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스크랩] 일 구덩이가 뭐가 좋다고.... 327회

凡草 2010. 7. 17. 23:23

 

 일 구덩이가 뭐가 좋다고....


<2010년 7월 17일 토요일 비온 뒤 갬>


 아침을 먹고 범초산장에 갈 준비를 했다.

 옥상과 미니 화단에 심어 놓은 톱풀, 삼백초, 초피나무, 차즈기 등을

범초산장에 옮겨 심으려고 종이 상자에 담았다.

 한여름이라 잘 살아날지 모르지만 범초산장이 들어선 기념으로 심고 싶었다.

 그동안 얼마나 작업을 했을까? 범초산장의 모습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궁금하였다.

 

 

 차를 몰고 가는데 소나기가 쏟아졌다.

 비가 많이 오면 일을 못할 텐데 언제까지 올까?

 비를 피할 곳은 만들어 놓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가는데 저수지 앞에 도착하자 비가 그쳤다.

 차를 대어 놓고 들어갔더니 농막의 뼈대가 세워져 있었다.

 블록 벽돌로 틀을 잡은 다음 시멘트로 바닥을 채우고 그 위에 농막을

세웠다.

 

 

 

 동주원은 농막을 세울 때 시멘트 작업을 하지 않아서 쥐가 들어올까 봐

신경을 많이 썼다는데 범초산장은 그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시멘트

작업을 미리 했다.

 이제 구조물은 세웠고 문과 유리창을 달고 전기를 설치할 일이 남았다.

 바닥은 돌멩이를 다 파내고 습기가 올라오지 않도록 헌 비닐장판을

몇 겹 깔고 나서 그 위에 흙을 채운 다음 이태리 대리석을 깔 게 된다고

동주가 일러주었다.

 농막 안에서 보니 오른쪽에는 저수지가 보이고 왼쪽에는 계곡이 보였다.

좌청룡 우백호 못지않은 명당이었다.

 이렇게 좋은 위치에서 멋진 풍경을 바라보니 여태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하지만 아직 경치만 감상하고 있을 처지가 못 되었다.

 우선 농막 바닥에 있는 돌을 다 파내고 바닥을 평평하게 골라야 했다.

 돌이 무수하게 나왔다.

 돌은 마사리에서 노루실에서 그리고 지금 여기까지 나를 계속 따라

다닌다. 아무 죽을 때까지 돌을 파내야 할 모양이다.

 끝없이 나오는 돌을 큰 벌로 생각한다면 비극이지만 갖고 놀아야 할

장난감으로 생각하면 그리 지겹지 않다. 큰 돌을 파서 운동 삼아

들고 다녔다.

 

 

 

 바닥 고르기 작업이 대충 끝나자 동주의 지시대로 남은 철쭉을 또 심었다.

 저번에는 호미로 땅을 파느라 손이 아팠는데 오늘은 처음부터 곡괭이로

팠다.

 철쭉을 심고 동주원에서 가져온 남천과 작약도 심었다.

 일이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지자 아내가 투정을 했다.

 “당신은 이런 일 구덩이가 뭐가 좋다고 자꾸 와요?”

 “난 좋아. 힘들어도 좋고 파김치가 되어도 좋아.”

 글을 쓰고 읽고 남을 가르치는 작업은 정신노동이다.

 범초산장에 오면 내가 늘 하던 일과는 전혀 딴 일이다.

 남들은 헬스를 하며 땀을 흘리지만 나는 주말농장에 와서 꽃을 심고

잡초를 뽑으면서 땀을 흘린다.

 땅을 가꾸는 일은 단순한 노동으로 끝나지 않는다.

 정성껏 땅을 가꾸면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고 신선한 먹거리가 생긴다.

 아무런 보람이 없다면 어떻게 일 구덩이에 나를 집어넣을 것인가?

 일 구덩이 속에서 헤어날 수 없어도 좋다.

 내가 일한 만큼 범초산장이 새로워지고 달라질 것이다.

 

 

 일하다가 땀이 나서 더우면 바로 옆에 있는 계곡으로 들어갔다.

 시원한 물로 손도 씻고 얼굴도 씻고 머리도 씻었다.

 비가 온 뒤라 물이 아주 많았다.

 수영장 같은 곳이 두 군데나 있었다.

 남들은 지리산 계곡으로 피서를 가지만 난 따로 피서를 갈 필요가 없다.

 굳이 물속에 들어가지 않아도 시원하다.

 때죽나무 밑에 놓아둔 평상에 앉아 있으면 저수지를 가로질러오는 바람이

더위를 날려버린다.

 동주와 막걸리를 한 잔 하고 나서 갖고 간 씨앗을 뿌렸다.

 원추리, 해바라기, 닥풀, 분꽃, 패랭이, 피마자.....

 봄은 아니지만 살아나기를 빌면서 뿌렸다.

 씨앗들아 너희들은 주인을 잘 못 만나서 고생을 하지만 날 원망하지 말고

몇 알이라도 싹을 틔워다오.

 저 씨앗들을 내년 봄까지 갖고 있기에는 시간이 너무 길다.

 내년 봄에는 다시 씨앗을 사서 뿌릴 것이다.

 내 오락은 씨를 뿌리는 것이다.

 남들은 당구를 하고, 고스톱을 치고, 볼링을 하지만,

나는 씨를 심는 것이 오락이다. 나무를 심는 것은 게임이다.

 

 

 

 틈나는 대로 나무를 심어서 범초산장이 어느 정도 우거지면

야생초 차를 마시면서 글을 쓸 것이다.

 내가 심은 꽃과 나무에 비가 떨어지면 그냥 비오는 것을 바라보는

사람과는 기분이 다를 것이다. 도시의 아스팔트에 떨어지는 비는

먼지나 씻어주는 하찮은 물이지만 여기 범초산장에 내리는 비는

금비요, 복비요, 단비요, 꽃비요, 사랑의 비다.

 꽃과 나무를 살려주는 비가 내리면 내 마음은 한없이 기쁘다.

 자식 입에 밥이 들어가는 것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처럼.

 수많은 생명과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일 구덩이에 푹 빠져야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일 구덩이에 빠져서 옷을 엉망으로 버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내일도 갈 것이다. (*)




출처 : 글나라
글쓴이 : 凡 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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