지고 작아진다. 산은 나의 선생님이요, 친구요, 다정한 연인이다. 혼자 가도 쓸쓸하지 않고 소풍 가듯이 즐겁다.
공덕산은 수내 범초산장 바로 뒷산이다. 국제신문에 이 코스가 소개되었을 때 범초산장과 가까운 곳에서 시작하는 코스라 언제 시간내어 한 번 가봐야지 하고 마음 먹었는데 교통편이 안 좋아서 못 가다가 이번에 용기를 내어 가보기로 했다.
범어사 지하철 역에서 2-2번 마을 버스를 타고 선두구동 주민센터 앞에서 내려 등산을 시작했다. 연꽃이 많이 피는 두구동 저수지를 지나 산으로 올라갔다.
거문산으로 오르는 오르막길은 제법 가파랐지만 맛있는 음식을 아껴 먹듯이 차근차근 즐기면서 올라갔다. 낙엽이 얼마나 많이 떨어졌는지 낙엽의 강을 건너기도 했고 아무도 없는 호젓한 산을 혼자 마음껏 걸으며 호사를 누렸다. 이 코스는 월요일이라 그런지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점심시간에는 무덤 옆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겨울답지 않게 햇살이 포근해서 늦가을 같았다. 반찬은 몇 가지 안 되지만 맛있게 잘 먹었다. 커피까지 한 잔 하고 나니 황제 부럽지 않다.
아무도 없는 깊은 산속에서 무덤 옆에 앉아 있으면 무서워야 할 텐데 하도 혼자 다니다 보니 이젠 익숙해져서 전혀 무섭지 않았다. 수내에 범초산장을 처음 만들었을 때도 누군가는 일부러 겁을 주려고 저수지에 빠져 죽은 사람이 많다며 귀신이 나올지 모르니 조심하라고 했지만, 처음 한두 번만 약간 으스스 했을 뿐, 계속해서 자니까 아무렇지 않았다.
경험이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혼자 산을 다니다 무서운 일을 겪어 봐야 겁을 낼 텐데 여태 아무 일도 없었으니 겁을 집어 먹을 이유가 없다. 산장에서도 벌써 3년이 지났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귀신이 잡아 가려면 벌써 잡아 갔을 것이고, 나같은 필부를 잡아가봐야 써 먹을 데도 없을 것이다.
겨울산은 완전히 민낯과 같다. 나뭇잎이 다 떨어져서 속살이 환히 보인다. 더 이상 감출 것이 없다. 이처럼 다 비우고 살라고 충고하는 것 같다. 지도도 없이 국제신문 산행기만 의지해서 길을 찾았다. 거문산 정상 부근에서 잠시 헤맸을 뿐 어렵지 않게 길을 이어갔다.
오래 걷다가 쉴 때는 나물 모종 채집을 했다. 산장에 없는 솜나물 몇 포기를 캤다. 들꽃 전문가를 따라 다니며 많이 배운 덕분에 야생화는 거의 섭렵했다. 이젠 어린잎만 보아도 어떤 나물인지 구별할 수 있다. 봄이 되면 제자들을 모아 나물 산행을 해야겠다.
거문산 계곡을 지나면서 보니 해가 개울에 빠져 있었다. 해가 심심해서 멱을 감는 모양이다. 빛나는 개울 물을 보니 지나간 추억도 떠오르고 잠시 향수에 젖었다. 하지만 마냥 추억에 잠겨 있을 수는 없는 노릇. 다시 힘을 내어 걸어갔다.
원시림 비슷한 계곡을 지나고 나무 계단도 내려갔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라 모든 게 새롭다. 오늘 하루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난 것 같다. 아기가 되어 아장 아장 걷는 기분이다. 엄마 같은 산을 보며 걸음마 하고 있다.
즐거운 마음으로 걷다 보니 다리가 전혀 아프지 않다. 아파야 앉아서 쉴 텐데 불편하지 않으니 벌써 한 시간이 넘도록 걷고 있다.
어느 전원주택 앞을 지날 때보니 메주를 달아 놓았다. 정겨운 풍경이라 사진을 찍었다. 수도암을 거쳐 홍연폭포에 닿았다.
겨울이라 물은 적었지만 경치는 참 좋았다. 기장 8경 중에 하나란다. 홍연폭포 바로 밑에 있는 저수지도 멋이 있었다. 서산으로 지는 해가 산 끄트머리에 걸려 마지막 햇살을 쏟아붓고 있었다.
아침부터 걸은 산길도 좋았고 저수지에서 마무리하는 코스가 마음에 들었다. 산 능선에 진달래가 지천이니 다음에 진달래가 필 때 다시 한 번 와봐야겠다. 철마 웅천리까지 걸어갔더니 마침 반송으로 나가는 버스가 왔다. 그 버스를 타고 고촌에서 미남까지 가는 도시철도 4호선을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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