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86편 *** 돌복숭아의 진짜 주인

凡草 2005. 6. 3. 09:56

  ( 2005년  5월 21일  구름 )
        돌복숭아의 진짜 주인
                                                    凡草  김재원
 5월에는 여러 가지 행사가 많아서 산마루에 가기가 힘들었다. 22일은 이주홍 
문학 기행을 따라가야 하고 29일은 큰형님 생신이라 큰집에 가야만 했다. 
큰형님은 아버지처럼 나를 고등학생 때부터 키워주신 분이다. 
나하고 11살 차이인데 이젠 많이 늙으셨다. 
자주 찾아뵙지는 못하지만 제사나 생신 때는 꼭 찾아가서 뵙고 인사드린다.
 이렇게 여러 가지 일로 산마루에 갈 수가 없어서 오늘 일부러 시간을 내었다. 
 산마루는 완전히 초록 동산이었다. 
풀들이 제법 많이 자라서 앞마당이 잔디밭처럼 변해있었다. 마당의 잔디를 
베어내고 나서 비닐 봉지를 들고 감태나무 잎을 따러 갔다. 
 
감태나무는 겨울에 달고 있던 누런 잎을 다 떨어내 버리고 어느덧 새 잎을 
가득 달고 깃발처럼 나부끼고 있었다. 감태나무 잎은 긴 타원형 모양인데 
다른 나뭇잎보다 더 빳빳하고 뒷면이 하얀색으로 보인다. 
 그리고 새 잎이 돋아날 무렵에는 잎눈 자리가 빨갛게 보이는데 잎이 
돋아난 뒤에도 자세히 보면 빨간 빛깔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겨울에는 확실히 알아볼 수 있던 감태나무를 봄이 되니 또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새 잎이 돋아날 때는 비슷한 나무들이 많아서 구별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관심을 갖고 자꾸 들여다보니 이젠 확실하게 알 수가 있었다. 
아무리 닮은 나무가 있어도 감태나무는 감태나무만의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었다.
 나무든 무엇이든 그것과 친해지는 가장 빠른 지름길은 관심과 애정이다. 
그 나무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으면 눈여겨 볼 것이고, 애정을 갖고 있다면 
다른 나무보다 더 자주 들여다 볼 것이다. 자주 만나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무리 특징이 없는 나무라도 그 특징이 두드러져 보일 것이고 다른 나무가 
갖고 있지 못한 장점을 찾아내게 될 것이다.
 
감태나무 잎을 따서 깨끗이 씻은 다음에 주전자에 넣고 끓였더니 녹차처럼 
잘 우러나왔다. 감태나무 잎을 끓인 물은 다른 물과 달리 약간 찰기가 있고 
특유의 향기가 있었다. 이 감태나무 차는 부작용이 전혀 없으면서도 혈액 
순환에 좋고 감기 예방과 건강 유지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하니 자주 마실 
생각이다.
 그 다음에는 돌복숭아를 따러 갔다.
 산마루 바로 옆에는 복숭아 농장이 있는데 주인이 벌써 몇 년째 묵혀 놓아서 
이젠 농장이 아니라 칡덩굴 천지가 되어 버렸다. 처음에는 내가 있는 
산마루까지 사겠다며 팔으라고 했고, 포크레인을 동원하여 온 산을 다 
개발할듯이 요란을 떨더니 몇 년 전부터 통 오지도 않고 소식조차 없다. 
그 산의 평수는 산마루보다 두 배는 넘을 것 같은데 이젠 과수원의 모습이 
온데 간데 없어져 버렸다. 주인이 심어 놓은 복숭아 나무들은 잡초 속에 
파묻혀서 아무 쓸모없이 되어버렸고 돌복숭아 나무로 변해 간신히 살아남아 
있을 뿐이다.
 
나는 폐허가 된 그 농장을 바라보면서 사람의 무관심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았다. 날마다 찾아와서 관심을 갖고 보살펴 주면 농장이 반들반들 빛날 
텐데 저렇게 내평개쳐두니 잡초더미밖에 안 되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자신의 내면 속에 숨어 있는 재능을 찾아내어 
부지런히 갈고 닦으면 큰 결실을 거둘 수가 있지만 무관심하게 내버려두면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채 평범한 사람으로 일생을 마치게 될 것이다.
 
