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창작

[스크랩] 〔김문홍의 아동문학 통신 75/ 작품 평〕현실의 반영에 대한 세 가지 시각 - 김상남, 소민호, 서하원의 단편 아동소설

凡草 2005. 9. 8. 23:13
〔김문홍의 아동문학 통신 75/ 작품 평〕


현실의 반영에 대한 세 가지 시각
- 김상남, 소민호, 서하원의 단편 아동소설




아동소설의 특질과 형상화 요건
아동소설(소년소설)은 동화보다 현실 사회의 아동의 모습을 주로 그리고 있는 아동문학의 한 장르이다. 동화가 공상적, 상징적이라면 아동소설은 보다 현실 생활과 구상적인 데에 바탕을 두고 작품 세계가 전개된다. 동화나 소설 모두 산문으로 서술되고 있으나 동화는 산문시적이며, 아동소설은 철저한 산문정신으로 창작된다. 아동소설은 동화의 판타지나 시적인 표현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사회 구조의 복잡성과 또 현실 생활의 반영인 소설을 즐기는 나이의 초등학교 고학년들에게 주어져야 할 문학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의 형상화 요건에 있어서도 동화와는 다른 그 자체의 독창적인 창작 요건을 필요로 하고 있다. 아동소설은 동화와는 달리 철저한 리얼리즘 정신 위에서 창작되어야 한다. 이는 창작 방법에 있어서의 리얼리티를 가져야 한다는 의미 이외에도, 사회를 보는 작가의 시각 자체가 동화와는 변별성을 띠고 있어야 한다. 아동의 일상생활 속에 나타나 있는 모든 현상을 동화적인 관념이니 몽상으로서가 아니라, 과학적이고 역사적인 통찰로서 이해하고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단편 아동소설의 창작 요건에 대해서 석용원은 그의 저서『아동문학원론』(1989)에서 단일 구성의 원칙, 낭만적 색체, 주제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단일 구성의 원칙이란 단편 아동소설은 압축된 아동 생활의 단면도이기 때문에 사건 하나를 통해서 아동의 세계를 그려 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낭만적 색체란 단편 아동소설은 장편에 비해 단일 구성이기 때문에 압축과 강조를 통하여 주관성을 곁들이고, 주관성은 본질상 서정시에 가깝기 때문에 장편에 비해 낭만적 색체가 짙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단편 아동소설은 주제가 분명하기 않거나 유치하거나 범속하면 아무리 스토리가 좋고 구성이 잘 되어도 문학 작품으로서의 생명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또한
단편 아동소설은 문체의 정밀과 간결에 묘미가 있어야 한다. 아동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평이하고 짧은 문장으로 써야 한다. 아동소설의 문장은 서술과 묘사, 그리고 대화로 이루어지는데, 지루한 묘사보다는 사건의 전개에 박차를 가하는 리듬과 템포가 있는 서술의 문장을 잘 활용해야 한다.
부산의 동화작가 가운데 김상남, 소민호, 서하원은 판타지를 다룬 동화보다는 현실의 리얼리티를 다룬 아동소설을 잘 쓰고 있는 작가들이며, 이들의 작가적 능력 역시 동화보다는 아동소설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이들의 단편 아동소설 중에서 김상남의「진주 캐는 아이들」(문학도시, 2005년 가을호), 소민호의「다리 위에 선 아버지」(문학도시, 2005년 가을호), 서하원의「영수증」(계간 어린이 글수레, 2005년 가을호)을 텍스트로 하여, 아동소설의 특질을 살펴보도록 한다. 이는 이들이 ‘지금 이곳’의 현실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탐색이기도 하기에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아동소설의 전형을 보여주는「진주 캐는 아이들」
요즈음 ‘소로마’라는 필명을 쓰기도 하는 김상남은 1960년대 후반에 문광부 주최의 장편아동소설 모집에서「꽃 댕기」라는 작품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으며, 1977년에는 조선일보 신춘문예에「출토기」라는 단편소설이 당선되기도 했다. 그 이후에『봄에 걸린 고뿔』이라는 첫 동화집과 장편 아동소설을 한 권 상재하기도 했으나, 1990년대 이후에는 이렇다 할만한 작품을 내놓지 않고 침묵을 지키고 있어, 그의 탁월한 작가적 능력을 인정하며 믿고 있는 동료, 후배 작가들은 그의 침묵을 무척 안타까워하고 있다. 지난 해 격월간『어린이문예』에 발표한「외톨이는 없다」와 이번에 발표한「진주 캐는 아이들」은 현실의 리얼리티를 취급하는 소재나 주제, 그리고 문체에 있어서 아동소설의 한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 보트들은 모래밭에 발랑발랑 엎어져 있다. 9월의 자글자글한 햇살이 보트에 붙은 모래알을 튀긴다.
물새 한 마리가 이 물에서 쉬고 있다가 인기척에 자리를 뜬다. 바다 쪽으로 포롱포롱 난다. 또 한 마리의 물새도 포물선을 그으며, 그 뒤를 쫓는다.
나의 손을 빠져 나간 조약돌이다. 나는 다시 주머니에 손을 찌른다. 또 하나의 조약돌이 손끝에 닿는다. 이틀 전에 주운 물결무늬가 새겨진 조약돌이다. 하도 자주 만져서 꺼내지 않아도 안다. 마저 팔매질을 해버릴까......그만 둔다. 왠지 이 조약돌만은 오래 지니고 싶다. 이것마저 던져 버리면 내 호주머니는 텅 비어 버리는 것이다. (p. 155.)
■ 완이의 손바닥에는 황새조가비 하나가 얹혀 있다. 석양을 받아 오색이 영롱하다. 아까 보물을 얻었다고 자랑하던 게 분명하다. 희경이는 그 물체를 받아 제 뺨에다 대고 한없이 문질러 대는 것이었다. 아침 절에 만난 물새가 머리 위로 포롱포롱 나른다. 나는 주머니에 감추고 있는 조약돌이 생각났다. 완이의 빈손에 쥐어 주었다. (p.162.)

