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스크랩]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다! -- 323회

凡草 2010. 6. 26. 22:48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다!


<2010년 6월 26일 토요일 비>


 엊그제 동주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님, 옆집에서 길을 열어주겠다고 하네요. 나무를 곧 파갈 것

 같습니다.”

 참 반가운 소식이었다.

 

 사실 알고 보면 범초산장은 아직 자리도 잡지 못한 상태였다.

 231평을 동주와 나, 조교감- 세 사람이 같이 샀는데 땅을 우리가

사기 전에 전 주인에게서 땅을 빌린 사람이 그 땅의 60% 정도에

정원수를 잔뜩 심어 놓아서 손을 댈 수가 없었다.

 땅을 빌린 사람의 임대 기간이 올해 6월말까지인데 도무지 파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범초 산장과 바로 이웃한 옆집 아주머니는 나무를 쉽게 안 파갈

거라고 말했다.

 “장사하는 사람들이 임대 기간을 제대로 지키겠습니까? 아마 두고 보이소.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질질 끌 걸요.  임대 기간이 지났다고 해도

 땅 주인이 살아있는 생물에는 마음대로 손 못 댑니다. 나도 그 전에

 집을 빌려주었다가 안 나가서 애를 먹은 적이 있어요.”

 나무를 얼른 파 가야 범초산장 터에 비닐하우스도 짓고 정자도 세우고

약초밭도 만들 텐데 정원수가 떡 자리잡고 있으니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조금 남은 땅에 상추와 나무 몇 개, 약초 서너 가지를 심어 놓았을 뿐이다.

 나는 그거라도 좋아서 여태 주말마다 농장처럼 왔다 갔다 했다.

 

 후배가 가꾸는 동주원의 깻잎

 

 그런데 얼마 전부터 옆집 마당을 보니 화단을 더 넓혀 놓고 화분도 늘려

놓았다. 차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미리 막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 옆집에서는 도라지를 많이 키우고 있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도라지집

으로 부르겠다.)

 범초산장 터는 저수지와 계곡을 끼고 있어서 경치가 좋기는 한데

단 하나의 흠이 자동차 진입로가 없다는 점이다. 차가 들어가려면

어쩔 수 없이 도라지집 마당을 통과해야만 하는데 쉽게 들여보내주지 않을 것

같았다. 평소에는 저수지 빈 터에 차를 주차하고 걸어 들어가면 되는데

나무를 뽑아가려면 포크레인이 들어갈 수 있어야만 한다.

 나무를 다 뽑아간 뒤에는 우리도 포크레인을 집어 넣어서 땅을 고르고

계곡 주변을 정비하여 비닐하우스를 지을 계획이었다.

 그러자면 도라지집의 양해가 절대적인데 쉽게 허락해줄지 의문이었다.

 나와 아내는 그런 것을 감안하여 미리 인사도 하고 도라지 아주머니한테

말도 사근사근 붙였지만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지 싶었다.

 그랬는데 도라지 집에서 나무를 파갈 포크레인이 들어가도록

허락했다니 참 다행스런 일이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면 도라지 집도 귀찮을 것이다.

 자기 집 마당으로 흙을 뿌리며 포크레인이 드나들면 신경이 쓰이고

불편할 것은 뻔하다. 우리 사정을 이해하고 허락해주어서 고마웠다.

 물론 맨입으로는 안 되고 동주가 진입로 사용료를 주겠다고 말해서

허락을 얻어낸 모양인데, 어쨌거나 어려운 숙제 하나를 해결한

기분이었다.

 나는 주말에나 한 번 건성으로 오갈 뿐이지만, 어려운 고비마다

동주가 해결사 역할을 해주었다. 참으로 든든한 동지다.

 땅을 빌린 사람이 나무를 파가고 나면 우리도 곧장 포크레인을

불러서 공사를 시작할 참이다.

 

 동주원의 고추 밭


 오늘 장마비가 쏟아졌지만 약간 들뜬 마음으로 차를 몰아

수내 동주원에 갔다.

