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스크랩] (범초산장 이야기 839회) 봄맞이 준비

凡草 2018. 2. 15. 21:31

    

     2018년, 2월 15일, 목요일, 맑음

 

    (범초산장 이야기 839회) 봄맞이 준비

         



      봄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

      범초산장 계곡에 얼었던 얼음이 거의 다 녹았다.

      위에서부터 한 주가 지날수록 달라진 모습이다.

      봄을 기다리며 나도 봄맞이 준비를 했다.


      글나라 동화교실 개강을 위해 엊그제부터 교재를 새롭게 만들었고,

      범초산장에는 새로 나무 두 그루를 심었다.

     


      이 나무는 튼실한 <수사해당화>다.

      '서부해당화'라고도 부르는데

      사실은 해당화하고는 상관이 없고 꽃사과와 비슷한 품종인데

      꽃이 풍성하게 피고 아주 곱다.

     

      이렇게 고운 꽃이 피기 때문에 봄이 오기 전에 사다 심었다.

      작년에 한 그루 어린 것을 심어 놓았지만 상태가 썩 좋지 않아서

      이번에는 몸통이 굵은 것을 2만 원 주고 사왔다.


      2월 13일에 양산에 있는 <한수목원>에 사러 갔더니

      주인 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분으로 가식해 놓은 것을 파내려니 땅 일부가 얼어서 잘 안 빠져 나왔다.

      "제가 조금 일찍 와서 고생을 시키네요."

      미안한 마음으로 말을 하자 주인 아주머니가 웃으면서 받았다.

      "손님마다 다 달라요. 더 일찍 오는 사람도 있고

      봄이 끝날 때 오는 사람도 있어요. 장사를 하려면 다 맞추어줘야지요."

      아주머니는 일 하는 동안에 달걀을 삶아서 같이 먹자며

      닭장으로 가더니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닭들이 낳은

      자연산 달걀을 꺼내와서 삶았다.


      그러고는 다시 나무를 캐기 시작했다.

      "내가 좀 도와드릴까요?"

      "괜찮습니다. 내가 하던 일이니 마저 할게요."

      수사해당화 바로 옆에 피라칸사가 있었는데

      가시가 있는 그걸 피해가며 괭이질을 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옛날부터 가시가 있는 나무는 울타리로 심으면 안 됩니다."

      "왜 그렇죠? 탱자나무도 울타리로 많이 심잖아요? 그래야 도둑도 막을 거고......"

      "남을 아프게 하면 나도 아플 일이 있어요. 탱자나무 심은 집이 잘 되는 거

       못 봤어요. 심술궂은 마음으로 심는 건데 뭐가 좋겠어요?"

       아하, 그렇게 깊은 뜻이 있다니!

       아주머니는 나무를 파는 게 아니라 나한테 올바른 마음까지 팔았다.

      

       수사해당화를 다 파내고 나서 삶은 달걀을 먹으러 갔다.

       커피와 함께 먹으니 꿀맛이었다.

       얻어 먹기가 미안해서 하나만 먹으려니 하나를 더 권해서

       두 개나 먹었다.

       아주머니는 이런 말도 들려주었다.

       "부추는 외상으로 먹으면 안 되는 거 아시죠?"

       "그게 무슨 말이지요?"

       "베어 먹고 나면 바로 거름을 뿌려주어야 잘 큽니다."

       "우리는 그냥 계속 잘라 먹기만 했는데요."

       "그러면 외상으로 먹는 거예요. 잘라 먹은 만큼 거름을 부어주어야

        외상값을 갚는 거죠."

        그런 말도 처음 들었지만 듣고 보니 이치에 맞았다.

        사람 관계도 그럴 것이다.

        남에게 신세지거나 얻어 먹기만 하면 남이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선생이랍시고 제자들에게 얻어 먹기만 한 적이 없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나는 2만 원을 아주머니에게 주면서,

        "달걀 2개 값입니다."

        하고 말했더니 아주머니가 웃었다. 


           한수목원에서 나오다가 <백두산 민들레>를 보았다.

           처음 보는 민들레인데 잎에 작은 가시가 있고 솜털이 돋아났다.

           백두산에서 자라는 민들레라고 했다.

           신기해서 두 포기에 5천 원을 주고 사 와서 심었다.          

           봄에 살아나면 참 기쁠 것이다.

           5천 원 가치가 아니라 5만 원, 아니 50만 원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본다.

      

          오늘은 설날 연휴 첫날이라 쉬는 날이다.

          25일에 아내와 김천 황악산으로 눈구경을 하러 가려고 

          물금역에 가서 기차표를 예매했다.

      

          며칠 전에 운문사 지룡산에 가서 싸락눈 구경을 했는데

          겨울이 가기 전에 눈구경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물금역에서 나오다가 길가에서 나무 파는 것을 보았다.

          문득 비파 나무가 눈에 띄었다.

          약성이 좋은 나무라 한 그루 더 심고 싶었다. 

          얼마냐고 물었더니 깎아주겠다며 2만 5천 원에 가져가란다.

          차 없이 가야 하니까 들어보니 들을 만 했다.

          자전거 바구니에 싣고 증산역까지 갔다.

          거기서 다시 지하철을 타고 범초산장으로 향했다.


  

           여태 나무를 하도 많이 심어서 더 심을 자리가 없었지만

           철쭉을 두 그루 뽑아내고 그 자리에 심었다.

           나는 독성이 있는 철쭉보다 사람에게 이로운 나무들을 더 좋아한다.

           

           오늘 심은 비파는 3-4년생이라 뿌리만 내리면 잘 클 것 같다.

