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스크랩] 하루 종일 심은 철쭉 (326회)

凡草 2010. 7. 11. 19:15

 

 

 하루 종일 심은 철쭉


<2010년, 7월 11일, 일요일, 폭우>


 그저께 금요일 저녁에 아내가 나무를 심고 와서 허리가 아프다고 하였다.

오후 내내 일을 한 모양이었다. 밥도 못하고 저녁을 사달라고 했다.

 저녁을 먹고 드러누우면서 몸살이 날지 모르겠다고 해서 토요일에는

집에서 쉬라고 했다.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더니 생각보다는 안 피곤하다고 했다.

 “여보, 나도 따라갈까?”

 “무리하지 말고 그냥 집에 있지. 나 혼자 갔다 올게.”

 “집에 있으면 심심하니 따라가서 요령껏 일할 게요.”

 아내도 범초산장 터가 자리를 잡아가는 것이 속으로는 좋은 모양이다.

 겉으로는 시골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땅 모양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 가고 자신도 직접 나무도 심었으니 어찌 관심이 가지 않겠는가!

 


 아침을 먹고 막걸리를 사서 범초산장 터로 갔더니 동주가 벌써 와서

일하고 있었다.

 어제 오후부터 나무를 심었다더니 벌써 모양이 달라져 있었다.

 그냥 땅만 있을 때와 나무가 서 있을 때는 사뭇 달랐다.

 사람이 옷을 안 입고 있을 때와 옷을 입고 있을 때가 다르듯이

범초산장도 좀더 나은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조경업자가 심어 놓았던 나무들 가운데 자귀나무 한 그루,

배롱나무 두 그루, 당단풍 30여 그루, 철쭉 300그루를

우리가 미리 돈을 주고 사 놓았는데 이걸 심어 나가기로 했다.

 자귀나무를 심어 놓은 둘레에는 철쭉동산을 만들 참이었다.

 나와 아내는 철쭉을 한 그루씩 심어 나갔다.

 

 


 동주는 앞으로 거름으로 쓰려고 메추라기 똥을 타이탄 트럭으로

두 대 분량, 18만 원씩 36만 원에 사다 부려 놓았고,

농막을 지을 업자에게 연락을 하기도 하고, 당단풍의 가지를 자르고

잎을 떼었다. 여름에 나무를 옮겨 심을 때는 잎과 가지를 많이 잘라

주어야 하는데 잔뿌리도 많이 잘라주어야 한다는 것을 새로 배웠다.

잔뿌리를 잘라주어야 나무가 위기 의식을 느끼고 새로 뿌리를 내려고

애쓴다는 것이다.

 

 

 

 동주는 한참 일하다가 어느 틈에 사라져서 평상을 짜서 갖고 오기도 하고,

이태리 대리석을 공짜로 얻어오기도 했다. 이태리 대리석은 농막 안에

인테리어 재료로 쓸 거란다.

 동주는 이름 그대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활발하게 움직이고

발도 참 넓어서 일을 척척 진행시켰다.

 

 


 나는 그 동안에 아내와 철쭉을 심었는데, 한 쪽에 무더기로 모아놓은

철쭉이 어찌나 많은지 아무리 심어도 끝이 없었다.

 심고, 또 심고, 또 심고.....

 동주가 사온 평상에서 점심을 같이 먹고 조금 쉬다가

다시 철쭉을 심었다. 아내는 무리를 할까 봐 못하게 말리고

평상에서 낮잠을 자라고 했다.

 내 평생 이렇게 많은 철쭉을 심어보긴 처음이었다.

 여기도 철쭉, 저기도 철쭉, 내가 심은 철쭉이 사방에서 깃발처럼

나부꼈다. 제발 저 놈들이 살아나야 할 텐데. 며칠째 가물어서

땅이 메말랐다. 오늘도 흐리다가 해가 비치다가 몹시 더워서

물을 주지 않으면 말라죽을 것만 같았다. 물을 준다고 해도

땅 속까지는 스며들지 않아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오후 6시까지 심었는데 아직도 철쭉이 조금 남아 있었지만

몸이 지칠 대로 지쳐서  더 이상 심을 수가 없었다.

완전히 파김치가 되었다. 내일 팔이 제대로 움직여질지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제 저녁에는 너무 피곤해서 잠도 쉽게 이루지 못했는데

오늘 아침에 일어나 보니 생각보다는 덜 피곤했다.

 오늘 새벽부터  쏟아지는 빗소리가 참 듣기 좋았다.

 어제 그저께 우리가 심은 나무들에게는 정말 소중한 단비다.

 비가 며칠 안 온다면 나무를 심은 일이 허사로 돌아갔을 것이다.

 때마침 적절하게 비가 내려주어서 참 좋았다.

 오늘은 조카 결혼식이 있어서 부전동 예식장에 갔다가 아들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범초산장으로 갔다. 식구들은 폭우를 뚫고

범초산장으로 간다며 광적이라고 놀렸지만 나는 해야만 할 일이

있었다.

 

 제주도 한라산 농장에서 비파나무 어린 묘목 5그루를 구했는데

그걸 오늘 심지 않으면 심을 시간이 없었다. 비가 올 때 심어야

나무가 살 수 있을 것이고.

 

 

 

 내가 할 일이 있다면 폭우가 내려도 반드시 해야만 한다.

 식구들은 그런 걸 왜 구해서 심느냐고 의아해 하겠지만 비파나무는

암에 좋은 성분을 지니고 있다. 운 좋게 구한 나무가 나와 내 이웃에

어떤 도움을 줄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는 암에 좋은 나무가 아니라 시시한 나무를 공짜로 얻었다고 해도

폭우를 뚫고 달려갔을 것이다.

 

 

 

 

 땅을 가진 사람이 심는 일을 소홀히 하면 다음에 수확할 일이 없다.

 식구들은 차에서 기다리고 나 혼자 비를 맞고 나무를 심었지만 기분은 좋았다.

 공사를 한 뒤라 발이 땅에 푹푹 빠졌다.

 많은 비가 내렸지만 별 피해는 없었다.

 비가 내리고 나면 땅이 더 단단해질 것이다. (*)


출처 : 글나라
글쓴이 : 凡 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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