 동주와 범초산장 터에 가서 줄자로 땅 넓이를 재어보기도 하고

비닐하우스를 세울 곳을 둘러보았다.

 나무를 다 파놓고 나니 땅이 생각보다 더 넓어보였다.

 시야가 확 트여서 저수지도 한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장애물인 나무를 파가는구나!’

 일 년 동안 참고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동주와 내가 힘을 모아 범초산장 터에 새로 지을 비닐하우스는

흔히 보는 투명비닐로 지은 것과는 종류가 다르다.

 태풍이 불어도 날아가지 않을 만큼 굵은 쇠파이프로

뼈대를 세우고 햇빛 차단용 검은 천을 씌운다.

 쉽게 말하자면 농막과 비슷하다. 그린벨트 지역이라 시골집은 지을

수가 없기 때문에 좀 더 튼튼한 비닐하우스를 지어 사람이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동주원에 일 년 동안 들락날락했는데 집처럼 별 불편함이 없었다.

 

 

 공사를 시작하게 되면 땅을 같이 산 세 사람이 돈을 똑같이 내기로 했다.

 나는 아직 상가가 안 나가서 부담이 되지만 그렇다고 우리 형편이

좋아질 때까지 마냥 미루어 둘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길이 뚫렸을 때 전격적으로 공사를 진행해야 도라지 집의 반발을 덜 수

있다.

 작년 이맘때 땅을 샀는데, 이제 여태 심어 놓았던 것을 다 뭉개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포크레인이 들어가면 밭을 밀어 버리고

새로운 땅을 만들 것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과 같지만 내 꿈을 이룰 수만

있다면 몇 번이라도 다시 시작할 것이다.

 사람들은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을 ‘실패’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성공을 향한

출발이기 때문에 항상 가능성을 안고 있는 것이다.

 실패할 때마다 다시 시작하면 된다.

 어떤 일이라도 마찬가지다.

 나는 끝까지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나는 늘 전원 생활을 하고 싶은 것이 꿈이었다.

 내가 심고 싶은 나무, 약초, 나물, 꽃 등을 마음껏 심고 가꾸는 것이

꿈이었는데 번번이 현실의 벽 앞에서 무너졌다.

 돈 앞에서 무릎 꿇고 가족의 반대에 실망하고 냉엄한 법 앞에서

벌벌 떨었다.

 이제 세 번째로 다시 시작해야 할 갈림길 앞에 서 있다.

 이번에는 전원 생활의 꿈이 이루어질 것인가?

 우리 나라가 월드컵 원정 16강의 꿈을 이루기가 쉽지 않았듯이

나 역시 참 어렵게 돌아왔다.

 첫 번째는 삼랑진 마사리에서, 두 번째는 밀양 노루실에서, 이제

부산 수내에서 세 번째 도전을 하고 있다.

 늘 잔뜩 심어 놓기만 하고 돌아섰는데 이제는 꼭 결실을

거두고 싶다.

 지금까지 시행착오를 거듭 해온 덕분에 이제는 어느 정도 노하우가

쌓여서 실패할 확률이 적다.

 

 

 이 수내 범초산장은 부산하고 가깝고 큰돈도 들지 않아서 가족들이

반대할 까닭도 없지만, 만에 하나 반대한다고 해도 나 혼자  해낼

생각이다.

 다행히 이번에는 동주와 같은 든든한 지원군에다 아내도 좋은 땅이라고

밀어주니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흙에 대한 내 열정은 강하다. 여태 살아온 이유가 흙과 더불어

살고 싶은 꿈이 있어서였다.

 

 차를 몰고 돌아올 때 하늘에서 강한 빗줄기가 쏟아졌다.

 그 바람에 시야가 흐려서 길을 잘못 들어 정관으로 갔다가 빙빙 돌아서

다시 길을 찾았다. 꼭 돌고 돌아온 내 인생살이 같다.

 하지만 무사히 양산으로 돌아왔다.

 강한 빗줄기가 나를 잠시 가로막았지만 영영 가로막지는 못했다.

 오히려 나는 강한 빗줄기를 닮을 것이다.  (*)




출처 : 글나라
글쓴이 : 凡 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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