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수국의 계절
< 2009년 5월 2일, 토요일, 흐린 뒤에 비 >
지난 주에는 영월 백금자님 댁에 갔다 오느라 2주 만에 노루실에 갔다.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 보니 노루실은 아직도 약간 추웠다. 운동을 한 다음에 마당으로 나가서 화초에 물을 주었다. 근 보름만에 왔기 때문에 꽃과 나무들이 목마를까 봐 물뿌리개로 물을 뿌려주었다. 나는 시골집 마당에 있는 나무와 꽃들이 친구처럼 느껴진다. 하얀 모란과 나무 수국이 꽃을 피워서 참 보기가 좋았다. 작약도 이젠 완전히 자리를 잡아서 꽃대가 엄청 많이 올라오고 있었다. 저 많은 꽃송이들이 다 꽃을 피우면 아주 멋질 것이다. 작약에 거는 기대가 크다.
하얀 모란

나무 수국

한바퀴 돌며 물을 준 다음에 뽕잎을 뜯어서 뽕잎 밥을 하고 반찬으로는 땅두릅, 신선초, 상추, 머위잎, 씀바귀, 박하 등을 뜯어서 쌈을 싸 먹었다. 이제 왕고들빼기도 슬슬 돋아나오고 있었다. 해마다 왕고들빼기를 참 많이 뜯어 먹었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돋아 나오니 반가웠다.
화분에 옮겨 심은 박하

블루베리 꽃

밥을 먹고 보리뱅이와 민들레를 뜯어서 효소를 한 병 담았다. 마당 곳곳에 보리뱅이가 귀찮을 정도로 많이 돋아났다. 그걸 뽑아서 효소를 담았다. 하얀 민들레도 애써 번식시킨 보람이 있어서
집안 여기 저기에 많이 돋아났다.
무성하게 자란 작약

그 다음에는 아내와 큰 자루를 하나씩 메고 산으로 갔다. 내가 야생초 효능을 알아보았더니 산후통에는 생강나무가 좋다고 했다. 아내가 종종 팔다리가 아프다고 하소연을 하는데 병원을 가보면 뚜렷한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런 꾀병 같은 병이 바로 산후통 이라고 한다. 생강나무야 흔한 나무이고 큰 부작용이 없으니 산에 가서 많이 뜯어 오기로 했다. 뒷산으로 올라가보니 생각보다 잘 보이지 않았다. 감태나무는 많이 보여서 그거라도 좀 뜯었다. 한참 만에야 생강나무를 발견하고 잎과 줄기를 끊었다. 생각보다 그리 많이 보이지는 않았다. 등산할 때는 생강나무가 숱하게 보이더니 막상 구하려면 드물었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그 말이 맞았다. 생강나무만 하려니 양이 모자랄 것 같아서 싸리나무, 산초나무, 감태나무, 엄나무, 취나물 등을 골고루 뜯었고, 집으로 와서 쑥, 은행잎, 땅두릅나무, 소리쟁이, 구기자, 민들레 등을 더 넣었다. 이걸 부산으로 가져 가서 한약 중탕 하는 집에 맡겨서 한약처럼 비닐팩으로 만들어서 마시기로 했다.
산에서 돌아와 고추 지지대를 만들려고 하는 중인데 누가 대문 앞에서 나를 불렀다. "저 혹시 범초 선생님 아닙니까?" "누구세요?" "선생님 카페에 올려 놓은 글을 보고 찾아왔습니다." 나는 그제야 그 분을 알아보았다. 만나기는 오늘 처음이지만 전화 통화를 한 번 한 적은 있었다. 언제 올까 궁금했는데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다. 어제 읽은 책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줄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마라. 누구에게나 공손하라.' 오늘 그 말을 실천할 기회가 왔다. 영월에 가서도 백금자님한테 손님을 어떻게 맞아야 하는지 잘 배웠다. 지수 아빠도 시골집을 지으려고 밀양 단장면에 땅을 샀는데 오늘은 노루실을 둘러보러 아들과 딸을 데리고 왔다. 집안에 있는 꽃과 나무를 안내하고 방으로 들어가서 뽕잎차를 마셨다. 내게 자세한 노루실 위치도 묻지 않고 카페에 올려 놓은 사진과 글만 보고 노루실을 바로 찾아온 경우는 이 분이 처음이었다. 지수 아빠는 지도를 보고 길을 잘 찾는 전문가인가 보다.
소이가 영월에서 준 선물
( 직접 만든 퀼트라고 함) ==소이 감사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지수 아빠가 사 놓은 땅을 구경하기로 했다. 그래서 지수 아빠 차가 앞서고 우리는 뒤를 따라갔다. 단장면 법흥리에 가서 땅을 둘러보았는데 지대가 좀 높기는 했지만 전망이 아주 좋았다. 앞으로 흙을 더 붓고 잘 가꾸면 좋은 전원 주택지가 될 것 같았다. 땅을 구경하고 헤어지려는데 지수 아빠가 만난 것도 인연이니 저녁을 같이 하자고 했다. 삼랑진으로 넘어가서 식당으로 들어가 저녁을 먹었다. 이야기를 해보니 지수 아빠도 나만큼이나 시골을 좋아하는 분이었다. 우리는 시골이라는 공감대 때문에 이야기를 술술 풀어나갈 수 있었다. 앞으로 종종 만나기로 하고 헤어진 다음에 부산으로 돌아왔다. 차가 달리는데 밖에서는 비가 세차게 쏟아졌다. 오늘 노루실에 영월에서 구해 온 멸가치, 동강할미꽃, 지느러미 엉겅퀴를 심었는데 잘 살아날지 모르겠다. 비가 쏟아지니 그나마 마음이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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