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스크랩] (범초산장 이야기 793회) 나 혼자만의 시간

凡草 2017. 7. 14. 22:40

  

 

 2017년, 7월 14일, 금요일, 맑음

 

 (범초산장 이야기 793회)  나 혼자만의 시간

 

 지난 주에는 아내와 싸웠다.

 신혼부부처럼 둘만 있으니까 싸울 일도 생긴다.

 

 토요일 아침에 내가 뽕잎밥을 해서 아침상을 차려 놓았는데

 먹을 때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내가 밥을 다 먹었을 때 아내는 밥을 두 숟가락 정도 남겼다.

 나는 한 그릇을 먹었지만 아내는 반 그릇도 안 담아주었는데

 그걸 다 못 먹고 남기다니?

 겨우 그걸 남기냐고 잔소리를 했더니

 당신도 예전에 그런 적이 있다며 궁시렁거렸다.

 그래서 한참 입씨름을 했다.

 나는 아내를 생각해서 다 먹으라고 했는데

 아내는 억지로 먹으라고 하니까 듣기 싫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분위기가 냉랭해져 있었는데

 아내가 기분 전환을 하려는지 밖으로 나가서 풀을 뽑기 시작했다.

 힘드니까 하지 마라고 해도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일했다.

 그러더니 산장을 좋아만 했지 제대로 관리도 못 한다며 잔소리를 늘어 놓았다.

 잡초가 무성하기만 하면 늘 그런 말을 하니까 듣기가 싫었다.

 나는 다른 곳으로 피해 버렸다.

 한참 불평을 하더니 풀이 못 나게 비닐을 같이 씌우자고 했다.

 나도 성이 난 참이라 혼자 하게 내버려두었다. 

 그때라도 가서 거들어주었으면 화해가 되었을 텐데

 안 도와주었더니 아내도 화가 많이 났다.

 

 

 혼자 네 고랑을 다 매고 비닐을 씌우고 나더니

 샤워를 하고 드러누웠다.

 점심 때가 다 되어 가는데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여보 이거 안 할 거야?"
 나는 냉장고에서 반찬 거리를 꺼냈다.

 아내가 호박갈치찌개를 좋아해서 갈치와 호박을 사다 놓았는데

 만들 생각을 안 하니 내가 할 수밖에 없었다.

 멸치로 육수를 내고 호박과 양파와 마늘, 고추를 썰어 넣고

 고추장을 풀어 넣었다.

 한소끔 끓인 뒤에 갈치를 집어 넣었다.

 내 딴에는 열심히 만들어서 밥을 먹자고 했더니

 아내가 일어나서 힐끗 보고는 웬 국물이 그리 많냐, 비린내가 난다는 둥

 트집을 잡고는 안 먹었다.

 나도 기분이 나빠서 버럭 쏘아 붙이고는 혼자 밥을 먹었다.

 

 

 

 아내는 조금 있다가 혼자 집으로 가버렸다.

 별것도 아닌 일로 싸우고 나니 기분이 몹시 상했다.

 아내가 밭에 비닐을 씌울 때 잘한다고 칭찬해주고 거들었다면

 싸우지 않았을 거고,

 피곤하다고 누워 있을 때라도 안마를 해주거나 위로해주었다면

 사이가 벌어지지는 않았을 텐데....

 얄팍한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했다.

 잘못한 일은 모른 척 하고 잘한 일에 감사하는 마음만 가져야 하는 건데.....

 이론은 잘 알고 있어도 실천이 안 되어 현실이 꼬일 때가 있다.

 나도 마음 넓은 사람이 되려면 아직 멀었구나!

 

 

 나는 밭 가장자리에 익모초나 민들레가 있으면 그대로 놓아두자고 하고

 아내는 차라리 밭에 한데 모아서 키우라고 한다.

 아내 말대로 하면 깨끗하긴 한데...

 아내가 가고 난 뒤에 후회해보았자 아무 소용이 없었다.

 몇 시간이 지나 엉클어졌던 마음이 가라앉았을 때

 아내가 전화를 했다.

 무엇을 찾는 척 하면서 말을 걸려고 전화한 것 같았다.

