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凡草텃밭 이야기 654회)
2015년 8월 5일, 수요일, 맑음
<휴가는 고생이다>
휴가를 맞아 동그라미 계원들과 거제도 황포해수욕장에 갔다. 잔잔하고 조용한 포구라 마음에 들었다. 파도도 세지 않고 사람들도 그리 많이 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팬션이나 콘도를 빌리지 않아서 캠핑 비슷한 1박2일이었다. 몽골텐트를 1박 2일에 10만 원을 주고 빌려서 밥을 직접 해먹었다. 세 집이 갔기 때문에 일은 분담해서 했다.
바닷가인데도 낮에는 찜통이었다. 간간이 바람이 불면 시원해도 바람이 안 불면 무더웠다. 그럴 때는 바닷물에 들어가서 더위를 식혔다. 바둑을 두거나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밤을 맞았다. 별로 할 것이 없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주위에서 떠들썩하게 이야기를 하는 통에 숙면을 취할 수가 없었다. 텐트마다 불까지 환하게 켜놓아서 눈만 감고 있을 뿐 잠이 오지 않았다. 게다가 평상이 딱딱해서 누운 자리조차 불편했다.
편안한 집 놓아두고 이거 무슨 고생이람? 지리산 못지않은 산장도 있는데 돈 주고 고생을 하다니!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휴가 가서 편안하고 즐겁게 지내다가 오는 것보다 나처럼 고생을 하고 와야 집의 고마움을 알고 일하는 기쁨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 고마운 휴가인가?
이리 뒤척 저리 뒤척하다가 겨우 잠이 들었는데 새벽녘이 되니까 서늘했다. 다시 잠이 깨어 옷을 하나 더 입었다.
이래 저래 휴가는 고생이다. 더위 피하러 갔다가 사람에 치이고 낯선 환경에 시달리고. 땀 흘려 일한 사람은 떠나라는 말이 있는데 차라리 일할 때가 더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것도 하는 일 없이 우두커니 있는 것은 따분하다. 나 혼자 갔더라면 책이라도 보았을 텐데 여럿이 갔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고 시간만 보내고 돌아왔다. 아무래도 나는 단체 생활보다는 개인적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좋다.
바닷가에 흔한 순비기 나무
계요등
휴가에서 돌아오자마자 범초산장으로 달려갔다. 역시 여기는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곳이다. 더우면 계곡에 들어가서 물에 씻고 공짜 평상에 앉아 책을 보니 마음도 즐겁고 느긋했다. 글나라 동화교실에 나오는 정현정씨가 살림문학상을 받은 <그림자 실종 사건>을 읽었는데 재미있었다. 잘 쓴 작품이다.
여긴 내 산장이라 누가 와서 딱딱거리거나 시비할 일이 없다. 황포 해수욕장에서 보니 어떤 사람은 앉아서 줄담배를 피워대던데 연기 때문에 질색이었다. 휴가 온 사람보고 그만 피우라고 할 수도 없고 내가 피하느라 신경이 쓰였다.
범초산장은 담배금지구역. 누가 와서 피울 수도 없지만 피우더라도 구석진 곳에 가서 피우라고 말할 권리가 있다. 저수지 옆이라 간간히 바람도 불고 신선 노름이다.
정미가 치과에 가느라 은우를 우리에게 맡겼다. 덕분에 오랜만에 보았다. 아들 집과 가까이에 있지만 정미가 불편할까 봐 자주 안 간다. 은우는 물총 놀이를 하고 물에 돌멩이를 던지며 놀았다. 산장 안에서는 바둑돌을 갖고 놀고. 4살인데 이제는 말을 아주 잘 했다. 오줌도 가려서 그전보다는 돌봐주기가 한결 편했다.
날씨가 더워서 일은 조금만 했다. 체리나무가 쓰러진 지 2주일 만에 바로 세워 놓았다. 제때 보살펴주지 않아서 살아날지 모르겠다.
모종으로 심은 깻잎이 잘 크고 있다. 깻잎을 따서 호박잎과 함께 쪄 먹으면 맛있다.
고추에 내가 만든 천연 농약을 뿌려주었다. 막걸리, 마요네즈, 식초, 매실엑기스, EM 효소, 미국자리공 등을 물에 섞어서 뿌렸다.
삼잎국화 꽃이 피었다. 나물로 먹고 꽃도 이쁘다. 생명력이 강한 식물이다.
석류가 조금씩 굵어지고 있다. 우리는 덥다고 아우성이지만 석류는 더위를 잘 활용하고 있다. 도서관에 가보니 무더위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하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남들이 놀 때 공부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호박 열매가 몇 개 달렸다. 호박은 잎을 쌈으로 먹고 꽃은 만두로도 해먹을 수 있는데 꽃이 많지 않아 만두는 해 먹을 수 없어서 아쉽다. 내년에는 호박을 듬뿍 심어서 호박꽃을 많이 딸 수 있게 해봐야겠다.
세 번이나 실패했다가 가까스로 옮겨심기에 성공한 모시풀이 잘 크고 있다. 한 번에 성공한 것보다 여러 번 시도한 식물에 더 정이 간다.
쥐처럼 생긴 쥐방울 덩굴
미역취 꽃이 많이 피었다. 내년 봄에는 미역취 나물을 뜯어 먹을 수 있겠다.
산장에 횃불을 켜 놓은 듯 환하게 빛나는 배롱나무 꽃이 올해도 피었다. 지금부터 백일 동안 피고 진다. 배롱나무 꽃은 꽃차로도 해먹을 수 있어서 좋다. 지혈, 대하, 설사, 장염, 방광염, 오줌소태, 혈액순환에 좋은 꽃이다.
점심으로는 약초수국꽃 라면을 끓여 먹었다. 초석잠, 어성초, 삼백초, 뽕잎을 먹고 끓인 라면에 수국 꽃잎을 얹어 먹었다. 수국 꽃도 먹을 수 있는데 달콤 쌉싸레한 맛이 난다. 시험 삼아 이것 저것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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