위의 인용문 중의 ■은 작품의 모두(冒頭) 부분이고, ■는 작품의 결미(結尾) 부분이다. 모두 부분 중에서 ‘보트들은~그 뒤를 쫓는다.’까지는 묘사이고, ‘나의 손을~텅 비어 버리는 것이다.’까지는 서술이다. 우선 인용문만 보더라도 이 작가의 문체적 특성을 금방 알 수 있다. 평이하고 간결하면서도 리듬감이 느껴지고 있다. 서술종결형 어미를 현재형이나 현재진행형으로 사용하여 인물의 심리의 추이 과정과 시간의 변화를 리드미컬하게 전환시키고 있다. 또한 ‘발랑발랑’, ‘자글자글한’, ‘포롱포롱’ 등의 감각적이고 시청각적인의태어를 적절하게 사용하여 장면의 상황이나 분위기를 적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결미 부분의 서술과 묘사는 지금까지의 사건을 압축하고 희경이와 용이(나), 그리고 동생 완이와 형인 용이의 갈등을 해소하고 있는데, “희경이는 그 물체를 받아 제 뺨에다 대고 한없이 문질러 대는 것이었다.”라는 서술이 상징하는 것과 같이, 이들의 갈등 해소는 곧 없는 자로서의 용이 형제의 아버지와 있는 자로서의 희경이의 아버지의 상대적 빈곤감의 갈등까지도 해소시켜 주고 있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의미의 비약이 크다는 단점은 있으나, 이 작품의 문장은 평이하고 간결하면서 리듬감이 느껴져야 하고, 문체를 통한 상황과 분위기의 암시와 인물의 심리적 추이 과정까지 암시해야 한다는 아동소설의 문체적 특성의 한 전범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의 주제를 통한 작가의 현실의식 또한 만만치가 않다. 두 형제의 아버지가 수위로 근무하는 회사의 회장 외동딸 희경이가 부산의 해수욕장에 내려 왔다가 셍일 선물로 받은 머리핀을 잃어 버렸다. 그런데 회사의 전무는 희경이와 함께 놀았던 두 형제를 의심하며 머리핀을 찾아내라고 윽박지른다. 두 형제는 아버지가 만들어준 체로 해수욕장을 이 잡듯이 뒤지지만, 결국은 희경이가 호텔에서 잊어 버렸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면서 희경이와 두 형제의 갈등은 해소된다. 자본의 주체로서의 있는 자와 소외되고 가난한 자의 갈등 구조가 어린이 세계에까지 그 어두운 그늘을 드리우게 되지만, 작가는 갈등의 매개체가 엉뚱한 곳에서 발견된다는 서사 구조의 변용을 통해서 어두운 윤리의식을 극복하고 있다. 작가는 있는 자와 없는 자의 대립과 갈등 구조의 상황을 서사 구조를 통해 첨예하게 제시하고는 있지만, 성인 세계의 대립과 갈등의 논리가 어린이들의 세계에까지는 파급되어서는 안 된다는 건강한 현실의식으로 작품을 마무리하고 있다. 여하튼 이 작품은 간결하면서도 평이한 문체, 작가의 현실인식을 통한 주제의식의 구현, 단일 구성의 압축과 강조를 통한 낭만적 색체의 견지라는 단편 아동소설의 전형성을 제시하고 있다. 아동소설을 쓰고자 하는 초보 작가들에게는 아주 좋은 창작의 텍스트가 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이라고 해도 결코 과언은 아닐 것이다.

