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창작

[스크랩] (범초산장 이야기 822회) 나무에게 부끄럽다

凡草 2017. 12. 7. 07:13




         2017년, 12월 6일, 수요일, 맑음

 

     (범초산장 이야기 822회) 나무에게 부끄럽다


     

  제주도에 여행 갔을 때 신기한 나무를 보았다.

  귤과 천혜향, 한라봉이 한 나무에 다 열려 있었다.

  어째서 이런 일이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주인이 대답했다.

  "아, 이건 실험용으로 여러 가지 나무를 한 나무에 접붙여 놓은 겁니다.

  우리 농장에서 생산하는 과일을 한 눈에 보라구요."

  말하자면 접목 기술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참죽나무가 너무 커서 큰맘 먹고 확 잘랐다.

  낮게 키워야 가죽나무 잎을 따 먹을 수 있다.

  조금 안 되었지만 저렇게 자른다고 죽는 것은 아니니

  과감하게 잘라야 한다.

  자식을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녀 귀하다고 야단치지 않으면 안 된다.

  엄하게 가르쳐야 부모 무서운 줄 알고 삐뚜로 자라지 않는다.

  내 세 아이는 엄하게 키웠더니 아빠 무서운 줄 알고 함부로 행동하지 않는다.


      범초산장에서 일하고 먹는 점심은 꿀맛이다.

      아내가 김치를 잘 담아서 점심이 더욱 맛있었다.

      내가 키운 무가 알이 작아도 반찬하는 데는 지장이 없어서

      무나물도 잘 먹었다. 알이 적으면 어떠냐?

      어차피 잘게 썰어서 반찬할 테니...



    앵두나무 가지를 자르다가 보니 새가 집을 지어 놓았다.

    그것도 두개씩이나.

    나뭇잎이 무성할 때는 못 보았는데...

    내년 봄에도 새가 집을 지으면 좋겠다.

    새들아, 앵두 열매 따 먹는다고 혼내지 않을 테니 집 짓고 잘 살아라.

    언제든 환영한다.

    다른 집에 가서 구박받지 말고 범초산장에 와서 당당하게 살아라. 



                범초산장은 부산이라 겨울인데도 개나리가 피었다.

                철 모르고 피었지만 보기 좋았다.

                제 때가 아니면 어떠랴! 

                겨울에 보는 개나리가 신선하다.


            우리 아파트 거실에 화분이 다섯 개나 된다.

            나는 화분을 많이 놓으려고 해도 아내가 반대했다.

            새집이라 깔끔하게 살아야 하니 화분을 두 개만 놓자고 하더니

            자기가 하나 둘 늘렸다.

            내가 싸워서 화분을 더 놓는 것보다 한 발 물러섰더니

            자기가 스스로 늘렸다.

            무슨 일이든 억지로 내 의사를 관철하는 것보다

            저절로 때가 오기를 기다리면 결국 다 이루어진다.


               게발선인장이 겨울이 되자 꽃봉오리를 키워가고 있다.

               좁쌀처럼 작던 꽃봉오리가 조금씩 굵어지고 있다.

               날마다 저 꽃봉오리를 지켜보는 것도 큰 기쁨이다.


        12월 3일에는 동그라미 계원들과 통도사로 놀러갔다.

        절밥도 얻어 먹고 자장암에도 들렀다.

        아내는 자장암에 몇 번 와보았는데도 언제나 경치가 좋다고 감탄했다.

        주차장에서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가 무심코 문을 열었는데

        조금 세게 열었던 모양이다. 옆차에 부딪쳤는지 아줌마가 급하게 뛰어나왔다.

        "차 문을 그렇게 세게 열면 어떡해요?"

        "죄송합니다. 살짝 열은 줄 알았는데......"

        "내가 없었으면 차를 찍어 놓고 그냥 달아날 사람이잖아."

        나를 죄인처럼 몰아세워서 조금 언짢았지만 고분고분 사과했다.

        "차에 상처가 나지는 않은 듯 하니 이해바랍니다.

         다음부터 조심하겠습니다."

