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26일, 토요일, 맑음
(범초산장 이야기 802회) 수상 축하 삼계탕
화명동 동화교실에 다니는 이분희씨가 비룡소 동화창작 공모전에 뽑혔다는 소식을 들었다. 2007년에 해운대에서 하던 글나라 동화교실을 화명동으로 옮겼는데 이분희씨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다녔다. 그동안 몸이 아파서 수술을 받기도 하고 힘든 시간이 있었지만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고 다니다가 마침내 저학년 장편동화 부문에서 상을 받게 되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나도 무척 기뻤다. 동화 평론가로 불릴만큼 동화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는데도 여태 큰 상을 못 받아서 아쉬웠는데 오랜 기다림 끝에 상을 받게 되었다니 묵은 숙제를 해결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재료를 준비하여 수상 축하 약초 삼계탕을 해주기로 했다. 1-2년 다닌 사람도 아니고 10년이나 다녔으니 마땅히 축하해주어야 한다. 말로만 축하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고 식당에 가서 사주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직접 해주는 것이 성의라고 생각했다. 약초는 범초산장에 널려 있으니 닭 두 마리만 사면 된다.
아침부터 더워서 땀이 났지만 기쁜 마음으로 준비했다. 한 시간 반 정도 끓인 끝에 약초삼계탕이 완성되었다. 화명동 글나라 동화교실에서 해주었기 때문에 가마솥은 아니지만 압력솥으로도 잘 되었다. 분희씨가 퍽 기뻐하며 맛있게 먹어서 해준 보람이 있었다. 닭을 두 마리나 해서 다 먹지 못하고 남은 것은 싸 주었다.
화명동 동화교실에서 요 몇년간 공모전 당선자가 안 나와서 조금 아쉬웠는데 이제 물꼬가 터졌다. 다른 회원들도 좋은 자극을 받아 열심히 쓰기를 바란다. 분희씨가 뽑힌 것은 본인의 노력이 제일 크지만 선배인 한정기씨의 조언도 도움이 되었고 해님반 동화교실 회원들의 합평 모임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문학적 향기를 가득 지닌 남촌의 배려도 손꼽지 않을 수 없다.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그동안 월요일마다 꾸준히 산을 찾아갔다. 한 번에 4-5시간 정도는 걸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우산을 쓰고 걸었고 맑은 날에는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며 걸었다. 산에는 맑은 공기가 가득 하였고 내가 숨을 쉬어도 더러워지지 않았다. 내 건강의 반은 산에서 얻었고 나머지 반은 범초산장에서 채우고 있다.
비가 올 듯이 잔뜩 흐린 날에는 안개가 자욱하였다. 혹시 비가 뿌리면 빗속에서 도시락을 먹을까 봐 급히 걷기도 했는데 안개가 걷히면 다시 밝은 숲길이 이어졌다. 힘든 시기가 지나면 좋은 시절이 다시 찾아온다. 언제나 안개가 눈앞을 가리는 것은 아니다. 어쨌거나 밀고 나가면 앞이 트인다. 산길을 걸으며 인생의 이치를 많이 깨닫는다.
산을 내려오면 시장으로 간다. 내가 좋아하는 파김치도 사고 생선도 산다. 그러고 보면 시장도 내 건강에 많은 도움을 준다. 시장에서 장사하는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한 번은 아내와 초읍 성지곡 수원지 둘레길을 같이 걸었다. 숲이 울창하여 기분좋게 걸었다. 걷고 나서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을 찾다가 어린이 대공원 정문 앞에 있는 <보리밥 뷔페>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보리밥만 있는 게 아니라 쌀밥도 있었고 여러 가지 맛있는 반찬이 많아서 마음에 들었는데, 밥값이 5천 원이라니! 맛집으로 추천하고 싶은 식당이다.
빨간 봉숭아는 많아도 흰봉숭아가 드물어서 작년에 씨를 받아다 뿌렸는데 싹이 돋아나서 꽃이 피었다.
금년 4월 중순 계몽아동문학회 봄 문학 기행 때 옥천에 있는 이가을 선생님 댁에 들러서 꽃범의 꼬리를 얻어왔는데 잘 커서 꽃을 피웠다. 가뭄이 심할 때도 혹시나 죽일까 봐 물을 자주 주었더니 잘 살아났다. 하얀 꽃을 보니 이가을 선생님의 온화한 미소를 보는 듯 하다. 선생님이 건강하시고 좋은 글 많이 쓰길 기도한다.
