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스크랩] 듣기 좋은 풀벌레 소리 (593회)

凡草 2014. 8. 26. 13:28

 


<범초산장 일기; 593회>


듣기 좋은 풀벌레 소리


<2014년 8월 24일, 일요일, 구름>


산장에서 새벽녘에 풀벌레 소리 때문에 잠이 깨었다.

시끄러워서 잠이 깬 게 아니라 정감 있는 소리라 눈이 저절로 떠졌다.

지난주에는 비가 와서 풀벌레 소리가 잘 들리지 않더니

날씨가 맑자 풀벌레들이 마음 놓고 울었다.




쌔앵쌔앵~

요렇게 우는 놈도 있고,


아르르르~

차르차르

요런 놈도 있고,


치이치이 지지지지~~ 

에앵에앵~~

이렇게 울기도 한다.

우는 소리가 조금씩 다르지만 한꺼번에 울어대니

일일이 소리를 구분할 수는 없어도

전혀 시끄럽지 않고

현악기 합주처럼 듣기가 좋았다.

풀벌레 소리가 요란해진 것을 보니 벌써 가을이 온 모양이다.




그 아련한 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어렸을 때 몇 년 동안 시골에서 살았는데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그 때의 추억이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다.






대나무에 철사를 동그랗게 말아서 거미줄을 몇 번만 슬쩍 걷어내면

그럴사한 잠자리채가 된다.

그걸로 왕잠자리를 잡았는데 눈이 똥그란 녀석이 손에서 푸르르 떨던 기억이

지금도 눈앞에 생생하다.


     예덕나무에 노란 꽃이 피었다.




풍뎅이를 잡아 발을 떼어 뒤집어 놓고 팽이처럼 갖고 놀기도 했고,

냇가에 가서 반딧불이를 보던 기억,

개울에 들어가 민물고기를 잡던 일,

저수지에 놀러 갔는데 태풍이 불어서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어 애먹은 일 등...





그런 추억이 있기 때문에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 된 것 같다.

몇 년 안 되지만 그 아련한 추억이 내 마음 저 밑바닥에 짙게 깔려 있기 때문에

어른이 되어서도 시골을 좋아하고 자연속에 있는 것을 즐긴다.


              부처꽃이 참 오래 간다.




잠이 깨어 누워 있는 동안 풀벌레들은 계속 울어댄다.

참 멋진 음악이다.

나를 초대하지 않았지만 가만히 누워서 듣고 있다.

이토록 아름다운 풀벌레 소리를 공짜로 듣자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박수라도 보내주어야겠다.

풀벌레들아, 훌륭한 연주다.  박수~~~

풀벌레 음악 하나만으로도 자연을 찾아온 보람이 있다.

다른 날 밤에 또 좋은 연주를 들어야겠다.


                    태풍이 불어도 걱정없는 하우스,  아주 튼튼하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연주하는 악사들이여

낮에 너희들이 하우스 안을 뛰어다니더라도 잡지 않겠다.

마음대로 뛰어다녀도 그냥 볼 테니 좋은 음악 또 들려다오.


                   화장실에 앉아 있으면 연꽃이 보인다.



가을 배추를 심기 위해 밭을 정리했다.

오이, 가지, 토마토, 고추들을 다 정리하고 빈 밭을 만들었다.

아직 더 놓아두면 열릴 게 더러 있지만 배추를 심기 위해서는

2주 전에 거름을 섞어 두어야 한다.

일주일 전에 거름을 넣고 모종을 심으면 모종이 독한 거름 성분 때문에

배겨내지 못하고 녹아버리는 것을 종종 보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런 피해를 막기 위해 2주 전에 미리 밭을 비워두었다.

밭에다 거름을 넣고 반듯하게 골랐다.

아내는 나보다 일머리가 있어서 밭을 보기 좋게 만들었다.

나는 쇠스랑으로 해보니 제대로 되지 않아서 손으로 반반하게 다듬었다.

기계로 하든 손으로 하든 어떻게든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일머리가 없는 사람이라도 노력이 중요하지 기술이 중요한 게 아니다.

올 가을에 먹을 배추는 손으로 다듬은 밭에 키우겠구나.

우선은 배추가 호강하겠지만 결국은 나를 위한 일이다.



 

아직 아무 것도 심지 않은 빈밭이지만 저 밭을 바라보면 어쩐지

푸근하다.

하얀 원고지처럼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밭이다.

저 밭에 무엇을 심느냐에 따라 색깔이 달라질 것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저 빈밭에서 배추도 나오고 무도 나올 것이다.

어머니처럼 무엇을 한없이 베풀어주는 고마운 밭이다.

나는 밭에서 어머니를 느낀다.

그러니 손으로 밭을 쓰다듬고 만져도 전혀 지저분하지 않다.

어머니도 내가 어릴 때 일하다가 흙묻은 손으로 나를 만져준

적이 있지만 더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무궁화 꽃을 심은 지 2년만에 꽃이 피었다. 꽃이 아주 커서 마음에 든다.




사랑은 그런 모든 것을 초월한다.

내가 밭이 있는 산장에 자주 오는 것도 어쩌면 어머니 사랑을

느끼고 싶어서 오는지도 모르겠다.

 

            삼지구엽초



                                                                      (*)


출처 : 글나라
글쓴이 : 凡 草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