돌복숭아 나무가 꽤 높아서 복숭아를 따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사다리를 걸쳐 놓고 올라가서 땄다. 사다리를 걸쳐 놓아도 아주 높은 
곳은 따기가 힘들고 손이 닿는 곳만 땄다. 올해는 저온 현상이 이어져서 그런지
복숭아 알이 작년보다 작았다. 아마 술을 담아도 작년처럼 잘 우러나올 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복숭아를 딸 수 있는 때가 일 년에 딱 한 번이니 이 
기회를 놓치기가 아까워서 작아도 따기로 했다. 높은 나뭇가지는 내가 
철봉하듯이 매달려서 휘어 늘어뜨린 다음에 열매를 땄다. 
아내와 둘이 한참 땄더니 반 자루 정도는 되었다. 
 복숭아를 다 따고 와서 잠시 쉬고 있는데 아내가 팔을 벅벅 긁으며 
가렵다고 했다.
 “뭐한테 물렸나 봐요. 어머, 이렇게 부었네!”
 아내의 팔을 보니 산모기한테 물린 것처럼 여기 저기가 볼록볼록 솟아났다. 
그러고 보니 나도 목과 팔목이 가려웠다. 으이그 가려워!
 우리는 복숭아 알레르기가 없기 때문에 그건 아닐 것이고, 혹시 풀쐐기나 
벌레한테 쏘인 것일까? 아내는 풀독이 오른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작년에도 
환삼덩굴에 긁혀 고생한 적이 있는데 아내는 피부가 튼튼해서 아무 일이 없더니 
올해는 나보다 더 심하게 벌게졌다.  
 아내는 산마루에 다녀온 뒤 사흘이상 가려워서 고생했는데 그래도 병원에는 
가지 않고 겨우 가라앉았다. 나도 목과 팔 여기저기에 좁쌀 같은 것이 톡톡 
돋아났는데 벌레 물린 데 바르는 물약을 이틀 정도 바르니 괜찮아졌다.
 아내는 다음에는 돌복숭아를 따기가 겁이 난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복숭아 나무가 애써 만들어 놓은 그 소중한 열매를 거저 
따오는데 그만한 댓가는 지불해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그 농장의 진짜 주인은 
풀벌레들인지도 모른다. 주인은 있다고 해도 건성으로 어쩌다 찾아올 따름이고 
진짜 주인은 숲속에서 매일 숨쉬고 살아가는 벌레들일 것이다. 
그러니 돌복숭아를 따려면 그 벌레들한테 약간의 꾸중이나 시샘을 듣는 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사람들은 벌레나 병균을 없애기 위해 독한 농약을 마구 쳐대지만 자연의 주인을
마구 해치다가는 도리어 큰 벌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자연 속에서 단지 
손님일 뿐이다. 손님은 손님답게 조용히 왔다가 말없이 돌아가야 한다. 
손님이 주인을 내쫓고 주인 행세를 하려 한다면 주인이 가만히 있겠는가?
 나는 팔과 목에 생긴 가벼운 피부병을 자연의 주인이 내려준 벌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 벌을 달게 받는다면 차차 면역이 되어서 나도 자연과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돌복숭아를 딴 뒤에 우리 밭으로 가서 매실 열매를 땄다. 작년에는 첫 
수확으로 20개 정도 땄는데 올해는 그보다 훨씬 더 많았다. 개수를 일일이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100개는 충분히 넘을 것 같았다. 그래봐야 반 되도 
안 되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점점 많은 열매가 열리는 것은 틀림없었다. 
양이 적어서 아직 풍족한 수확은 아니지만 수확이 늘어가고 있어서 반가웠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든지 노루 꼬리만큼이라도 늘어가고 있다면 
희망적인 것이다. 
 매실은 땅콩처럼 작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좀 아깝긴 했지만 오늘 안 따고
놓아두면 누가 따갈 것 같아서 이왕 온 김에 서둘러 땄다. 양은 얼마되지 
않았지만 작은 구슬처럼 동글동글한 매실 알맹이들이 보석처럼 참 귀여웠다.
     (*)
    <산마루에서 본  들꽃들 모음>
    = 잔개자리 =
 

     = 후박 나무 =

   == 이팝 나무 꽃 ==

     == 이건  우포늪에서 본 건데 '닥나무'입니다 ==
   

    == 백 선 === ( 요즘 어느 산에나 많이 피었습니다)

    == 고들빼기 ==

     == 골무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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