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스크랩] (범초산장 이야기 798회) 양보가 양보를 부른다

凡草 2017. 8. 6. 11:54

 

 

2017년, 8월 6일, 일요일, 맑음

 

(범초산장 이야기 798회)  양보가 양보를 부른다

 

월악산 동화의 집에서 하루 자고 수요일 오후에 집으로 돌아왔다.

목요일 오전에는 신세계 백화점에 가서 동화 강의를 했다.

한창 휴가철인데도 회원들이 제법 나왔다.

남경희씨가 일본 하꼬네에 다녀온 기념으로 과자를 사와서

회원들과 함께 잘 먹었다.

 

 

목요일 오후에 집으로 돌아와서 쉬고 있는데

아내가 범초산장에 가자고 하였다.

속으로는 반가우면서도 짐짓 딴청을 피웠다.

"아니 오늘 가면 언제 와? 내일이나 모레 가자."

"일요일까지 있다가 오면 되잖아요. 더우니까 빨리 가요."

'어허 이거 웬일이지?'

이런 생각을 하며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었다.

"그렇게 오래 있을 수 있겠어? 괜히 심심하다고 하지 말고

 천천히 가자."

"휴가니까 가서 푹 쉬다 와요. 피서하러 얼른 갑시다."

"알았어. 나야 언제든지 가자고 하면 좋지 뭐."

 

 날씨가 덥기는 더웠나 보다.

 아파트가 시원하다고 해도 범초산장만큼은 시원하지 않으니까.

 월악산 윤규 집처럼 높지는 않아도 평지보다 100미터 위에 있고

 숲으로 둘러싸여 있으니 피서지로도 괜찮다.

 

 양산농수산물센터에 들러 장어와 돼지고기를 사고

 포도와 수박도 샀다.

 피서 준비가 끝났으니 이제 산장으로 부르릉~~

 

 

 

 산장에 도착해 보니 계곡이 바짝 말라 있었다.

 며칠 전에 양산에는 비가 제법 왔는데 여기는 거의 안 왔나 보다.

 3박4일 동안 있을 건데 물이 없어서 어떡하지?

 그런데 신기한 것은 계곡물을 아무리 퍼 내도 줄어들지 않았다.

 화수분처럼 어디선가 물이 자꾸 나오는 모양이다.

 그래서 이 물 덕분에 오늘까지 잘 지냈다.

 완전히 바닥나지 않고 계속 솟아나는 물이 감사하다.

 사람의 인정도 그래야 하리라.

 서로 나누며 부족한 것은 채워주고...

 체력도 그래야 할 거고.

 힘껏 운동하고 나서 푹 쉬면 또 체력이 샘물 솟듯...

 

 

 

 큰딸이 미국 가기 전에 사 주고 간 바베큐 통이 낡아서

 5만 원 주고 새로 하나 샀다.

 첫 개시로 장어를 구워 먹었다.

 야외에서 구우니까 연기가 나도 아무 문제가 없다.

 아내와 나는 먹는 양이 적으니까

 9900원 한 팩으로 충분했다.

 

 

 

 

 장어만 마트에서 사 왔고

 나머지는 모두 범초산장에서 키운 것들이다.

 오이, 고추, 깻잎, 차조기, 상추를 장어와 같이 먹으니 꿀맛이었다.

 

 

 

  그전에 심은 상추가 이제 먹기 좋게 컸다.

 범초산장 일기를 찾아보니 792회, 7월 8일에 심었다.

 아직 한 달도 안 되었는데 많이 자랐다.

 부드럽고 식감이 참 좋다. 다음에도 꽃상추를 심어야겠다.

 

 

 

  상추밭 옆 장독대 주변이 지저분했는데

  아내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더니 보기좋게 바꾸어 놓았다.

  히야, 역시 아내가 나보다 한 수 위네.

  정리정돈에는 일가견이 있다.

