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凡草텃밭 이야기 671회)
2015년 11월 7일, 토요일, 비
<단비 오는 날에 행복한 나들이>
오늘은 꿀맛 같은 단비가 내렸다. 참 오랜만에 내리는 비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보며 의령으로 나들이를 갔다. 남부 지방에는 지금 단풍이 한창 절정이라 오고 가면서 눈요기도 실컷 하였다. 먼 산에는 형형색색의 단풍들이 수채화처럼 걸려 있어서 참 보기 좋았다.
우리가 갈 목적지는 의령군 대의면 하촌리다. 이윤임씨는 원래 수필을 쓰던 분이었는데 친구인 윤자명씨가 소개해주어서 나한테 인터넷으로 동화를 배우고 있다. 사는 집은 진주인데 의령에 시골집을 갖고 있다. 보통 여성답지 않게 나처럼 시골을 좋아하고 농사를 즐기는 분이라 반가웠다. 동화 공부를 시작한 뒤부터 진작 놀러 오라고 했는데 시간이 안 맞아서 못 갔다. 마침 오늘은 윤자명씨도 시간이 나서 아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의령으로 함께 갔다. 윤자명씨 역시 처음에는 수필을 썼는데 소반 허명남씨가 소개를 해주어서 나에게 동화를 배웠다. 윤자명씨는 2009년에 제 17회 MBC 창작동화 공모전에서 <달샘의 흙>으로 대상을 받아 상금 2천만 원을 받았다. 2013년에는 동화책 <숭례문을 지켜라>를 내었고, 2014년에는 <헤이그로 간 비밀편지>를 펴냈다. 윤자명씨는 나에게 배운 것을 잊지 않고 가끔 점심 식사를 대접해서 배운 것 이상으로 은혜를 갚았다. 직접 글나라 동화 교실에 나와서 배운 것도 아니고 몇 번 만나 지도를 해주었을 뿐이라 이젠 내가 오히려 신세를 지고 있는 형편이다. 하여간 좋은 인연 덕분에 오늘은 의령으로 가을 나들이까지 가게 되었다. 시골집이 어떻게 생겼을까? 나처럼 주말에만 간다는데 어떻게 해놓고 있을까? 밭은 얼마나 넓을까? 주변 환경은? 혼자 온갖 상상을 다하며 의령으로 달려갔다.
이윽고 하촌리에 도착했다. 부산에서 1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집은 깨끗한 새집이 아니고 허름한 시골집이었지만 그게 도리어 푸근하고 정감있게 보였다. 내가 좋아하는 전형적인 시골집이었다. 마당에 시멘트를 바른 것은 내 취향이 아니었지만, 장독대, 헛간, 곡식과 열매를 담아놓은 방, 솥을 걸어놓고 불 때는 아궁이, 가마솥, 툇마루 등은 딱 내가 좋아하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비가 오는 날이라 철철 떨어지는 빗물을 받는 고무 물통은 왜 그렇게도 정겹게 보이던지! 그 외 돌담과 담쟁이 덩굴, 양파와 마늘, 방풍나물이 자라는 텃밭 등........ 온갖 풍경이 나를 청소기처럼 훅 빨아들였다. ‘아,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 바로 이거야!’ 신발 벗고 올라서는 댓돌 바로 옆에는 잘 익은 홍시감이 있어서 보기만 해도 푸짐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 사과이고, 그 다음이 감인데 오늘 감을 실컷 맛보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니 나도 모르게 침이 줄줄 나왔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 벌어졌다. 내가 대접에 절대로 신경 쓰지 마라고 동화 지도 메일에 단단히 일렀건만 무슨 준비를 그렇게도 많이 했는지 아이고 참내.... 가마솥에는 엄나무 가지를 잔뜩 넣어서 토종닭을 삶고 있었다. 닭을 삶는 동안에 먹으라고 전통 식혜와 홍시, 곶감, 무화과, 땅콩 등을 내 놓고 맥주까지 차려내었다. 아니 이걸 다 먹으면 닭은 어느 배에 집어넣지? 행복한 고민이었다.