현실적 리얼리티의 우화적 상징인「다리 위에 선 아버지」
소민호의「다리 위에 선 아버지」는 실직과 자본주의의 허상을 쫓는 서민들의 부질없는 환상, 물질 우선과 황금만능의 천박한 자본주의의 왜곡된 실체, 그리고 직장은 물론 가정에서조차 가장으로서의 설 자리를 잃고 방황하는 고개 숙인 아버지들의 실태라는 ‘지금 이곳’의 현실적 리얼리티를 우화적 상징으로 제시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회사에서 받은 퇴직금과 은행에서 대출한 돈으로 주식에 투자했다가 낭패를 당한 별이 아버지의 고초와 현실적 갈등과 좌절을 다룬 작품이다. 별이 아버지는 사회에서의 소외와 냉대를 가정의 안락함으로 치유하려고 하지만, 별이 어머니는 ‘돈이 곧 가장의 권위’라는 현실적 욕망으로 아버지를 가정에서 내치게 된다. 아버지는 이 모든 슬픔과 소외를 죽음이라는 극한적 수단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결국 아버지는 광안 대교 난간 위에서 투신하려는 해프닝을 벌이게 되지만 주위의 설득으로 가족과 화해한다는 줄거리이다.
이 작가의 문체적 특징은 묘사의 방법은 거의 쓰지 않고, 인물의 행위와 사건의 상황을 설명하는 서술과 대화로 일관하고 있다. 지루한 묘사는 사건 전개의 리듬을 더디게 하고 주 독자인 어린이들이 기피한다고는 하지만, 장면의 분위기나 인물의 심리적 상황을 적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묘사는 필요조건이 된다. 이 작품은 그러한 묘사가 없이 서술과 대화로만 일관되는 무미건조함을 보여 낭만적 색체가 약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실직과 가정 해체, 물질적 가치가 우선되는 우리 시대의 천박한 윤리의식을 직접화법으로 들려주기보다는, 간접화법을 통한 우화적 상징의 서사 구조로 형상화한 점은 높이 사지 않을 수 없다.「다리 위에 선 아버지」라는 제목 자체만으로도 우리 시대의 암울한 풍경을 떠올릴 수 있는 이 작품 역시, 결미 부분에서 가족과의 화해를 통해 작가의 낙관주의적 현실인식을 엿볼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암울한 현실적 리얼리티에 대한 접근으로서의 주제의식과 ‘~습니다.’의 존칭형 서술종결어미의 사용은 조금 눈에 거슬린다.

정의와 진실에 대한 탐구의「영수증」
서하원의 단편 아동소설인「영수증」은 정의와 진실에 대한 탐구로서의 사회학적 리포트의 성격을 띠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생일 선물로 받은 나의 게임기를 같은 반 친구인 한척이에게 빌려 주었는데, 우스꽝스럽게도 한척이와 그의 어머니가 그 게임기를 자기네들 것이라고 우기게 되는 해프닝을 다루고 있다. 결국 나와 나의 어머니가 보관하고 있던 가게의 영수증을 찾아 그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오해를 풀고 진실을 밝히는 단일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이 작품 역시 있는 자로서의 한척이와 없는 자로서의 나의 대립과 갈등이 사건의 핵심을 이루고 있지만, 작가는 그러한 대립과 갈등을 제시만 하고 있을 뿐 어떠한 관여도 하지 않고 있다.

왜쭉왜쭉 성깔을 부리며, 주먹 좀 쓴다고 남의 물건을 넘보는 저런 녀석과는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창문을 콱 닫아 버렸다. 미처 빼내지 못한 녀석의 손가락 몇 개가 창틈에 끼었는지 울음소리가 도드라지게 튀었다. 통쾌했다. 그러나 그 순간 부모님이 알면 어쩌나, 한척이네 아빠가 찾아오면 어쩌나, 간이 콩닥콩닥 뛰었다. 다행히 녀석의 울음소리가 바람소리에 묻혀버렸다. (p.31.)

위 인용문은 게임기를 가지고 놀고 있는데 골목길의 창문을 열고 자신의 게임기라고 내놓으라고 닦달하는 한척이에게 내가 창문을 세게 닫아 골탕 먹이는 장면이다. 인용문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이 작품의 문장은 평이하고 짧으며, 그리고 문장의 장단을 통해 리듬감을 형성하여 사건 전개와 인물의 심리 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 단편 아동소설에 걸 맞는 문체이다. 긴 문장과 짧은 문장을 병치시켜 묘한 리듬감을 형성시키고 있으며, 또한 ‘왜쭉왜쭉’, ‘도드라지게’, ‘콩닥콩닥’과 같은 부사어와 의성어를 적절하게 활용하는가 하면, 서술의 문장 속에 입말(구어체)의 대화체 형식을 삽입하여 심리적 상황을 섬세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앞의 소민호의 작품이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하여 우리 사회의 어두운 현실의 단면을 우화적으로 상징하고 있다면, 이 작품은 아이들의 일상을 통하여 현실의 부조리를 희화적으로 풍자하고 있다. 앞의 두 작품이 화해와 소통을 통하여 갈등과 아픔을 치유하고 있다면, 이 작품은 비록 아이들의 세계이지만 정의와 진실을 끝까지 추적하여 흑백을 가리는 행위를 통해 갈등을 극복하는 적극성을 내비치고 있다.
이상과 같은 세 작가의 작품은 단편 아동소설의 특질과 창작 방법상의 요건인 압축을 통한 단일한 효과, 평이하고 간결하면서도 리듬감이 있는 문체, 그리고 주제의식의 선명성 등을 모범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출처 : 글나라
글쓴이 : 남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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