 

 

 

  

  보도블록 벽돌을 그냥 깔아 놓으니까

  그 틈새로 풀이 돋아났다.

  아내는 그걸 막기 위해 벽돌 밑에 비닐을 깔았다.

  효소 담은 항아리가 하루 종일 햇볕 아래 있는 것을 개선하기 위해

  뽕나무 그늘 밑으로 옮겨 놓았다.

  이러니 내가 아내한테 큰소리를 할 수가 없다.

  분명히 해 놓고 보면 좋은 일이니 따를 수밖에.

 

  아내는 장독대를 손보고 나더니

  하우스 안에 있는 잡다한 물건들을 싹 정리했다.

  더우니까 그만하라고 해도 속속들이 뒤져서

  못 쓰는 것들은 버리고, 쓸만한 것들은 찾기 좋게 차곡차곡 정리해놓았다.

  나는 정리를 잘 하지 못해서 뒤죽박죽 마구 섞어 두는데

  아내가 궁시렁거리며 다 정리했다.

  나는 도와주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서 바람막이 말만 했다.

  "그렇게 정리하는 것은 좋은데 나보고 잔소리 하려면 하지 마."

  그 말 때문인지 아내는 아무 말 안 하고 혼자 다 했다.

  깨끗해져서 좋긴 한데 아내가 고생한 것이 안쓰러웠다.

 

 

 

 산장으로 오기 전에 아내와 마음을 맞춘 일이 하나 있었다.

 아내는 아파트에 살고 싶어 하고,

 나는 범초산장에서 살고 싶어했는데,

 돈만 넉넉하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적은 돈으로 두 집 살림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금요일 오후가 되면 어김없이 산장으로 가버리니

 아내 혼자 아파트에 있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하루는 나보고 이런 말을 했다.

 "여보,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아파트를 팔고 산장을 손보아서 거기 가서 살아야겠어요."

 나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아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기는 아파트가 좋다더니 웬일이야?"

 "당신 연금이 고작 37만 원인데, 일을 안 하게 되면 어떻게 먹고 살아요?

  주택 연금을 신청해봐야 작은 아파트니 돈이 많이 나오지 않을 거고,

  그럴 바에는 아파트를 팔아서 산장으로 들어갑시다.

  당신이 가족 부양하느라 평생 고생했으니

  소원대로 산장에서 한 번 살아봐야지요."

  나야 방방 뛸 만큼 고마운 말이었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산장에서 아내와 같이 살자면 하우스 내부를 살림집처럼 다 고쳐야 할 거고

 그러자면 적어도 1500만 원 정도는 든다.

 거기다가 지하수를 파는데 700만 원.

 그 밖에 이사비랑, 가구값에 뭐더라 또...

 알게 모르게 소소한 돈이 들어갈 수 있으니 최소한 3천만 원은 잡아야 한다.

 거기다가 농사용 하우스라서 살림집처럼 고쳐 놓으면 벌금을 물면서 살아야 한다.

  

 그렇게 돈을 들여서라도 산장에서 살아야 하는가?

 물론 나는 그 돈이 아니라 두 배로 더 들어도 찬성이다.

 아파트 몇 채를 주어도 산장 하나만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한데....

 아내가 정작 양보를 하고 나서자

 선뜻 그러자고 할 수가 없었다.

 나야 좋지만,

 소원대로 되는 것이지만,

 새 아파트에 이사간 지 2년밖에 안 되는데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여태 우리가 살아본 곳 가운데

 가장 입지 조건이 좋은 곳이다.

 영화관 가깝고 대형 사우나가 들어섰고,

 편의시설, 마트가 가까이 있고,

 자전거 도로가 잘 갖추어져 있어서 살기에는 최적이다.

 

 

 

 그런 아파트를 팔고 산속으로 들어온다고?

 그래도 될까?

 .....................

 ............

 ........

 

......................

 

나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

 

"여보, 그냥 이대로 삽시다.