           나무를 심고 물을 준 다음에 지지대를 박고 묶어 주었다.

           끈으로 묶어주지 않으면 뿌리가 흔들려서 살기 어렵다.

           나무를 심는데 돈이 좀 들어갔지만 아주 바람직한 투자다.

           한 번만 심어놓으면 두고 두고 효자 노릇을 한다.

           비파나무를 들고 오느라 힘이 좀 들었지만 봄맞이 준비를 잘 했다.


          점심은 봄나물을 뜯어서 라면을 끓여 먹었다.

          아직 더 있어야 나물이 나오지만 시험삼아 뜯어보았다.

          가지 치기를 하고 있는데 제자가 찾아왔다.

          잠시 쉬면서 차를 마셨다.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그동안 추워서 다 하지 못한 가지치기를 마저 했다.

           날이 풀리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

          

            겨우내 얼었던 상추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

            올 겨울은 유난히 추웠지만 그래도 죽지는 않았다.

            빨갛게 얼었지만 약하게 숨을 쉬고 있다.

            사람도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버틸 줄 알아야 하고

            도전하는 마음을 지니고 살아야 한다.


               매화나무 가지를 치고 나서 남은 가지를 집으로 들고 왔다.

               물병에 꽂아 놓으면 매화가 피어난다.

               병 속에서 매화가 피는 것을 지켜보면서 봄을 기다릴 것이다.


               요즘 <사슴왕 하커>를 읽고 있는데 아주 흥미진진하다.


               수컷 늑대가 암컷이 새끼를 낳고 죽자 암컷 산양을 납치해온다.

               산양은 버티다가 협박을 하자 어쩔 수 없이 늑대 새끼에게 젖을 먹인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자기 새끼가 죽은 뒤에 젖이 불어 있다가

               늑대 새끼가 젖을 빨자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모성애를 느끼게 된다.

               그 뒤에 늑대 새끼를 키워주고 운이 좋아서 늑대 소굴을 빠져 나오는데

               몇 년 뒤에 산양은 늑대를 만나 죽을 고비에 이른다.

               산양은 죽을 줄 알고 벌벌 떠는데 이상하게도 늑대가 잡아먹지 않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바로 그 늑대가 바로 젖을 물려 키워준 늑대 새끼였다.

               비록 잔인한 늑대지만 젖을 얻어 먹고 큰 은혜를 잊지 않은 것이다.


                '죄를 지은 말' 이야기는 더 극적이다.

                서커스단에서 묘기를 부리는 영리한 말이 관객들에게 장기를 선보이다가

                뱀을 보자 놀라서 날뛰는 바람에 주인이 떨어져서 죽고 만다.

                그 뒤로 말은 먹이를 먹지 않고 슬픔에 잠겨 있다가

                우여곡절 끝에 다시 먹이를 먹고 기력을 회복하지만

                끝내는 서커스단을 탈출하여 주인 무덤이 있는 곳으로 간다는 줄거리다.

                말이 그렇게 영리하고 주인을 잘 따르는지 몰랐다.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손에서 놓기가 아쉬울 정도로 재미있었다.

  

                이 책에서는 말한다.

                사람이 동물을 정성을 다해 돌봐주고 정을 주면

                적금을 넣은 것처럼 이자까지 붙여서 주인에게 보답한다고.

                굳이 보답을 받지 않더라도 키우면서 즐거우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오늘도 진이와 나들이 하는 동안 행복했다.

                아내는 내가 틈만 나면 진이를 보러 가니까 진이가 좋겠다고 했다.

                사람도 진이처럼 순수하고 정을 많이 준다면 왜 좋아하지 않겠는가? (*)                


               2018년 2월 9일 (금요일) 부산일보에 발표한 글

                    

                게임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소년 의병과 비녀 꽂은 할머니 장군> 우리아 / 한마당


              한솔이는 컴퓨터 게임을 엄청 좋아한다.

              아빠 엄마가 일본 여행을 떠나자 게임을 실컷 하려고 벼른다.

              하지만 할머니가 오면서부터 일이 꼬인다.

              한솔이 할머니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할머니가 아니다.

              호기심이 많고 컴퓨터에도 큰 관심을 보인다.

              한솔이는 할머니 때문에 게임을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된다.

              할머니가 한솔이를 밀어내고 게임에 푹 빠졌기 때문이다.

              보통 할머니라면 게임을 좋아하지 않겠지만

              이 책에 나오는 할머니는 아이들보다도 더 게임을 좋아한다.

              그래서 더욱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되었다.

              한솔이는 컴퓨터를 빼앗겨서 화가 났지만

              백마를 타고 판타지 여행을 떠나면서부터 할머니와 같은 편이 된다.

 

              이 책에서는 홍의 장군 곽재우를 등장시키면서도

              역사를 단순히 늘어놓기만 하지 않고 재미있는 게임으로 풀어내었기 때문에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이야기가 되었다.

              문학성도 필요하고 교육적인 효과도 중요하지만

              우선 재미가 있어야 아이들이 책을 읽지 않겠는가!

              그림도 내용과 잘 어울리고 한 번 책을 펼치기만 하면

              술술 넘어가기 때문에 저학년 아이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게임에 중독되는 것을 염려한다.

              그래서 게임을 나쁘게 보지만 직접 체험해 보고

              스스로 단점을 깨닫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한솔이는 게임을 실컷 해보고 나서 알게 된다.

              게임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나라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을.

              한솔이 스스로 비현실적인 세계의 한계를 깨닫고

              게임을 삭제하는 결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김재원 (동화작가)


































출처 : 글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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