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스크랩] 벌여만 놓고 뒷감당도 못하면서..... (324회)

凡草 2010. 7. 4. 12:14

 

 벌여만 놓고  뒷감당도 못하면서...

 

<2010년 7월 4일 일요일 흐림>


 어제 수내 범초산장 터에 갔다.

 도라지집 아줌마가 보이길래 인사를 했다.

 “우리 땅 때문에 마음 고생 많으시죠?”

 “하이고, 일이 빨리 진행이 안 되어 어수선하고 골치가 아프네요.”

 나무는 아직도 실어가지 않아서 묶어둔 채로 놓여 있었다.

 뿌리를 땅속에 깊이 박고 가지를 하늘로 힘차게 뻗어야 할 나무가

저렇게 꽁꽁 묶여 있으니 꼭 죄인 같다.

 

 

 나무를 왜 아직도 안 실어갔는지 물어보았더니 장마로 땅이 질어서

트럭이 들어갈 수가 없단다.

 저수지 주변이라 모래가 많아서 바퀴가 푹푹 빠진다는 것이다.

 땅에는 차가 빠져서 고생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농장 주인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겠지만 임대 기간이 끝나는 6월말까지

기다렸다 파갈 것이 아니라 3월에 미리 파갔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 때라면 나무도 고생을 안 하고 파가기에도 좋았을 텐데 장마철까지

기다렸다가 일을 벌이니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더운 날에 저렇게 나무들을

땅에서 파내서 묶어 두었으니 나무들도 몸살을 꽤 할 것 같다.

 요즘에는 비가 자주 내리니 트럭이 들어가서 나무를 다 실어가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다.

 저 나무들을 다 실어가야 우리도 땅을 고르고 비닐하우스도 지을 텐데

언제 일을 시작할지 모르겠다.

 

 

 


 무슨 일이든지 때를 잘 맞추고 여유 있게 해야 한다.

 글도 미리 미리 안 쓰고 마감까지 미루었다가 쓰게 되면 속된 말로

똥줄이 당긴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무슨 일을 하는 사람들은

항상 초조한 마음으로 허둥대며 살아간다.

 

 

 극장에 가서 ‘맨발의 꿈’을 보고 왔다.

 이 영화에 나오는 명대사 2가지.

 ‘가난하다고 꿈도 가난해야 하냐?’

 ‘나는 이 아이들과 끝까지 가볼 것이다.’

 동티모르의 아이들에게 축구화를 팔다가 축구를 가르친 끝에

유소년 국제 축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김신환 축구 선수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이 영화는 돈보다 중요한 것이 희망과 꿈이라는 것을 가르쳐준다.

자기 인생에서 의미가 있는 일이라면 끝을 볼 때까지 해야 한다는 교훈도

들어 있다.

 

 

 나 역시 살아오면서 시작만 하고 끝을 보지 못한 일들이 많다.

 주택에 살 때 오골계를 키우겠다고 사와서 제대로 돌보지도 않아

아내에게 핀잔 듣고 처분한 일, 판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다가 실력이

모자라 포기한 일, 교사가 되었다가 교장도 못하고 학교를 그만 둔 일,

밀양에 시골집을 샀다가 4년 정도 오가다가 팔은 일, 영어 공부를

하겠다고 회화 테이프를 사놓고는 조금 하다가 그만 둔 일,

그 외에도 시작만 하고 끝을 보지 못한 일이 참 많다.

 그래서 아내는 나보고 무슨 일을 벌이기만 하고 뒷감당도 못한다고

말한다.

 


 그런 내가 끝을 볼 때까지 하고 있는 일이 몇 가지 있는데,

등산과 동화쓰기와 텃밭 가꾸기다.

 등산은 400회가 넘도록 계속하고 있고, 동화도 400편 이상은 썼고,

텃밭 가꾸는 일은 현재 진행형이다.

 아내는 텃밭 가꾸는 일도 좋아만 했지 깔끔하게 못한다고 나무라지만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잡초가 막 자라거나 보기에 좀 허술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세상에 별난 사람을 보았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깊은 산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나는 그 할아버지를 보고 나도 산속이나

오지에 들어가서 한 번 살아보고 싶었다.

 또 한 번은 밀양 상동면 철마산에 등산을 갔다가 어느 여선생님을 만났다.

그 여선생님은 결혼도 안 하고 혼자 사는데 부산에서 근무하다가 일부러

밀양 산골로 지원해서 들어가 살고 있었다. 남들은 이상한 눈으로 볼지

몰라도 난 그 분이 참 대단하고 자기 인생을 바르게 사는 분이라고 생각했다.

 야생초를 키우고 동물들도 키우고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을 마시며

세상의 소음과 번뇌에 시달리지 않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가꾼 약초와 나물로 쌈을 싸 먹고 일하다가 피곤하면 낮잠도 자고.

텃밭에서 일하는 것이 단조로우면 산에 올라 몇 시간씩 걷다 오고.

겨울에는 나무를 해서 아궁이에 불을 때어 방을 덥히고.

밤에는 호롱불을 켜놓고 꽃차나 야생초차를 마시며 동화 구상을 하고......

 

 

 하지만 그런 꿈은 도저히 이룰 수가 없었다.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어떻게 혼자 산 속에 들어가서 살 것인가! 게다가 가족이 반대한다면

더욱이나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찾은 대안이 수내 범초산장이다. 여기라면 부산 근교니까 혼자

들어가도 별 문제가 없다. 깊은 산속이나 오지는 아니지만 도심속의

오지니까 오지 짝퉁은 되는 셈이고, 흙을 밟고 살며 무엇을 키울 수 있으니

꿈을 이루기엔 안성맞춤이다.

 지루한 장마가 끝나면 꿈을 조금씩 실현시켜 나갈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은 내 인생의 지루한 장마였다.

 흙과 더불어 사는 삶이야말로 햇빛 찬란한 삶이다.  (*)


 *  땅을 파헤쳐 놓은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꽃들이 피었다!

 

 

  아직도 상추가 남아 있고...

 

 

 

* 동주원의 꽃들

 

  치자

 

 수국

 

 엉컹퀴

 

  쑥갓

 

 

 

출처 : 글나라
글쓴이 : 凡 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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