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7월 27일 목요일 흐린 후 맑음
<< 노루실의 여름 >>
아침에는 종종 짙은 안개가 집 앞을 감싼다.
앞이 보이지 않는 뿌연 안개!
어서 밖으로 나가고 싶지만 매일 하는 운동부터 하고 나가야 한다.
일어나자마자 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하기가 싫어서 안 하게 되니까.
거실에서 내가 개발한 금붕어 운동과 등운동, 허리 운동에 이어
맨손체조까지 하고 나서 밖으로 나간다.
<노루실의 아침 안개 >

<거실 앞에 핀 백일홍 >

<화단에 핀 사랑초>

동양화의 한 장면 같은 안개를 바라보며 현관 밖으로 나가면
공기가 무척이나 신선하다.
도시에서 맡던 공기와 여기 공기는 사뭇 다르다.
아내는 시골이 뭐가 그리 좋냐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하지만,
나는 이곳 공기도 좋고 마당으로 걸어나가 바라보는 온갖 풀과
나무들이 다 새롭고 신선하다. 수도를 바로 틀어서 마시는 맑고 시원한
지하수는 또 어떻고.
어젯밤에는 자다가 몇번이나 깨었다. 집 옆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우당탕탕- 어찌나 시끄러운지 꼭 천둥치는 소리 같았다. 날씨가 계속
맑으면 계곡 물이 말라서 조용한데 요즘에는 비가 자주 와서
계곡물이 아주 큰 소리를 내며 흘러간다.
이곳 밀양에도 강원도처럼 비가 300밀리미터 이상 내리면 마당 옆
계곡이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대문 앞에 핀 해바라기>

<마당에 핀 원추리>

<마당에 핀 봉숭아>

마당을 한 바퀴 둘러보고 개들에게 인사를 한 다음 밭으로 나가면
내 손길이 바빠진다. 내가 심고 기르는 채소들을 돌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거름이나 농약을 전혀주지 않아서 아직 약하고 시들시들한 고추지만
그래도 가끔 몇 개씩은 딸 게 있다. 아내는 한 번은 약을 치고
거름을 듬뿍 주어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 고추를 못
따 먹는 일이 있더라도 약은 절대로 치지 않을 것이고 거름은 틈틈이
줄 생각이다.
가지도 바짝 말라서 열매가 달리지 않았는데 잡초가 가지를 뒤덮고
있다.
나는 잡초를 일일이 뽑기가 귀찮아서 아무렇게나 내버려두었다.
그랬더니 오가는 이웃들이 나보다 더 걱정을 했다.
"허어, 저 밭 언제 맬랑가?"
나는 시간이 나면 쥐 파먹은 듯 대충 손으로 잡아 뜯었다.
그러다가 엊그제 일요일에 손님이 온다니 아내가 모처럼 밭 두
고랑을 깨끗이 매어 놓았다. 참 보기 좋았다. 나도 그걸 보고 호미로
잡초 뿌리를 파내기로 했다. 처음부터 호미로 김을 매었으면 편할 텐데
밭을 둘러볼 때마다 대충 손으로 잡아당겨 뜯었더니 오히려 뿌리가 더
튼튼해져서 감당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맙소사! 밭에는 채소보다 풀이 더 우거져 버렸다. 완전히 풀밭이었다.
무엇이든 처음부터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밭에서도
알았다. 대충대충 엉성하게 하면 그 때는 편하지만 나중에 가서 더
힘들어진다.
그리고 똑같은 잡초라도 뿌리가 튼튼한 것은 모질게 살아서 버티는데
뿌리가 약한 것은 잡아당기면 쉽게 빠졌다.
<약하게 자란 고추>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틈날 때마다 자주 매달리며
진심으로 좋아하는 마음을 불어 넣어야 뿌리가 튼튼해질 것이다.
큰 노력도 안 하면서 그저 좋은 결과나 바라고, 남이 하는 걸
부러워하며 하는 시늉만 하면 뿌리가 약해서 오래 가지 못한다.
내가 진정으로 좋아서 하는 일이라면 남보다 못해도 부끄러울 것이
없고, 내가 오래 오래 하고 싶은 일이라면 당장의 결과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길은 멀리까지 가려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지 가까운
곳에 갈 사람은 굳이 길이 없어도 될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매일 밭을 돌보듯이 끈질기게 달라붙어야
한다.
나는 밭을 편한 대로 놓아두었다가 김을 한꺼번에 매느라고 혼났다.
결국엔 아내가 도와주어서 밭 모양이 되었다.
휴, 죽다 살았네!
그러나 풀이 무성해서 수확량은 줄어 들었지만 내 건강에는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풀을 손으로 일일이 뽑으려니 비름이나 털별꽃 아재비
같은 잡초는 뿌리가 땅 속에 10센티미터 이상 깊이 박혀 있어서
아주 세게 잡아 당겨야 한다. 풀을 손으로 뽑다 보니 손가락 모세혈관
지압 운동이 되었다. 내 손바닥이 늘 책만 읽고 글만 써서 그전에는
핼쓱했는데 요즘에는 발갛게 혈색이 도는 것을 보니 건강에는 도움이
된 것 같다. 한 가지가 나쁜 대신에 다른 면으로는 얻는 게 있었다.
<잘 자라고 있는 호박잎 >

그런 중에도 호박만은 가장 성공적이다. 내가 여태까지 심은 호박
중에서는 제일 튼실하게 줄기를 뻗는다. 암꽃은 잘 안 보이고 수꽃들만
주렁주렁 달려도 잎이 많으니 따서 쌈 싸 먹기엔 그저 그만이다.
내가 가족과 떨어져 노루실에서 살 수 있는 것도 입맛이 까다롭지
않고 무엇이든 잘 먹기 때문이다. 나는 호박잎이나 들깨, 야생초
쌈만 있으면 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골고루
먹은 습성 때문에 노루실에서도 잘 지내고 있다.
<굵어지는 대추>

<제자가 준 고구마 모종>

<딱 한 포기 심은 토마토>

3월 6일에 왔으니 어느새 4달은 지났다.
처음엔 한 달도 못 견디고 부산으로 돌아갈 줄 알았는데 잘 적응한
셈이다.
물론 나혼자 뚝 떨어져 있었던 것은 아니고 아내가 와서 일주일에
사흘은 있다가니 큰 힘이 되었다.
요즘에는 마당 안에 들깨잎이 하늘의 별처럼 촘촘하게 돋아나서
행복하다. 언제든지 달려나가기만 하면 깻잎을 딸 수 있어서
내 반찬이 사방에 널려 있다.
< 별처럼 많이 돋아나는 깻잎>

<장마철에 심어서 살아난 석류나무>

얼마 전에 내 나이와 비슷한 친구가 갑자기 죽어서 참 서운했는데
나는 죽기 전에 노루실에 살아보아서 다행이다.
늙어서 시골에 들어오려고 벼르다가는 뜻을 못 이루고 죽을 수도
있으니까.
내가 해보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한 아내와 아들 딸들이
참 감사하다.
노루실에서 얻은 생명의 에너지를 고스란히 모아서 좋은 일을 하는데
쓸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
<때죽나무에 기생하는 벌레의 집>

<구만산 통수계곡의 커플 폭포>

<어린 감열매가 무수히 떨어진 어느 과수원>

凡 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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