        몇 번이나 머리를 조아렸더니 한참 흘겨보다가 돌아갔다.

        나보다 어린 사람이 소리를 지르며 야단을 쳐서

        잠시 불쾌한 마음이 들었지만 저런 사람이 있으니까

        나를 깨우쳐 준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좋은 쪽으로 생각해야 내 마음이 편하다.

       



     나무를 심는 계절이 돌아왔다.

     양산시 동면에 있는 한수목원에 나무를 사러 갔다.

     범초산장에 나무를 거의 다 심었지만,

     뽕나무가 너무 많아서 없애야 할 판이다.

     수종을 바꾸어 나갈 생각이다.

     게다가 뽕나무 이가 설쳐서 뽕나무가 죽어가니 베어내어야 한다.

     한수목원에 갔더니 주인 아주머니가 있었다.

     저번에 갔을 때는 며느리가 있어서 아무런 설명도 안 해주고

     값도 비싸게 받더니

     주인 아주머니는 역시 달랐다.


      알이 굵은 사과대추나무가 있다며 자랑을 엄청 했다.

      그 말 솜씨에 넘어가서 생각도 않은 대추나무를 한 그루 샀다.

      아주머니는 대추나무가 양반나무라며 거름을 너무 많이 주면 안 되고

      오줌도 주지 마라고 했다. 귀하게 대접하란다.

      나무가 흔들리지 않게 받침대를 만들어주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고,

      접목한 부분이 흙속에 묻히면 안 된다는 것도 설명해주었다.

      아주머니는 한 마디로 나무 박사였다.

      나도 나무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해박한 아주머니 말을 듣고 보니 나무에게 부끄러웠다.

      잘 모르면서 무조건 많이 심기만 했다.

      그러고도 나무를 사랑하고 잘 키운다고?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

      비파나무도 한 그루 사려고 했는데, 낙엽수는 겨울에 심어도 좋지만

      상록수는 봄에 심어야 뿌리를 잘 내린다는 것을 배웠다. 


      아주머니는 나무를 좋아해서 지금도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데

      수목원을 하다 보니 땅값이 올라서 200억 이상을 벌었는데도

      여전히 일하는 게 좋단다.

      나무 사러 온 사람들과 친척처럼 밥도 같이 먹는다고. 

      나도 밥 얻어 먹으러 와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다음에 꼭 들러달란다.

      나무를 포장해주는 것도 여느 사람과는 달랐다.

      뿌리 덩이만 묶는 게 아니라 차가 상하지 않도록 가지를 꼼꼼하게 묶어주었다.

      무엇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은 일하는 것도 달랐다.

      그 아주머니를 보고 나는 동화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뽕나무 두 그루를 베어 내고

                 그 자리에 대추나무 한 그루와 대봉 감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7만 원을 주고 사왔는데 적어도 4년생들이라 뿌리만 잘 내리면

                 곧 열매가 열릴 듯 하다.

                 나무야, 공부를 더 할 테니 잘 커다오!


         석산리에 있는 범초텃밭에서 수레국화 뿌리를 몇 포기 캐어와서

         범초산장에 심었다. 보라색 꽃이 피면 볼 만할 것이다.

         먹는 채소도 좋지만 꽃은 마음을 흡족하게 해준다.


          추운 겨울에도 마늘은 여전히 푸르다.

          얼어죽지 않고 파랗게 살아있는 저 기개가 부럽다.

          사람 역시 남에게 대하는 마음은 여리더라도

          자신을 향해서는 저렇게 올곧은 열정을 지니라고 계속 주문해야 하리라.


 

    지난 주에 보니 진이 오른쪽 다리가 굽어보였다.

     약간 절기도 했고...

     그 바람에 아내한테 잔소리를 들었다.

     "아직 어린 강아지를 높은 산으로 몇 시간씩 끌고 다니더니 절름발이를 만들어 놓았네.

     자기 좋다고 강아지를 그렇게 혹사시켜서 되겠어요?"

     "잘 따라 오던데......"

