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초산장 일기; 564회>
바람은 차도 노루귀는 의연하게 피었고...
<2014년 3월 11일, 화요일, 맑음>
아직 아침 저녁으로는 바람이 차갑다. 바람이 차도 노루귀는 피어 났고 글나라 동화교실 역시 봄학기 개강을 했다.
바람이 차다고 해서 마냥 따뜻해질 때까지 기다릴 수만은 없다. 그러면 이미 늦다. 남들은 추울 때 미리 미리 준비하고 앞서가기 때문이다. 동화교실에서 강의할 때는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의 과거와 비교하라고 말하지만, 언제까지나 느긋하게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능력은 부족하더라도 성실한 자세는 갖고 있어야 한다.
요즘 <다윗과 골리앗>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어떤 큰 장애를 앞두고 사람들은 몹시 절망하지만, 일단 그 장애물을 잘 넘기고 나면 마음이 홀가분해져서 더 큰 힘을 지니게 된다고 한다. 그러니 역경이나 고난도 잘 넘기기만 하면 삶에 큰 에너지가 될 수 있다. 봄 추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침 저녁으로만 춥지 하루 종일 추운 것은 아니니까 심리적으로 위축되지 않으면 별 거 아니다.
지난 3월 2일에 산장에서 옻닭을 해 먹었다고 썼는데 달걀 노른자와 참기름을 먹었는데도 옻에 걸렸다. 그날 저녁까지 아무렇지 않아서 별 생각없이 막걸리를 한 병 마셨는데 그게 화근이었던 모양이다. 하루 자고 나니 발진이 돋고 가려워서 미칠 것만 같았다. 그래도 얼굴이 붓거나 겉으로는 큰 표가 나지 않아서 병원에 가지 않고 악착같이 참았다. 언젠가는 옻에 적응해야 할 텐데 이 정도로 병원에 가면 면역력을 기를 수 없을 것이다. 3-4일 동안 잘 때도 어찌나 가려운지 잠을 거의 설쳤다. 쉽게 가라앉지 않고 두드러기 같은 것이 배, 겨드랑이, 허벅지 같은 곳에 도돌도돌 돋아났다. 그럴 줄 알았으면 진작 병원에 갔을 텐데 미련스럽게 참았다. 이러다가 아토피로 변하는 게 아닌가 걱정될 만큼 가렵고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참았다.
열흘 정도 지나니 이제 참을 만 하고 거의 다 나았다. 비록 고생은 했지만 덕분에 몸과 마음이 홀가분해지고 자유를 느낀다. 내 인내심을 시험해볼 좋은 기회였다. 다음에는 옻을 한꺼번에 많이 먹지 않고 조금씩 먹어서 반드시 적응해볼 생각이다.
양산 중부산성에 갔더니 노루귀가 피었다. 해마다 이맘때면 핀다. 바람이 차고 얼음이 얼어도 저 어린 꽃이 땅을 뚫고 나온다. 하얀 꽃 분홍 꽃은 언 땅을 이기고 나온 웃음이다. 참고 견딘 자만이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있다. 나는 차가운 봄바람을 맞으며 그 여유있는 웃음을 보려고 찾아간다.
글나라 동화교실 개강을 하고 새로 만든 교재로 수업을 했다. 교재를 책으로 만드니 나도 편하고 배우는 이들은 복습과 예습을 할 수 있어서 좋다. 올해는 어찌된 일인지 화요일 낮반보다 목요일 저녁반이 더 많다. 그만큼 일하러 다니는 사람이 늘었는가 보다. 몇 년째 다니는 회원들을 다시 보니 참 반갑고 든든했다.
지난 주에 범초산장에서는 표고버섯 종균을 나무에 넣었다. 영갑씨가 더 만들자고 해서 나는 종균을 구입하고 영갑씨는 나무를 구해 와서 구멍을 뚫어주었다. 토, 일요일 이틀에 걸쳐 종균 3000개를 넣었다. 구멍 속에 종균을 밀어 넣는데 엄지손가락, 새끼손가락을 골고루 써 가며 끊임없이 넣었다. 아무리 해도 일감이 줄어들지 않아서 지루했다.
첫날은 나 혼자 다 했고, 둘째날은 아내와 동그라미 계원들이 도와줘서 다 마칠 수 있었다. 나 혼자 종균을 빼내고 넣는 일을 동시에 하니 진도가 안 나가서 할 수 없이 아내한테 종균을 빼달라고 부탁했다. 아내가 빼낸 종균을 내가 나무에 넣으니 더 능률적이었다.
그렇게 하고 있는데 계원들이 와서 도와주었다. 아무래도 혼자 하는 것보다는 누가 도와주면 덜 힘들고 지겹지 않다.
동그라미 계원들이 바다 장어를 사 와서 함께 구워 먹었다. 일 하고 먹으니 더욱 맛이 있었다.
월요일에는 양산 능걸산에 등산을 갔다. 그전에 한 번 길을 잃고 헤맨 적이 있는 산이다. 겨울에 고생을 했지만 그 바람에 길을 잘 알게 되어 이젠 손바닥을 들여다 보듯 환하다.
계곡 맨 위부터 아래로 훑어 내려가면서 보니 계곡 물도 처음에는 실낱같은 물줄기였다가 차차 굵어졌다. 무엇이든지 처음에는 약하고 못하지만 차차 세어지고 잘해지는 법이다. 저 위에서는 존재조차 없던 물줄기가 밑으로 한참 내려갔더니 세찬 물줄기가 되어 폭포를 이루고 있었다.
그걸 보면 왕초보는 영원한 초보가 아니다. 차차 나아지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자기 깜냥만큼만 애쓰면서 기초를 다져 나가면 언젠가는 대성하리라. 맑은 물줄기를 보면서 노력한 결실을 본다.
돌에 치여 고생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자라는 노각나무. 장애물이 가로막아도 이기고 나가라는 교훈을 던져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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