고추밭에 천연 농약을 만들어서 뿌려주고 아내가 올 때마다 노린재를 일일이 잡아준 덕분에 빨간 고추가 많이 열렸다. 해마다 풋고추는 많이 따 먹었어도 빨간 고추가 열릴 무렵에는 병충해가 심해서 빨간 고추는 거의 못 땄는데, 올해는 훨씬 잘 되었다. 우리 식구 김장할 정도는 될 것 같다.
그런데 고추를 말리려고 칼로 반을 짤라서 신문지에 널다 보니 어떤 고추 안에는 벌레가 들어 있었다. 아니, 이렇게 매운 고추를 갉아 먹다니! 손으로 만지기만 해도 매워서 손이 화끈거리는데 저 벌레는 얼마나 지독하길래 매운 고추를 먹을까? 참 지독하구나! 난 그 벌레를 보고 한 가지를 배웠다. '그래, 무슨 일이든 너처럼 악착같이 하면 못할 게 없겠구나! 남들이 맵다고 싫어하는 고추를 피하지 않고 덤벼들다니! 정말 대단하다! 너처럼 악착같이 산다면 못 이룰 일이 없겠다.'
조금 징그럽지만 벌레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하나만 더 하겠다. 요 사진은 치자나무에 붙어서 잎을 갉아 먹는 박각시 나방의 애벌레다. 박각시 나방은 이쁘지만 벌레는 흉하게 생겼다. 치자 열매를 얻기 위해서는 이 벌레를 그냥 놓아둘 수가 없어서 잡았다. 그래도 불쌍해서 한 두 마리는 놓아두었다.
천연 농약을 쳐준 덕분에 케일이 살아나서 잘 크고 있다. 산장에 와서 밥 먹을 때마다 케일 잎을 살짝 데쳐서 막장에 싸 먹는다. 깻잎도 아무 데나 돋아나서 잘 따 먹고 있다. 내가 모종을 모아서 키우는 깻잎밭에는 거름기가 부족한지 잘 자라지 않고 오히려 심지도 않은 뒷밭에서는 잘 크고 있다.
아내와 산장에서 호박갈치찌개를 해 먹었다. 전에 언젠가 아내와 싸운 날 내가 호박갈치찌개를 만들었다가 아내가 한 입도 먹지 않아서 실패로 돌아간 적이 있는데, 아내가 잘 만들어주니 나는 편하고 맛은 더 있었다. 달달한 호박갈치찌개 덕분에 밥을 더욱 맛있게 먹었다.
마타리는 진짜 오래 간다. 이 꽃이 왜 황순원의 '소나기'이 나왔는지 이제 알겠다. 꽃이 이쁘기도 하지만 생명력이 참 강하다. 소녀가 우산처럼 이 꽃을 들고 다녔는데 아마 소녀가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을 담지 않았을까?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일찍 죽은 소녀가 안타깝다. 그래서 그 작품이 더 오래 뇌리에 남아 있는 것이겠지만.....
맥문동 꽃이 한창이다. 파란 꽃이 기둥처럼 뻗어있다. 풀처럼 작은 식물이지만 자신의 가치를 꽃으로 표현하고 있다. 작아도 이쁘다.
이건 잔대꽃이다. 꽃이 작아서 선명하게 찍지는 못했지만 종들이 줄줄이 매달려 있는 듯 하다. 잔대는 사포닌을 비롯해서 몸에 좋은 성분을 많이 갖고 있는데 꽃도 이쁘게 생겼다.
이 꽃은 일반인이 잘 보기 힘든 호장근이다. 줄기에 호랑이 줄무늬 같은 무늬가 있다고 <호장근>인데 봄에 어린 잎을 나물로 먹을 수 있다. 이 호장근을 범초산장에 심으려고 몇 번이나 시도해도 실패했는데 재작년에 심은 것이 살아나서 조금 번지고 있는 중이다.
