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凡草텃밭 이야기 677회)
2015년 12월 7일, 월요일, 맑음
< 뿌리를 끊고 돌을 파내고……. >
범초산장으로 김장을 하러 갔다. 배추는 잘 컸는데 막판에 진딧물의 공격을 받아 조금 피해를 보았다. 그래도 겉잎을 떼어내니 배추속은 괜찮아서 김치를 담는 데는 큰 지장이 없었다. 배추 47포기 중 30여 포기만 뽑아내고 나머지는 밭에 그냥 놓아두었다가 겨우내 쌈배추로 뽑아 먹을 작정이다.
배추에 비해 무는 아무 피해가 없었다. 확실히 배추보다 무가 강한 모양이다. 그런데 덜 솎아주어서 너무 촘촘하게 자란 탓에 알이 형편없이 작은 것이 있어서 아내한테 잔소리를 들었다. 굵은 무를 보고 칭찬 좀 해주면 어디 덧나나? 나는 이 정도만 커준 것도 감사하다. 주말에 와서 깔짝깔짝 돌보아주었을 뿐인데 이만큼 컸으면 잘 된 거지. 더 욕심을 부리려면 매일 와서 해보든가?
이 무는 풀을 막으려고 비닐을 씌워 놓은 곳에서 컸는데 더 크게 자랐다. 외따로 컸어도 기죽지 않고 잘 커서 대견스럽다.
배추를 소금물에 담갔다가 소금을 뿌리고 절여두는 동안에 동치미를 묻어 놓을 곳을 파러 갔다. 여태 한 번도 땅을 파고 항아리를 묻어본 적이 없는데 이번에 한 번 해보자고 했다. 아내가 나무 그늘이 좋겠다고 해서 숲에 가서 땅을 팠는데 한참 파니 아주 굵은 나무 뿌리가 나왔다. 톱으로 끊고 파니 더 굵은 뿌리가 앞을 막았다. 톱으로 끊어 내었더니 이번에는 큰 돌이 장애물로 등장했다. 곡괭이를 휘둘러 돌을 파내려고 안간 힘을 다했지만 돌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내는 안 되겠다고 다른 데를 파보자고 했지만 나는 한사코 이 장소를 고집했다. “여기가 힘들다고 다른 데 가면 편할 줄 알아? 거기는 더 큰 돌이 있을 거야. 땅속에 돌이 있는 건 어디나 마찬가지라고. 반 이상 팠으니 여기서 끝을 보아야지.” 부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성격이 안 맞다고 이혼하고 다른 배우자를 찾아본들 또 다른 이유로 다투기 쉽다. 한 자리에서 시작했으면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그 자리에서 끝을 내어야 한다. 곡괭이를 내려 놓고 호미로 돌 주변의 흙을 걷어내고 다시 도전했다. 돌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곡괭이로는 안 될 것 같아서 빠루까지 들고 와서 지렛대 원리로 돌을 흔들었다. 마침내 돌이 땅 위로 올라왔다. 그러면 그렇지. 제 놈이 언제까지 버틸라고. 도전해서 안 되는 것이 뭐가 있던가? 나무 뿌리를 끊어내고 돌을 파내느라 힘들었지만 그만큼 성취감이 더 컸다. 장애물이 많으면 많을수록 도전 정신은 더 강해진다. 도전 정신을 가진 사람에게 장애물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장애물을 극복하고 이겨내려는 자세를 가지면 도전하는 자체가 즐거운 놀이가 된다. 오늘 땅을 파느라 고생을 했기에 동치미 국물이 더 깊고 시원할 것이다.
땀을 닦고 산장으로 내려오니 자연이 주는 상품이 기다리고 있다. 보석 같은 까마중 열매다. 산장에 아직도 열리고 있어서 한 줌 따 먹었다. 승리자에게 주는 자연의 선물이다.
동그라미 계원들이 12월 모임을 하러 범초산장으로 왔다. 범초산장 땅을 인수한 것을 축하하는 파티를 했다. 이홍식씨가 가져온 둥근 원탁을 펴놓고 바다 장어를 구워 먹었다. 날씨가 따뜻해서 가든 파티를 했다. 대리석 위에 바다 장어를 구워 먹으니 타지도 않고 맛이 그저 그만이었다. 막걸리를 마시며 땅을 인수하기까지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장어에 막걸리를 마시니 잘 어울렸다.
밥을 다 먹고 쉬다가 난로를 피워서 군고구마를 구워 먹었다. 올해 처음으로 난로를 피웠다. 난로에 고구마를 구워 먹으니 확실히 더 달고 감칠 맛이 났다. 겨울이 비록 춥지만 이런 낭만이 있으니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금자씨표 물냉이가 초겨울에도 싱싱하게 살아 있다. 먹을 게 없으면 뜯어 먹을 텐데 아직 상추랑 배추가 있어서 그냥 눈요기만 한다.
지난주에 옮겨 심어 놓은 상추가 잘 크고 있다. 어제 20포기 정도를 더 캐다가 심었다. 봄을 위해서 미리 저금해 놓은 기분이다.
날씨가 따뜻한 탓인지 산장에 개나리가 피었다. 철을 모르는 개나리다. 올 겨울이 아직까지는 비교적 따뜻한 편이다.
목련이 촛불을 켤 준비를 해놓았다. 꼭 촛대에 작은 초를 꽂아놓은 것 같다. 해마다 꽃봉오리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목련은 봄이 되어서 꽃봉오리를 만드는 게 아니라 겨울이 되기 전에 미리 다 만들어 놓았다. 저런 모습으로 있다가 봄이 오면 풍선을 불 듯 더운 공기를 빨아들여 꽃봉오리를 확 불어낸다. 목련은 작은 꽃봉오리를 안고 있기에 겨울이 삭막하지 않다. 겨울 바람이 아무리 거세도 지치지 않는다.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같다. 저 목련을 보면 나 역시 봄을 기다리는 재미가 있다. 겨울이 아무리 춥고 길어도 상관없다. 지우개 같은 목련이 겨울을 싹 지워버릴 테니까. 저 목련 한 그루만 있어도 기쁜데 산장에는 많은 나무가 즐비하게 서 있다. 2009년부터 6년 동안 가꾸어 왔더니 나무들이 많이 자랐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범초산장에 있는 나무를 차례 차례 소개해볼 생각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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