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

[스크랩] (범초산장 이야기 914회) 지금은 빈 가지뿐이라도......

凡草 2018. 12. 31. 22:14



  2018, 1231, 월요일, 맑음

 

  (범초산장 이야기 914회) 지금은 빈 가지뿐이라도......

 

오늘이 2018년 마지막 날이다.

한 해가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잘한 일도 있고 잘못한 일도 있지만

지나간 날을 되돌아보며 후회하고 싶지는 않다.

잘한 일은 기억하면서

다가오는 2019년에도 열정적으로 살아가리라 다짐한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일본 작가 모리 마리가 쓴 <장미와 홍차의 나날들>을 보면

행복하고 아름다운 세계는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리 마리는 부자로 화려하게 살다가 쫄딱 망해서 초라한 생활을 하게 된다.

보통 사람이라면 쪼그라든 현실을 비관하며 좌절하겠지만

모리 마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작은 행복을 누리려고 애쓴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최소한의 경비로 맛있는 것을 사다 먹고,

홍차 한 잔의 여유와 장미 한 송이의 사치를 즐긴다.

이런 행복은 결코 큰돈이 들지 않는다.

거창한 행복을 꿈꾸는 대신 조금만 애쓰면 맛볼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을 누린다.

    

 

사금(砂金) 하나하나는 지극히 미미하지만 손바닥 가득 모으면

무엇보다 찬란하게 반짝인다.

자기 분수에 맞지 않게 커다란 금덩어리를 손에 쥐지 못하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행복을 맛 볼 수 없다.

작은 것에 만족하는 사람은 언제나 유쾌하다.


하루하루 작은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

큰 행복을 위해 고달프게 사는 사람보다 훨씬 낫다.

 

며칠 전에는 친구들과 송년회를 했다.

장소는 증산역에서 가까운 <공린미방>이었다.

중식당 이름이 특이한데 풀이하자면,

<이웃을 공경하는 아름다운 식당>이라는 뜻이다.





코스 요리가 차례로 나왔는데 배가 불러서 다 먹지 못했다.

나는 양껏 먹지 않고 배를 적당히 채우면서 눈요기만 했다.

짓궂은 친구 하나가 나보고,

"김원장, 니만 건강하게 오래 살려고 발버둥치지 말고

 같이 죽자. 어서 묵으라!"

하며 자꾸 권했지만, 끝내 먹지 않았다.

 

내가 생각해도 좀 우직하지만 스스로 정해 놓은 테두리는 지키려고 노력한다.

맛있는 것이 있다고 배가 터지게 먹는 것은 어리석다.

늘 건강하게 살려면 식탐을 제일 경계해야 한다.




부산 최저 기온이 영하 6도 정도로 떨어진 날

범초산장에 가서 페릿 난로를 피웠다.

불 피우기도 아주 쉽고,

연기가 나지 않아서 참 편리했다.


난로를 살 때 돈은 제법 들었지만 건강을 생각하면

참 잘 했다.

다른 데 아껴 써야지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돈을 아끼면 안 된다.

 

범초산장 계곡물은 강추위에도 아직은 얼지 않았다.

물을 떠와서 쓰기에 편했다.



아우라지 농원에서 산 동강할미꽃 모종 6포기를

산장에 가서 심었다.

한 군데 다 심지 않고 몇 곳에 나누어 심었다.

그래야 한꺼번에 다 잃어버리거나 죽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여름에는 기세등등하게 가시를 세우고 자라던 천년초가

겨울이 되니 축 늘어져 있다.

저래도 죽은 것은 아니다.

잠시 힘을 빼고 쉬는 중이다.

봄이 되면 다시 살아나 힘차게 하늘로 솟아오를 것이다.

천년초가 살아날 때 나도 함께 기운을 낼 것이다.

 

한겨울에도 파란 싹이 살아있다.

대파와 양파, 마늘은 추위를 모른다.

나도 그들을 보며 용기를 낸다.

춥다고 웅크리고 있으면 안 되지.




지나간 주일에는 월요일에 등산, 화요일에는 트레킹,

금요일에 자전거를 탔다.

그래도 많이 피곤하지는 않았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말고는 가만히 앉아 있지 않고

가급적 걷거나 자전거를 타려고 한다.

몸은 단련하고 쓰기 나름이니까.......

 

산장에 가면 틈나는 대로 가지 치기를 하고 있다.

뽕나무와 매화나무를 보기좋게 잘라주었다.

내 키 높이에 맞추어 가지를 낮게 관리하고 있다.

 

한겨울이라 골담초도 가지만 남아 있다.

지금은 저렇게 메마른 가지뿐이라도

죽은 것은 아니다.

비어 있어야 더 많은 것을 쥘 수 있다.

없다고 한탄할 필요 없다.

언젠가는 가득 쥐게 될 것이다.


없는 것을 볼 줄 아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다.

지금 있는 것만 보면 안 된다.

지금은 없더라도 언젠가 가득 하게 될 날을 그리면 행복해질 수 있다.


