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3월 17일, 토요일, 흐림 > == 다 받아주는 도랑 == 어제는 친구 부친이 돌아가셔서 함안으로 조문을 갔다가 밀양 노루실로 들어갔다. 노루실은 역시 부산보다 춥다. 집안에 들어서자 완전히 냉방이었다. 전기 장판을 켜고 열풍기를 틀어서 냉기를 몰아내었다. 진이는 여전히 철망 사육장 안에서 잘 지내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반가워서 끙끙거리고 야단이다. 철망 밖으로 내어주었더니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아내가 진이 배를 만져보더니 젖이 도도록한 걸 보고 임신한 게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개의 임신 기간은 62일 정도라고 한다. 그렇다면 4월에는 강아지를 낳는다는 말인데 그렇게 빨리 낳는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임신 초기에 내 자동차를 따라 오려고 심하게 달린 적이 있는데 혹시 이상이 있을까 봐 걱정이 된다. 진이가 새끼를 무사히 낳아서 새끼와 같이 지내면 외롭지도 않고 좋을 텐데...... 하룻밤을 자고 일어나 구기자와 목련, 라일락 등에 물을 충분히 주었다. 그 다음엔 고수 순을 캐러 갔다. 그 전에 보아둔 데가 있어서 몇 뿌리만 캐었다. 고수를 집안 돌담 밑에 심어 놓고 나서 뽕나무 뿌리를 캐었다. 집안에 작은 뽕나무가 많아서 몇 그루는 베어야만 했다. 노란 뽕나무 뿌리는 하도 깊이 박혀서 끝까지 다 캐지는 못하고 중간에서 잘랐다. < 마당에 활짝 핀 매화 >
뽕나무 뿌리를 캐고 나서 밭으로 갔다. 아직도 잔기침이 나오는데 곰보 배추를 캐서 끓여 먹으려고 곰보 배추를 캐왔다. 밭에는 머위가 싹을 내밀고 있었다. 머위 꽃망울도 보여서 사진을 찍었다. < 머위 꽃봉오리 >
밭에는 잡초가 벌써 막 돋아나고 있었다. 나는 호미로 잡초를 캐어 옆에 있는 도랑으로 던졌다. 잡초를 뽑으면서 크고 작은 돌멩이도 주워서 도랑으로 던졌다. 치우기 귀찮은 병 뚜껑이나 과자 껍질도 버리고 도랑에 안 버리는 것이 없다. 그런데도 도랑은 큰 입을 벌리고 무엇이든 다 받아준다. 저렇게 마음이 넓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도랑을 보며 옹졸한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넓히고 싶다. < 노루실 밭 옆의 도랑 >
2주 전에 심은 골담초가 살아서 새 순을 내밀고 있었다. 그 막대기 같던 나무에서 새순이 나오다니! 참 신기하다. 나는 이런 경이로운 자연을 보려고 노루실로 달려간다. < 골담초 >
아내는 살지도 않을 집을 뭐하러 비워 두느냐고, 팔아서 다른 데 투자하면 더 좋지 않겠냐고 한다. 노루실에서 살 것도 아니면서 차도 한 대를 더 사서 낭비라고 핀잔을 준다. 아내는 요즘 경제적으로 힘드니까 그런 말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내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는 한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 집은 절대로 낭비가 아니다. 내 몸을 쉬게 해주고 내 영혼을 씻어주는 집인데 팔으라니? 이런 집을 일부러라도 사야 할 나이인데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팔면 나는 뒤에 큰 후회를 할 것이다. 부산 아파트를 팔면 팔았지 대숲이 있는 이 집은 팔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출퇴근이 힘들어 일주일에 한 번씩 가지만 두 아이가 대학을 졸업하면 그 때는 노루실에 가서 살 작정이다.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노루실에만 가면 힘이 나고 마음이 정화된다. 이런 집을 어떻게 경제적인 잣대로 따진단 말인가? 노루실은 내 마음의 고향이요, 내 창작을 도와주는 친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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