     "저것 봐요. 멀쩡한 개를 불구로 만들다니? 동물 병원에 데리고 가봐욧!"

     그래서 물파스를 뿌려주기도 하고 산에는 데리고 가지 않았다.

     이번 주에 가보니 다리가 많이 좋아졌다. 잘 뛰는 걸 보니 마음이 놓였다.

     당분간은 무리하게 걷도록 하지 말아야겠다. 더 크면 데리고 다녀야지.

     가벼운 산책만 시켰다.

     그래도 진이는 내 탓을 하지 않고 좋아라 했다.

     물파스 통을 장난감인양 물고 흔들었다. 아이고 미안해라!

    




     밀린 똥을 다 치워주고 여러 가지 장난감도 만들어 주었다.

     진이는 내가 몰고 나가기만 하면 똥을 누었다.

     나를 엄청 좋아한다.

     사람도 마찬가지지만 나를 좋아하는데 내가 무관심할 수가 없다.

     간식이랑 개껌이랑 꼭 챙겨 가서 준다.

     일부러 족발도 사 가서 주었다.

     사랑 받는 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고 주는 것을 받을 뿐이지만

     주는 사랑은 내가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 사랑하는 것이 행복하다.

   



         글나라 동화교실 해님반에 나오는 이분희씨가

         비룡소 황금도깨비상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게 되었다.

         지난 번에는 저학년 장편동화로 비룡소 문학상을 받았는데

         오래 동화 공부한 내공이 쌓였는지

         또 상을 받게 되었다.

         저학년 동화와 고학년 동화를 다 휩쓸었으니

         차세대 비룡소 대표작가 자리를 예약했다.

         앞으로 좋은 작품 열심히 써서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작가가 되기 바란다.

         해님반 회원들이 모두 기뻐하며 축하해주었다.

         다음 주 화요일에는 이영득씨가 새로 만든 그림책을 들고 찾아올 예정이라

         경사가 이어진다.

         한동안 화명동에 아무런 기쁜 일이 없어서 잠잠했는데

         그동안 묵묵히 내실을 다져온 보람이 있다.

         꾸준히 노력해서 안 될 일은 없다.


        요즘은 신춘문예 공모전 시즌이다.

        제자들이 좋은 작품을 쓰려고 안간 힘을 다하고 있다.

        이럴 때면 1976년, 1977년 무렵에 받은 엽서를 꺼내본다.

        내가 지금도 이런 엽서를 7장쯤 갖고 있다.

        하늘 나라로 간 최영희씨가 맥파 동인을 할 때 손수 그려서 보내준 것이다.

        문학에 대한 열정이 아니면 저토록 아기자기하게 그려보낼 수 있을까!

        요즘에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이 엽서를 보면서 초심을 다진다.

        제자들을 여럿 등단시켰다고 자만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공모전 당선작을 빠짐없이 읽어보고 요즘 신인들의 감각을 배운다.

        남을 잘 가르치려면 나도 부단히 공부하고 노력해야 한다.
 

        신인들에게 잘 지도한다는 말을 들으면 정말 기쁘다.

        이것이 바로 가르치는 기쁨이다.

        언젠가 이런 메일을 받은 적이 있다.

        신춘문예 공모전이라 문득 생각이 난다.


        <선생님, 초면에 정말 죄송스런 말씀이지만, 백화점 동화창작 강좌

         인원 수를 조금만 더 늘려주시면 안되실까요?
         책상은 없어도 됩니다. 의자에 앉아서 청강만 해도 좋습니다. 
         저는 그저 꿔다놓은 보릿자루라도 되어서라도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 밑에서 동화를 간절히 배우고 싶습니다.

         ...사실 저는 문학도였습니다.

         고등학교때부터 소설가를 꿈꿨고 대학도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였지요.
         소설 창작에 매달렸고, 신춘문예도 수도 없이 낙방하였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집안 형편 상 문학을 잡고 있기에는  너무 고단하더군요. 
         직업은 취재를 하고 글을 쓰는 기자생활을 했지만...늘 마음이 허했습니다.
         문학을 포기한 삶은 생활이 가능했지만,

         제 마음은 점점 공허해지고 지쳐가더군요.