 나야 언제든지 오고 싶으면 산장으로 오면 되고,

 당신은 아파트에 살다가 하루만 산장에 와서 바람 쐬면 될 거고...

 돈 들여서 고치지 맙시다.

 지금 이대로도 좋은데 뭘....

 두 번 다시 또 이런 문제로 다투지 맙시다."

 

 그렇게 해서 의견을 정리했다.

 아내가 과감하게 양보를 하니까

 나도 양보를 하고 싶었다.

 만약에 아내가 양보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자기 편한 대로만 했다면

 나는 살아가면서도 아내 때문에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고

 원망했을 것이다.

 아내와 마음을 맞추고 나니 한결 홀가분하다.

 

 

 

 

 

 밥을 먹고 쉬디가 다리 밑 시멘트 관을 보수하기로 했다.

 시멘트 관 사이에 큰 틈이 있어서 홍수가 날 경우에는 또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

 진작 보수하려고 했지만 물이 차 있어서 하지 못했는데

 요즘 가뭄이 오래 지속되어 시멘트 관 아랫부분이 물 밖으로 드러났다.

 이때를 놓치면 또 몇달을 기다려야 할 지 몰라서 일을 시작했다.

 시멘트를 비벼서 관 사이를 다 발랐다.

 더운 때지만 이 시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일을 했다.

 

 

 

 

 산장에서 며칠 머무는 동안 시원할 때 틈틈이 일 했다.

 미니 해바라기와 염주를 심어 놓은 밭에 잡초가 수풀처럼 우거져서 다 뽑았다.

 잡초를 뽑아 놓고 보니 뿌리가 하얀 수염처럼 길게 뻗어 있었다.

 저러니 뽑아도 또 나오고 하는구나.

 사람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저렇게 뿌리를 깊이 박고 있다면

 잘 해낼 것이다.

 뿌리를 깊이 내린다는 것은

 마음을 둔다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에 마음을 정하고 애정을 쏟아야 한다.

 맹숭맹숭해서는 안 된다.

 

 내가 전화기 수신음으로 폴리스의 노래를 깔아 놓았는데,

 그 이유는 가사가 좋아서다.

 

폴리스의 대표곡인 ‘Every Breath You Take'인데

매일 숨 쉬고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당신을 생각한다는 가사를

자신이 좋아하는 일로 바꾸어서 생각하면 되기 때문이다.

 

Every breath you take and every move you make
당신의 숨결마다, 당신의 움직임 하나 하나
I'll be watchin' you
난 지켜보고 있을 거에요.

.................

 

 자신이 이루려고 하는 일을 항상 잊지 않고 생각한다면

 왜 이룰 수 없겠는가?

 이루지 못한다면 다만 마음을 더 쏟지 못해서일 뿐이다.

 

 

 

 작년에는 염주 5포기를 길러서 열매를 수확하여

 제자들에게 동화 팔찌를 만들어주었는데

 올해는 지금 18포기 정도가 잘 크고 있다.

 가뭄이 심해서 말라죽을까 봐 산장에만 오면 물을 꼭 주었다.

 그 노력 덕분에 아직까지는 죽지 않았다.

 나는 동화에 대한 생각을 잊지 않으려고 작년에 염주로 만든 동화팔찌를

 지금도 차고 다닌다.

 

 

 

아내와 같이 있으니 반찬 걱정을 안 해서 좋다.

 다만 아내는 늘 먹는 반찬만 만들지 야생초는 잘 활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쇠비름 나물이나 비름나물, 명아주 나물은 내가 무친다.

 차조기도 내가 뜯어다가 상에 올려야 한다.

 결국 이런 것도 조화다.

 서로 선호하는 것을 존중하고 양보해주어야 할 것이다.

 

 삼복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나는 휴가의 대부분을 범초산장에서 보냈다.

 밭도 하나 새로 만들고

 시원한 저수지 바람 쐬며.... (*)

 

출처 : 글나라
글쓴이 : 凡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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