봄이 되면 파란 잎이 나와서 버선 모양의 꽃이 필 것이다.

작년보다는 더 많은 꽃이 피겠지.

그러라고 깻묵을 듬뿍 뿌려 놓았다.

봄을 그릴 수 있으니 겨울이 삭막하지는 않다.

만약에 봄이 없다면 겨울은 정말 칙칙할 텐데......



우리 아파트 거실에 게발 선인장이 꽃을 피웠다.

해마다 크리스마스 무렵부터 피기 시작한다.

다른 식물은 다 숨을 죽이고 있는데

유독 게발 선인장만 꽃을 피우니 시선을 독점한다.

저것도 차별화 전략이다.

남과 똑같이 하면 대우 받기 어렵다.

 

구본석씨가 쓴 <수영성 소년 장이>를 읽었다.

최근에 읽은 책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들었다.

임진왜란 무렵에 수영성에 살던 장이라는 아이를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펼쳐 나갔는데

장면 묘사가 뛰어나고 스토리도 재미있었다.

 

장이 아버지가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말한다.


<여러분! 우리 좌수영성이 왜군 손아귀에 있는 게 너무 원통합니다.

성을 쌓은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더구나 한 번 싸워 보지도 못한 채

적에게 고스란히 성을 내주고 말았습니다. 성을 쌓는다고 고생한

동래부 사람들에게 고개도 못 들만큼 부끄러운 일입니다.

우리가 이대로 당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장이도 아버지를 본받아 왜군들을 괴롭히는 의병 노릇을 한다.

그러다가 그만 일본 사람에게 붙잡혀 일본 땅으로 끌려가서

종 노릇을 한다.


<장이는 낯선 곳에서 종일 힘들게 일하는 자신의 처지가 서럽고 억울했다.

틈날 때마다 장이는 부둣가에 우두커니 앉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저 바다 끝이 고향 땅일 텐데…….’ >

 

장이는 일본 땅에서 노예처럼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잡혀오는 것을 보게 된다.


< ‘싸우다가도 죽고, 굶어 죽기도 하고, 얼어죽기도 하고,

전쟁이란 정말 끔찍해.‘

장이는 하루라도 빨리 전쟁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조선 사람이든, 왜나라 사람이든 전쟁 때문에 고통 받는 건 싫었다.>


  어느 시대나 전쟁은 비참하다. 전쟁이 없어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연말이 되고 새해를 맞으면서

많은 카톡과 문자를 받았다.

그 중에 인상적인 그림을 몇 가지 소개한다.


한 해 동안 범초산장 이야기를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특히 읽고만 지나가지 않고 댓글을 달아준 분들이 더 고마웠다.

새해에도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한다.

< 저는 동짓날 *죽에 가서 팥죽 사다

퇴근한 우리집 양서방이랑 나눠 먹으며

누구 팥죽에 옹심이가 더 많은지

치사한 옹심이 세어 보기도 하며 먹었고

이러구러 또 한 해가 갑니다.

범초님이 소개 해주시는 영화도 찾아보며

범초산장의 소박한 소식도 가끔씩 삭막한 도심의 생활에

생생한 산장체험이었고 좋았습니다.

새해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범초산장 소식을 기대하며

새해 산장의 바쁘신 가운데서도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 유랑>

 

< 먹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마음에 새겨야 할 귀한 글귀입니다.^^

따님 내외분이 너무 닮으셨어요. 부부는 닮아간다더니 정말 그런가 봐요.

유미희 선생님의 동시 잘 읽었습니다. 참 좋네요.

범초산장....늦게 만났지만 훈훈한 쉼터가 되어 주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 상상>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고, 내 덕행으로는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

요즈음은 손님이 오면 집에서 해 줄게 없어요.

워낙 식당에서 맛난 것만 먹으니 왠만큼 잘하지 않으면 내 놓기 부끄럽고요.

좀 전에 TV에서 못 먹어 뼈만 앙상한 아이가 나왔는데,

그걸 보면서 범초산장 글을 읽으니 부끄러웠어요.

새해 건강하세요.^^  - 수지>

 

<12월의 글나라 풍경 잘 보았습니다.

글동무들이 처음 글나라 문을 열 땐

문학에 대한 관심이었을 거예요.

그러나 얻게 되는 게 참 많습니다.

만남으로 인해 삭막하던 내면이 따뜻해지고

몽글몽글 사랑의 샘이 차오르는 걸 알게 될 겁니다.

배움의 미덕이 그런 게 아닌지.

물이 차오르면 자연스럽게 흘러넘친다는 진리를

이 글에서 배웁니다.  -들장미 >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고 이처럼 댓글을 달아주는 것도 보시다.

자기 글에 관심 가져주기만을 바라지 말고

남의 글에 더 많은 관심과 응원을 해주자.

남을 기쁘게 해주면 나도 행복해진다.

그게 행복할 수 있는 단순한 원리다.

 

새해에도 순간순간 작은 행복을 누리며

건강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아갈 것이다. (*)

 


출처 : 글나라
글쓴이 : 凡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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