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6월 17일 토요일 맑음
개집 짓던 날
진이 집은 사 놓았는데 보니 집이 없어서 철물점에 개집을 사러 갔더니
시베리안 허스키는 송아지만하게 크니까 파는 건 작아서 안 된다며
새로 맞추란다.
할 수 없이 농기계 만드는 집에 가서 11만원을 주고 맞추었는데
완전히 날림으로 만들었다. 쓰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서 만들어
주어야 하는데 자기 멋대로 만들어버렸다. 차라리 돈을 더 받더라도
쓸모있게 만들어주어야지 이게 뭔가. 다 만들어 놓은 걸 이러니 저러니
따질 수가 없어서 속이 상했다.
사방이 뚫려 있고 천장도 없고 개밥통도 형식적으로 달려 있어서
개밥을 조금 밖에 부어줄 수가 없다. 내가 해운대에 가는 날은
밥을 듬뿍 주고 가야 하는데...
< 주문해서 만든 보니 집 >

그래서 아내가 보니 집을 볼 때마다 걱정을 하더니 대나무를 잇대어
붙이잔다. 처음에는 장판을 위에 덮을까 온갖 궁리를 다 했는데
대나무로 이어 붙이면 비에 젖지도 않고 그늘도 질 것 같다.
우리는 아침부터 손을 걷어 부치고 일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런 일은 둘다 생소해서 개집이 아니라 이상한 모습이 되었다.
하루 종일 매달렸어도 모양은 얼기 설기, 들쭉 날쭉.
그래도 저녁 무렵에는 거의 다 되어서 우리는 스스로 대견해 하며
개들이 편하게 쉬겠다고 좋아했다. 개들이 진짜 좋아할지는 의문이지만.
< 새로 이어 붙여 만든 개집 >



내가 있는 날은 개들을 풀어 놓는데 이 놈들이 밖으로 몰래 빠져 나가서
머드팩을 한다고 논을 휘젓고 다닌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신경이 쓰인다. 내가 출근할 때는 묶어 놓고 나오는데 자유를
맛본 녀석들이라 소리를 지르고 야단이다.
마음 같아서는 완전한 자유를 주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어서 안타깝다.
오늘 아침에는 여러 가지 잎을 뜯어다 쌈을 싸 먹었다.
여기서는 상추는 기본이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왕고들빼기에다
오늘은 특별히 삼백초와 도꼬마리 잎을 시험삼아 싸 먹어 보았다.
야, 그 맛도 일품이다. 다른 사람 같으면 역겹다고 할 지 모르지만
나는 특별한 향기가 좋다. 내친 김에 가막사리 잎도 뜯어서 싸 먹어
보았더니 특유의 향기가 나는데 먹을 만 하다. 마트에서 파는 쌈채소보다
몇 배는 더 나은 것 같다.
물론 아무 잎이나 닥치는 대로 싸 먹는 건 아니다. 야생초 도감을 보고
먹어도 될 만한 것을 뜯어서 먹는다.
그 쌈들 때문에 밥 한 그릇이 다 달아났다.
노루실에서는 특별한 반찬이 없어도 여름엔 정말 식탁이 풍성하다.
밥 먹고 나서 입가심으로는 금은화와 느릅나무, 꿀풀, 감태나무, 구기자,
도라지 등... 여러 가지 배합차 (내가 10초차라고 이름붙인)를 마신다.
< 삼백초 잎 >

< 가막사리 >

< 작년에 떨어진 씨가 저절로 돋아난 들깨 >

< 왕고들빼기 >

부산까지 오고 가기가 쉽지는 않지만 나는 이 생활에 아주 만족한다.
아내하고도 5일은 얼굴을 볼 수가 있으니 고립된 느낌은 들지 않는다.
처음에는 밤에 머리맡에다 거울을 놓고 자기도 무서워서 돌려 놓고
잤는데 이젠 아무렇지 않다. 그만큼 많이 적응이 된 것이다.
< 저절로 돋아난 차즈기 >
 저녁 때는 차즈기 잎을 뜯어서 쌈을 싸 먹어야겠다.
들깨보다 훨씬 더 향기가 좋은 잎인데 나 먹으라고 내가 심지도
않았는데 마당 안의 밭에 저절로 돋아났다.
흙은 참 겸손하다. 남 모르게 좋은 일을 해 놓고도 시치미 뚝 떼고
있다. 나는 이런 흙과 더불어 사는 게 참 감사하고 행복하다.
< 제자가 구해준 구기자 >

< 월계수 나무 >

< 마당에 피어난 백합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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