 나는 선선히 대답해주고 수고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렇게 해서 화해가 되었다.

 

 다음날 기분도 풀겸

 아내에게 울산 태화강에 있는 십리대숲을 보러 가자고 했다.

 아내가 찬성해서 함께 울산으로 갔다.

 대숲은 잘 만들어 놓았다.

 실제로 걸어보니 십리까지는 안 되지만 볼만 했다.

 거리가 짧아서 두 번 왕복했다.

 

 

 

 날씨가 더운데도 대숲 안은 그리 덥지 않았다.

 산책 나온 사람들이 줄지어 지나갔다.

 해바라기 꽃도 많아서 사진 찍기에 좋았다.

 

 

 

 

 아내와 나도 젊은 사람들처럼 손을 잡고 걸었다.

 한참 걷고 나서 매점에 들러 커피와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대숲에서 초록 바람이 불어왔다.

 울창한 대숲을 잘 가꾸어 놓은 울산이 부러웠다.

 저렇게 가꾸려면 엄청난 돈이 들었을 것이다.

 

 

 

오늘은 금요일.

혼자 범초산장으로 들어왔다.

아내와 잘 지내고 있지만 가끔은 혼자만의 시간도 필요하다.

사이토 다카시가 지은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을 읽었는데,

고독에 대한 글이 있다.

마음에 드는 몇 귀절을 소개한다.

 

ㅡ고독은 도전이다. 삶의 깊이를 맛보려면 고독이 필요하다.

  원치않던 고독에 빠지면 외롭고 쓸쓸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고독을 직면하면 강해진다.

  혼자 잘 설 수 있어야 함께 잘 설 수 있다.

  고독이 왜 필요한가? 혼자 있어야 자신을 제대로 돌아볼 수 있다.

  남과 같이 있으면 책을 읽을 수 없다. 혼자 있어야 일기를 쓸 수 있다.

  사람들은 혼자 있으면 불안해 하고 여러 사람 속으로 자꾸 들어가려고 하는데

  그러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고독한 시간을 가져야 진정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

 

  풀벌레 소리 우는 산장에서 고독을 즐기고 있다.

  일기를 쓰고 책도 읽는다.

  나를 성장시키는 시간이다.

 

 

 나 없는 동안에도 고추가 잘 컸다.

 비가 부족한데도 고추가 잘 크고 있다. 감사하다.

 저녁을 먹을 때 고추를 맛있게 먹었다.

 

 

 물냉이가 무성하게 자라더니 씨를 맺고 시들었다.

 사진에 보이는 것은 새로 발아한 물냉이들이다.

 아기 물냉이들아, 안녕!

 유치원에 갓 입학한 물냉이들이다.

 

 

지난 주에 소개한 채소학교 상추반 학생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두어 포기 말고는 다 살았다.

 반장이 잘 이끌어주고 부반장과 부장들도 도와서 좋은 반 만들자.

 오이는 불량배들이 오면 혼내주어야 한다.

 

 

 

 

 토마토가 줄줄이 열리고 있다.

 알이 굵지는 않지만 무공해 토마토다.

 동글동글 새알을 닮았다.

 삐요, 삐삐, 삐리릿-  새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초록 숲만 보아도 기분이 좋은데

수확할 것도 있어서 기쁨이 두 배다.

고독한 농부에게 과분한 선물이다.

 

 

 

  황순원의 소나기에 마타리가 나온다.

  소녀가 마타리를 꺾어서 우산처럼 들고 걸어가는 장면이다.

  소나기를 읽고 마타리를 꼭 심고 싶었는데 씨를 몇 번이나 뿌려도

  싹이 제대로 트지 않았다.

  그래서 여태까지 못 보았는데 드디어 올해는 성공했다.

  마타리가 여러 포기 살아났다.

  이제 마타리가 피기 시작했다.

  범초산장에 소녀가 나타날 것만 같다. 우산처럼 들고 걸어다니려고.

  마타리야, 여기 와줘서 감사하다!

  무더위에 너를 보니 소나기가 내리는 듯 하다.  (*)

 

 

 

출처 : 글나라
글쓴이 : 凡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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