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凡草텃밭 이야기 632회)
2015년 3월 21일, 토요일, 맑음
<할미꽃이 좋아지는 나이>
예전에는 할미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왜 이름마저 청승맞게 할미꽃일까? 생긴 것 하며 꽃에 얽혀 있는 이야기마저 서글프게 보였다. 할미꽃은 씨방마저 할머니 백발을 닮았다. 아들딸한테 버림받고 떠돌다 죽은 할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그래서 이 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올해는 웬지 이쁘게 보였다. 내가 나이가 들은 때문일까? 외투를 벗고 올라오는 꽃대가 이쁘고 피어난 모양도 여느 화려한 꽃 못지않다.
며칠 전에 할미꽃이 많이 피어있는 군락지를 찾아갔다. 막 피어난 모습을 보니 가슴이 뛰었다. 나이가 들면 맥박이 느려지면서 젊은 시절에 좋아하던 랩처럼 빠른 노래보다는 느린 올드팝이나 트로트가 좋다더니 꽃도 그런가 보다. 백합이나 칸나, 장미처럼 화사한 꽃도 좋지만 할미꽃은 또 다른 매력이 있다. 곱게 늙으면 나이들어도 그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할미꽃이 보여준다.
나이 들었다고 추한 것이 아니고 잘못 늙으면 추하다. 나이 먹었다고 늙은 것이 아니고 마음이 좁고 옹졸하면 늙은 것이다. 항상 도전하는 삶을 살고 가슴 뛰는 순간이 많으면 늙어도 아름답다. 동화작가 김향이씨나 이가을님 같은 분은 나이가 들었어도 연륜이 아름답고 얼굴에서 빛이 난다.
봄구슬봉이
여우구슬
생강나무 꽃
오봉산에도 노루귀가 엄청 많았다. 가까이에 노루귀가 그토록 많았는데 그런 줄도 모르고 멀리 가서 찾았구나.
얼레지 꽃대
제비꽃
오늘 아침에 TV조선에서 <기막힌 세상 요지경>이라는 프로를 보았는데 양팔과 다리가 없지만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는 마을의 해결사 태국의 캄탱씨가 나왔다. 사지가 없어도 절망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여자 친구도 생겼다. 곧 결혼할 사람이란다. 사람은 외모나 재능보다도 자기 일에 얼마나 열심히 매달리느냐에 따라 등급이 달라진다. 대충 대충 어영부영 살면 낮은 등급으로 떨어지지만 한 우물을 깊이 파는 사람은 장인이나 명장으로 인정받고 남들의 존경을 받는다. 캄탱씨도 외모가 말이 아니지만 그가 자전거도 타고 오토바이로 마을 사람들을 태워주며 그물로 고기까지 잡는 것을 보니 아주 멋진 사람으로 보였다. 인간의 향기는 그가 하는 행동에서 풍겨난다. 어떤 일을 좋아하고 그 일에 푹 빠져서 전문가가 되면 향기를 내뿜게 된다. 주위 사람들은 그 향기를 맡으며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 아직 안 본 분들은 캄탱씨의 향기를 한 번 맡아 보기 바란다. < 지난 방송 보기 ▶ http://me2.do/5Zft05BN [출처][기막힌 세상 요지경] 사지는 없지만 행복한 태국의 닉 부이치치 캄탱 씨!
범초텃밭에 가서 대대로님이 준 양하를 심고 명이나물 모종도 심었다. 양하는 남부 지방에 자라는 야생초인데 생강이나 겨자처럼 톡 쏘는 맛이 있는 나물이라고 한다. 그 맛을 보고 싶어서 진작부터 구하고 싶었는데 대대로님이 고맙게도 모종을 손수 갖다주어서 잘 심었다.
택배로 주문해서 산 명이나물 모종 40포기도 심었다. 두구동 산장에 두 번이나 심었는데도 포기가 늘지를 않아서 이번에는 더 많은 모종을 사서 심었다. 안 되면 될 때까지 하는 게 내 성격이라 이번에도 안 되면 다음에는 80포기를 심을 생각이다. 그러니 다 살아나지 않고 반만 살아나도 된다고 혼자 느긋하게 생각한다. 동화교실에서 내가 가르치는 제자들도 그렇다. 20명을 가르치면 다 성공할 수 없다. 그 중에 반의 반만 등단을 해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내 능력이 그 정도밖에 안 된다고 여기니까.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내가 욕심을 부리지 않고 마음을 비우니까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제자들이 등단을 하고 능력이 뛰어난 제자들이 모여든다. 약초 키우는 것이나 사람 기르는 일이나 원리는 같다. 정성으로 심고 잘 보살펴주면 죽지 않고 쑥쑥 자란다.
석산리에 있는 범초텃밭은 나와 고라니만 들어가는 비밀의 약초밭이다. 철망 울타리를 빙 둘러 쳐놓고 열쇠로 잠궈 놓았기 때문에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아무나 들어가면 어디에 약초를 심어 놓았는지 모르기 때문에 함부로 밟고 짓뭉개버린다. 그래서 잠궈 놓았다. 고라니는 점프 실력이 좋아서 사람 키만한 울타리라도 쉽게 뛰어 들어온다. 고라니는 내가 완두콩을 심을 때 구멍을 파주었기 때문에 언제든지 와도 괜찮다. 나와 동업하는 농부니까.
잔대와 방풍과 단삼 싹이 올라오는 밭을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천국이 따로 없다. 약초를 바라보면 벌써 그윽한 향기가 느껴진다. 날이 따뜻해지면서 밭 전체에 훈훈한 바람이 분다. 약초들이 춤을 추고 있다. (*)
친절한 금자씨가 물냉이 모종과 함께 보내준 겨우살이와 옥수수 감사하게 잘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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