먹으면 무엇을 또 내어오고 그걸 먹고 나면 또 권하고..... 성의는 고마운데 다 먹기가 힘들었다. “윤임씨, 다음에도 이렇게 하면 안 옵니다.” '선생님, 일부러 사온 것이 아니고 다 시골에 있는 것들입니다. 너무 부담 갖지 마세요." 그렇긴 한데 나 때문에 다른 일도 못하고 부담이 되지나 않았을지 염려가 되었다. 그러고 있는데 닭이 다 익어서 상에 올라왔는데 이건 닭이 아니라 어찌나 큰지 거위 같았다. 나와 아내가 닭 다리 하나씩을 받았는데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었다. 결국 닭 다리 하나도 다 먹지 못하고 남겼다. 이어서 녹두를 넣어서 끓인 닭죽. 그 닭죽도 반그릇을 겨우 먹었다. 아이고, 배가 좀 컸더라면 척척 먹어주었을 텐데..... 아쉽다! 내가 이런 글을 쓰는 것은 혹시 나를 초대할 경우에 이렇게 대접하라는 게 아니다. 나는 미식가가 아니고 무엇을 줘도 많이 못 먹는다. 보리밥 한 그릇에 상추와 막장만 있으면 된다. 제발 간소하게 준비해서 서로가 부담을 느끼지 않고 먹는 사람도 즐겁게 먹으면 좋겠다. 옛날 같으면 못 먹는 시절이었으니 배터지도록 준비해야 잘 먹었다고 인사를 하지만 요즘에야 어디 그런가? 평소에 너무 잘 먹으니 먹는 것에 그리 연연할 필요는 없다. 좋은 풍경을 많이 보고 좋은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것이 좋은 만남이다.
이윤임씨가 써 놓은 동화를 즉석에서 읽고 내 의견을 말해주었더니 인터넷으로 듣는 것보다 훨씬 이해가 잘 간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들려준 즉석 강의가 도움이 되었다니 비로소 찾아간 보람을 느꼈다. 이윤임씨는 부지런하고 음식 솜씨가 좋은 데다 애살까지 많아서 앞으로 좋은 동화를 쓸 분으로 보였다. 인심 또한 후덕해서 가까운 친척 집에 온 것 같았다.
연달아 여러 가지를 먹고 나니 배가 불러서 소화가 안 되었다. 할 수 없이 우산을 들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여기서 빠질 수 없는 것 한 가지. 내가 즐겨하는 씨앗 채집이다. 나는 배초향과 쇠비름 씨앗을 수집해서 호주머니에 넣었다. 비만 안 왔다면 흰민들레도 캐었을 텐데 그것은 참았다.
하루 자고 가라고 붙잡는 것을 겨우 뿌리치고 이른 저녁을 먹고 나왔다. 그 대신 내년 봄에 글나라 제자 몇 명을 데리고 1박 2일을 하러 오겠다고 약속했다. 얻어먹은 것도 한보따리인데 나와 윤자명씨에게 무엇을 또 보따리 보따리 싸주었다. 고구마와 대봉감, 땅콩 등. 꼭 친정에 왔다 가는 기분이다. 이렇게 잘해주면 다음에 또 오기 힘들다. 예전에 내가 학교에서 담임선생을 할 때 우리 반에 일식초밥집을 하는 집이 있었는데 어찌나 한 번 오라고 권하는지 아내와 한 번 간 적이 있었다. 식사를 거창하게 차려주어서 잘 먹었는데 돈을 안 받고 그냥 가라고 해서 그 뒤로는 한 번도 가지 않았다. 가고 싶어도 체면상 갈 수가 없었다. 그 반면에 목욕탕 하는 집에서는 목욕료가 5천 원이라면 3천 원만 받으니 완전히 공짜가 아니고 나도 적당히 할인을 받는 셈이라 꾸준히 다닐 수 있었다. 사람간의 거래란 이렇듯 주고받는 관계라야지 일방적인 희사는 오래 갈 수 없다. 좋은 대접도 많이 받고 가을 경치도 구경하면서 비오는 날 가을 나들이 한 번 잘 했다.
그나저나 범초산장과 범초텃밭에 있는 식물들은 단비를 맞으며 얼마나 좋아할까? 내일 아침에 얼른 달려가 봐야지. 밭으로 갈 생각을 하니 벌써 가슴이 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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