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쓰는 범초산장 <2010년 7월 9일 금요일 맑음> 수요일 오전에 동주가 전화를 했다. “형님, 어제 나무 다 가져갔습니다. 오늘부터 공사 시작합니다.” 조경업자가 나무를 다 파서 칭칭 묶어 놓고도 땅이 질어서 못 가져갔는데 며칠 비가 안 와서 땅이 마른 사이에 나무를 다 가져간 모양이다.
드디어 공사가 시작되는구나! 나는 수요일 오후에 수업이 있어서 직접 못 가고 아내를 대신 보냈다. 아내는 시골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흙을 밟아야 한다. 이 점은 아내에게 정말 미안하다. 2001년 삼랑진 마사리에서 처음 주말 농장 터를 만들 때도 평일에는 내가 학원 수업 때문에 몸을 빼낼 수가 없어서 아내가 나 대신 공사를 감독하였다. 아내는 포크레인으로 공사하는 것을 한 번도 지켜본 적이 없는데 생각보다 잘 해내었다.
오늘 아내를 보내면서 그 일이 문득 생각났다. 그때 아내를 보내 놓고 땅이 어떤 모습으로 바뀌었을지 무척 궁금했는데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다행히 믿음직한 후배 동주가 있어서 그때와는 상황이 전혀 다르지만 시간만 나면 달려가고 싶었다.
어제는 아침부터 신세계 백화점 동화교실에 가서 동화를 가르쳐야 하기 때문에 갈 수가 없고, 오늘 오전에 시간을 내어 범초산장 터로 달려갔다. (원래 이 범초산장 터는 전부가 내 땅이 아니고 삼분의 일 밖에 안 되지만, 동주는 250미터 위에 400평이나 되는 동주원을 갖고 있고, 함께 땅을 산 다른 후배는 뭐가 그리 바쁜지 여지껏 한 두 번 밖에 온 적이 없어서 앞으로도 이 땅의 관리는 내가 맡아야 할 판이다. 그래서 부르기 편하게 ‘범초산장’이라고 한다.)
동주는 수요일과 목요일에 학교에서 조퇴를 하고 나와 공사 감독을 했는데, 오늘은 나와 아내가 오전에 가서 공사 현장을 지켜보았다. 동주는 점심 시간이 되면 오겠다고 했다. 내가 가서 보니 그전과는 완전히 밭 모습이 달라져 있었다. 도대체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을까? 두 단이었던 밭이 한 단으로 평평하게 다듬어져 있었다. 완전히 새로 쓰는 역사였다.
노루실에서 남이 지은 시골집을 사서 들어갈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분이라고 할까? 천지 창조가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다시 젊은 피가 맥박을 뛰는 기분이었다. 나는 이 역사적인 순간을 기념하려고 사진기를 꺼내 셔터를 막 눌렀다.
이 땅의 모습이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는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동주는 이미 농장을 잘 가꾸어 보았기 때문에 앞으로 꾸며질 범초산장을 머릿속에 구상하고 있겠지만, 이런 것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다음에 와보면 깜짝 놀랄 것이다.
내가 사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잡은 범초산장. 지금도 13킬로미터 정도 떨어졌으니 그리 먼 거리는 아니지만 몇 년 뒤에는 집도 이 산장과 더 가까운 곳으로 옮길 것이다. 내 삶의 중심에 아파트보다는 범초산장을 놓고 싶다.
이제 첫 단추는 잘 꿰었으니 내일부터 나무도 심고 잘 가꾸어 나갈 것이다. 이번 공사 진행 과정을 보니 동주가 큰 도움이 되었다. 나와 아내가 이 일을 다 맡아서 했더라면 아마 이렇게 완벽하게 해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또 어떤 시행착오를 되풀이했을지...
냇가로 내려가는 계단도 만들어 놓고 저수지 옆으로 돌아나갈 길까지 구상해서 미리 만들어 놓았다. 앞으로는 도라지집 눈치 받지 않고 차가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진입로 문제도 자동 해결되어 땅의 가치가 높아진다. 동주의 능력에 몇 번이나 감탄하였다. 나는 점심을 먹고 화명동으로 돌아오고 아내와 동주는 남아서 나무를 심었다.
내가 텅 빈 범초산장 터에 꿈을 하나씩 가꾸어 나가듯이 나에게 동화를 배우는 제자들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여 자신의 역사를 새로 쓰고 나에게도 큰 기쁨을 전해 주기 바란다. (*) * 양산 우리집에서 본 부산대학병원
* 조뱅이가 잘 컸다
* 싹이 트고 있는 톱풀 (범초산장에 옮겨 심을 것이다.)
* 쿨맘이 준 도라지가 꽃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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