         이후 결혼을 하고 첫아이를 낳았을 때,

         그 뜨거운 생명이 힘찬 울음을 터트릴 때 저는...

         삶에서 문학을 다시 보았습니다.
         제 아이가 꿈을 키우며 커가듯이 저도 다시 꿈을 꾸고 싶어졌지요. 
         그렇게 동화가 제게 왔습니다. 
         아이가 꿈을 바르게 밝게 키울 수 있도록 해주는 동화.
         저 자신도 부끄럽지 않은 어미, 어른이 될 수 있는 동화를 쓰고 싶습니다. 
         선생님 초면에 너무 많은 잡설을 늘어놓은 것 같아...부끄럽습니다. 
         너무 실례를 범한 것 같아... 죄송합니다. 선생님... 부디 건강하시고,

         언젠가 선생님 밑에서 꼭 동화를 배울 수 있기를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2014년 11월 2일 
                                                       미욱한 작가지망생 올림 >

        

         이처럼 간절한 편지를 받고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는가?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 글이었다.

         배우려는 사람이 다 찼어도 이런 사람은 꼭 받아주고 싶었다.

         절실히 필요한 사람과 조금 필요한 사람은 차원이 다르다.

         무슨 일이든 절실한 사람이 더 열심히 하는 법이다.

 

         <선생님.
         저는 제가 미생(未生)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딸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사회인으로서의 삶은 살지만

         정말 제 자신을 위한 삶은 아직 살아있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의 삶은 분명 편안하고 행복하지만 
         밤에 잠들 때마다 저는 한 번씩 질문해봅니다. 
         살아있느냐고. 너의 문학은? 
        그 질문을 십여 년 동안 해보았습니다.
        저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십여년 동안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아직 미생이니까요.
        그런데 오늘 저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막연하고 끝없이 불안하며 깊은 어둠 속을 헤매이는 이 대답을

        선생님께서 밝혀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또 감사합니다.  
        선생님께서 저를 알아봐주셔서 저의 동화로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께 더없는 감사와 존경을 보냅니다.
                                2014년 11월 30일 부족한 제자 은정 올림 >


        하루를 살아도 이런 편지를 받아서 행복했다.

        내 문학도 살아있는지 자문하면서 읽었다.

        그런데, 오늘 그런 느낌과 비슷한 편지를 받았다.  


        < 교수님을 만난게 저에게 이미 행운입니다..
           교수님 못만났으면
           저 글 아무것도 못썼을거에요..
           감사합니다~
           연락드릴게요~^^
           아 참, 그리고 교수님..
           건강하라는 인사는 왠지
           이제 연락안할 사람한테 하는 인사같아요..
           날씨가 많이 추워요..따뜻하게 입으세요~^^ >


            부산예술대학에 출강한 적이 있어서 나를 교수라고 부르는데

            (사실은 나는 전혀 교수 자격이 없다. 석사도 아니니까...)

            그때 다니던 학생이 요즘 인터넷으로 동화를 배우기 때문에

            신춘문예 응모작품을 한 번 읽어봐 달라고 보내왔다.

            읽어보니 당선권에 바짝 다가간 수작이었다.

            눈이 번쩍 떠져서 격려를 듬뿍 해주었다.


               <민신아 아주 잘 썼네!

             내가 손댈 것 없이 바로 보내면 되겠다.

             최종심에는 올라갈 것 같다.

             수고 많았다.

             혹시, 이거 안 되더라도

             넌 충분히 동화작가로 성장할 기량이 충분하니

             이제부터 자신감 갖고 써라.

             동화만 써서도 먹고 살 수 있겠다.

             건강과 행운을 빈다.>


             어렵게 살아가는 제자라 용기를 주고 싶었다.

             그 동화가 참 좋았다.

             이런 패기만만한 신인 작품을 보면 나도 정신이 바짝 든다.

             게으름 피우지 말고 더 열심히 써야지!

                                (*)













출처 : 글나라
글쓴이 : 凡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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