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

[스크랩] 우산 쓰고 다섯 시간 (573회)

凡草 2014. 4. 29. 21:14

 

 

<범초산장 일기; 573회>

 

우산 쓰고 다섯 시간

 

<2014년 4월 28일, 월요일, 비>

 

매주 월요일에는 등산을 가는데 아침부터 비가 쏟아졌다.

일기 예보를 보니 오늘 하루 20-60밀리미터 정도 온단다.

그 정도면 산에 가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비가 많이 올 경우에는 등산을 토요일로 앞당겨서 가고

범초산장에는 일, 월요일에 갈 수도 있지만

오늘 같은 비는 등산에 큰 지장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우비와 우산을 챙겨 산으로 갔다.

 

오늘 등산은 비가 오는 것을 고려해서 정자가 많이 있는

금정산 둘레길을 걷기로 했다.

둘레길은 무리한 정상 등반보다 안전하고 점심을 먹기에도 좋다.

비가 와도 걷는 데는 별로 불편하지 않지만

준비는 철저히 해야 한다.

 

지갑과 휴대폰을 비닐봉지로 둘러싸야 하고

배낭도 방수 커버로 덮어야 한다.

제일 문제가 신발인데 비닐을 양말 속에 넣어서 뒤집은 다음에

밖으로 빼내면 물이 들어가지 않으니 양말이 젖지 않는다.

언젠가 눈길을 오래 걸은 적이 있는데 이 방법을 쓰지 않아서

발이 얼어 고생했다.

 

 

오늘 이 방법을 썼더니 산을 내려올 때까지 양말이 젖지 않았다.

비가 오는데도 산에 간다고 하면 산에 미친 사람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 생활의 한 부분일 뿐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산에 가는 것이 내 생활 방식이기 때문에

비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태풍이 불거나 비가 100밀리미터 이상 내린다면 몰라도.

비를 워낙 좋아하기 때문에 일부러 비를 맞기도 하는데

이런 날은 더욱 더 산에 가고 싶다.

산을 잘 모르는 사람은 위험하지 않느냐고 걱정하지만

바위를 타거나 급경사를 오르지 않는 한 위험한 일은 별로 없다.

 

 

우비를 갖고 갔지만 휴대폰으로 사진을 몇 장 찍기 위해서는

우산이 더 편리해서 계속 우산을 쓰고 걸었다.

조끼 주머니에 넣어둔 라디오에서 ‘사랑은 창밖의 빗물 같아요’, ‘빗물’과

같은 노래가 계속 흘러나와서 한층 더 흥겹게 걸었다.

 

 

점심 먹을 때 조금 추웠던 것 말고는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몹시 추웠더라면 우비를 옷 위에 겹쳐 입을 작정이었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다.

 

참 맑은 날보다 한 가지 불편한 것이 있기는 했다.

아무 데나 마음대로 주저앉아서 쉴 수가 없고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기가 힘들었다.

휴대폰이 비에 젖지 않도록 우산으로 가리고 찍어야 했으니까.

그래서 사진은 많이 찍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산에서

나 혼자 산을 통째로 빌려서 잘 쓰다가 내려왔다.

호포역에서 산으로 올라가 양산 다방리까지 둘레길을 걸었는데

대략 5시간 동안 14킬로미터를 걸었다.

 

호젓한 오솔길을 걸어가는데 비가 와도 산새 우는 소리가 들렸다.

쉴 새 없이 우산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는 훌륭한 음악이었다.

갈림길에서 그 전에 가본 기억이 생각나지 않아 위로 갔더니

길이 막혔다.

 

 

 

조금 헛걸음을 했지만 운동을 더 했다고 생각하면 아쉬울 게 없다.

길이 막혔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이 정도야 화가 날 일도 아니다.

나를 훈련시키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마음 가볍다.

씩 웃고 넘어가면 더 좋고.

 

첫 정자가 보인다.

비가 오는 날은 쉬는데 꼭 필요하다.

우산을 접고 쉬거나 들어가서 밥을 먹었다.

정자가 여러 개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정자를 만들어준 분들에게 마음속으로 감사 인사를 드렸다.

 

 

 

계곡 물은 나처럼 비를 좋아하는가 보다.

비가 오니 더 신이 나서 촐랑거리며 뛰어내린다.

 

 

 

비가 내려도 들꽃은 곱게 피어 있었다.

여러 가지 들꽃과 나물을 보았다.

 

 

     조개나물

 

 

 

     병꽃나무 꽃

 

 

 

    등대풀(독이 있으니 뜯어 먹으면 안 됨)

 

 

 

      쥐오줌풀

 

 

 

       솜방망이

 

 

 

       호장근

 

 

 

     바위취 군락지

 

 

 

다방리 계석 마을로 내려가다가 취나물 밭을 보았다.

언젠가 이 길을 지나가면서 저 밭을 보고 부러워한 적이 있었다.

산에 가면 취나물이 많지 않아서 뜯기가 쉽지 않은데

밭 전체가 취나물이라 탐이 났다.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만들어봐야지 했는데

그런 마음을 갖고 있으니 실제로 따라 하게 되었다.

나도 범초산장에 취나물을 차츰 늘려가고 있는 중이다.

뭔가 해보겠다는 마음을 강하게 다져 놓으면

반드시 이룰 수 있다.

마음을 먹지 않아서 그렇지 마음먹고 따라 하면

왜 안 되겠는가?

꿈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은 나약하거나 꿈을 강하게 품지 않거나

둘 중에 하나다.

 

 

 

 

 

우산을 쓰고 다섯 시간 걸어가며

비 구경 잘 하고 운동도 잘했다.

앞으로 한 달 이상은 비 구경 안 해도 아쉽지 않겠다.

 

 

 

 

                                                             (*)

출처 : 글나라
글쓴이 : 凡 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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