호장근을 약으로 쓰려면 뿌리를 캐어서 쓰는데 효능을 보면, 혈액순환 개선, 관상동맥 순환 장애 치료, 어혈을 풀어주고, 변비 개선과 숙변 제거에 도움을 준다. 방광염을 낫게 하고 신장 기능 개선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호장근 뿌리로 술을 담아 먹으면 퇴행성 관절염, 류마티즘 통증을 낫게 해준다. 몸에 좋은 성분이 많지만 한 번에 많은 양을 먹어서는 안 된다.
구릿대가 사람 키보다 더 커서 꽃을 피웠다. 구릿대는 한약명으로 백지라고도 하는데 당귀, 바디나물(연삼) 등과 꽃 모양이 비슷하다.
쪽파가 2주 전에 심었는데 무서운 기새로 크고 있다. 마치 불꽃 같다. 활활 타오르릇 막 자라고 있다. 저걸 먹으면 건강도 좋아질 것이다.
부추도 쪽파한테 지지 않을 기세다. 지난 주에 집으로 돌아가면서 낫으로 싹 베어갔는데 밑동만 남아 있던 부추가 일주일만에 마술을 부리듯 또 저렇게 자랐다. 부추를 자주 먹으면 어떤 병도 낫겠다. 암 환자가 부추즙을 요구르트에 타서 오래 먹으면 낫는다고 하는데 헛말이 아닐 것 같다. 병은 양약으로 고칠 게 아니라 이런 식품으로 고쳐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아침 저녁으로 찬바람이 부는데 오이가 주렁주렁 열리고 있다. 오늘 아침 산장 기온은 19도. 이불을 안 덮으면 춥기까지 했다. 어제 아파트가 더워서 아내가 나를 따라 산장으로 일찍 들어왔는데 여긴 춥다고 한다.
이것은 마의 주아이다. 마 덩굴에는 열매 비슷한 주아가 달리는데 씨앗 비슷한 것이다. 원래 마는 뿌리를 캐어서 먹는데 이 주아도 제법 맛이 있다. 더 커지면 따서 먹으려고 한다.
장독대를 옮기면서 밭을 하나 새로 만들었다고 지나간 일기에 적었는데 아무 것도 없던 밭에 비름 나물이 수북하게 올라오고 있다. 이게 흙의 힘이다. 어떤 씨앗이든 자리만 잡고 있으면 쑥쑥 밀어 올린다. 흙속에는 커다란 대형 압축기가 들어있는 모양이다. 고압 펌프로 씨앗들을 훅훅 불어서 위로 막 내보낸다.
새로 심은 상추 모종이 자리를 잡았다. 흙속에 뿌리를 박기만 하면 땅 속에 있는 고압 펌프가 막 불어줄 것이다. 후욱- 커져라! 푸우 푸우 푸푸푸-- 나는 흙만 믿는다. 내 약한 숨결로는 저 많은 싹들을 다 줄어줄 수 없다. 땅속 거인의 강한 숨결에 기댈 수밖에는. 나는 땅속 거인을 믿고 산장에 와서 산다.
산장에 들어올 때 아내를 위해 복숭아 한 상자를 사왔다. 이제 복숭아도 끝물에 접어들고 있다. 떨어지기 전에 아내가 좋아하는 복숭아를 먹게 하려고 샀다. 아내가 복숭아를 먹으며 흐뭇하게 웃는 것을 보니 나도 덩달아 기쁘다.
어제 저녁에는 영화 <카모메 식당>을 컴퓨터로 보았는데, 잔잔하면서도 재미있는 영화였다. 무슨 문제가 있고 삶의 의미를 잃은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며 살아간다는 내용인데 식당답게 여러 가지 음식도 나오고 작은 사건들이 이어져서 흥미있게 보았다.
지난 주에는 <사랑의 블랙홀>을 보았다. 같은 날이 계속 반복되는 특이한 영화였는데 좋아하는 사람의 취향에 맞추려고 노력해보지만 자고 나면 다시 똑같은 날이 이어진다. 주인공이 자신은 변화하지 않으면서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좋아하는 여자의 마음을 얻을 수 없었다. 그러나 자신이 좋은 쪽으로 변화해 나가자 마침내 여자도 마음의 문을 연다는 줄거리다. 상대방이 변하기를 바라지 말고 내가 먼저 변해야 좋은 관계가 이루이진다. 그러지 않으면 늘 똑같은 날이 이어질 뿐이다.
내가 먼저 좋은 쪽으로 바뀌도록 노력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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